당근마켓에 빠지다

: 당근마켓 입문자

by 윌버와 샬롯

다음 달에 이사를 간다. 이사 가는 곳이 지금 사는 곳보다 수납공간이 좀 열악해 자질구레한 짐을 정리 중이다.


TV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를 보고 결심했었다. 집도 좁아지는 마당에 이참에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자고. 그것을 위해서는 정말 비우는 수밖에 없었다.


한참 지나버린 아이들 장난감, 연령이 지난 아이들 책, 우선 그것들부터 처분에 돌입했다.


당근마켓 앱은 작년 말쯤에 깔았었다. 그때쯤에 너무 갖고 싶은 물건을 중고로 알아보고 있었는데 마침 기사를 보고 당근마켓을 알게 됐다.


우리 집에서 가깝게 사는 이웃과 거래를 한다는 설정이 다른 중고 사이트보다 어쩐지 편안하게 다가왔다. 물건은 좋지만 택배사고도 심심치 않게 염려됐고 직접 가지러 가자니 먼 거리도 부담이다. 내가 있는 곳과 멀지 않은 곳의 사람과 하는 당근마켓 플랫폼은 중고거래라는 마음의 진입장벽을 조금은 낮게 해줬다.


난 귀찮아서 그거 못하겠더라


그렇긴 하다. 무언가를 판다는 것은 굉장히 귀찮은 일이었다. 손이 참 많이 간다.

내 첫 번째 판매 물품은 아이들 블록이었다. 각각 따로 샀지만 서로 호환되는 3~4가지 블록을 혼합해 두 박스 가지고 있었다. 이용 대상이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던 그대로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몇 피스인지 셀 수도 없는 그 많은 블록들을 화장실 욕조에 쏟아 넣었다. 순한 세제를 풀고 거품이 없어질 때까지 헹구고 또 헹궜다. 그게 끝이 아니다. 물기를 제거해야 하니까 베란다에 신문지를 깔고 또 블록을 펼쳐놨다. 아직 낮에는 해가 좋으니 금방 마를 줄 알았다. 오 마이 갓! 블록의 오목한 곳곳에 물기가 고여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속에 들어간 물기까지 빼내려면 때때로 블록들을 뒤집어 놔야 했다. 거기서 끝이었다면 또 다행. 그래도 마르지 않은 숨어있는 블록 사이사이 물방울을 하나하나 찾아내 마른 수건으로 닦아냈다.


묵은 때를 씻은 블록들


이래저래 세척은 끝냈다. 다음은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리고 해당 물품에 대한 중고 시세를 알아본다. 그러고 나서 물건에 대한 상세한 설명 페이지를 작성한다. 블록 통이 좀 연식이 된 것 같아 두 박스를 단돈 만원에 올려놨다.


당근당근~ 첫 당근 알림은 짜릿했다. 올리자마자 자꾸 울리는 귀여운 당근 알림에 정신이 없었다. 내가 방금 올린 것을 어찌 이 사람들은 바로 볼 수 있었는지. 너무 싸게 올린 건가. 여기저기서 구입하겠다고 문의를 해왔다. 이 중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특별한 기준은 없다. 무조건 선착순. 1등으로 문의한 사람을 우선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


그 날 저녁, 거래 당사자인 아내의 하달을 받고 SUV를 몰고 온 젊은 아빠는 만원 한 장으로 블록 2통에 교구 1통까지 덤으로 얻어서 돌아갔다.


신속한 거래 성사와 내 집 앞에서 줄 수 있는 편의성,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까지, 이용해보니 이거 정말 괜찮다 싶었다.


정작 물건의 추억을 함께 한 아이들과 남편은 그것을 고작 만원에 팔았냐며 성토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물건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계속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버리는 것도 고역 아니겠는가. 그 가격에 내놓았으니 지금 베란다 수납장이 훤해져 있는 게 아닌가. 근처에 기꺼이 이 물건을 쓸 만한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거저 줘도 되는 물건이었는데 그렇게라도 누가 쓴다고 가져가 주니 아까울게 하나 없지 않은가. 난 목적이 분명했다. 처분이 목적이었지 돈을 벌자고 당근마켓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거래 희망자가 많은 경우는 가격 인상에 대한 유혹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몇 번의 거래를 해보니 그것도 요령이 생기게 됐다. 당근마켓은 거래 후 서로를 평가하는 후기를 쓰기도 하는데 내 물건을 사간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대목에서 배우는 게 꽤 있었다. 내 맘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상대방은 그렇게 느꼈었구나 등의 자기 검열이 되기도 했다. 그 이후의 거래는 좀 더 개선된 방향으로 이를테면 당근마켓에서 통하는 매너를 터득하게 된 것도 같다.

'받은 매너 평가'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여태 24개 품목을 올렸고 그중 16개 물건이 새 주인을 찾아갔다.


시작한 지 2주 정도 된 당근마켓 입문자로서 거래 성사 필살기는 무엇일까. 딱 세 가지다. 사진, 상세하고 솔직한 설명, 합리적인 가격이다.


달랑 사진 한 장 올리는 것은 좀 곤란하다. 사진은 첫인상이니 가장 중요하다. 물건에 대한 전체 풀샷, 세세한 컷, 상대방이 받게 되는 포장 상태 사진까지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올린다. 장난감 같은 경우는 실제로 사용자가 멋들어지게 만들어낸 결과물까지 찍어 올리면 금상첨화다. 확실히 거래 성사가 빠르다.


설명 또한 매우 중요하다. 설명의 관건은 솔직함이다. 구성 내용물이 완벽한지 빠진 게 얼마나 되는지, 사용감은 많은지 적은지, 손상이 됐다면 어디가 그런지 상세하게 써놔야 거래 후에도 뒤탈이 없다.


중고 거래의 존재 이유는 단연 가격 때문이리라. 일단 같거나 비슷한 종류의 품목에 대한 중고 시세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다른 데도 아니고 바로 당근마켓에서 거래가 성사되는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가격을 정하는 데 있어 조금은 손쉬울 것 같다.

매너온도가 상승하면 어쩐지 칭찬받는 기분이 든다


짐 정리를 한다고 시작한 당근마켓 입문이 아이러니하게도 집을 더 어수선하게 하고 있다. 평소에는 제자리에 있던 것들이 거래 대기 중이어서 여기저기 꺼내놓게 되어 그렇다. 오늘 오후에는 여름 내복 바람의 아이를 뒤에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고 온 아빠에게 팽이를 무료 나눔 했다.


당근마켓 채팅으로만 얘기를 나누니 성별도 연령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어 그 대상이 예상과 다를 때는 가끔 당황할 때가 있다. 그리고 뭔지 모를 선해지는 기분이 가끔 들 때도 있다. 어쩌면 쓰레기통에 그냥 버려졌을 팽이 세트를 천진난만하게 안고 돌아가는 아이와 아빠를 보니 오늘도 난 지구환경을 조금은 구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이래서 요즘 사람들이 그렇게들 당근 당근 했었나 보다.



짐을 좀 정리하고 새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도 난 계속 당근마켓에 빠져 살게 될까? 모를 일이다.


방금 따뜻한 거래 후기가 내게 도착했다. 내 매너온도도 올라갔다. 당근마켓과 함께 선한 비움의 실천으로 지속적인 미니멀리즘을 당분간은 추구해겠다.

변변치 않은 것이었는데도 이렇게 써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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