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언니가 요즘 걱정거리가 많다면서 뜬금없이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서 갑자기 눈이 왔나 보다. 걱정하지 말라고우리에게 선물처럼.
저녁 먹고 9시가 넘었지만 그대로 집에 있을 수 없었다. 밖에서 들리는 아이들 소리도 왁자하다.
지금 이 눈이 올 겨울에 볼 수 있는 마지막 눈일지도 몰라.
종일 집에 있던 아이들도 엄마의 엄포에 어쩐 일인지 귀찮지만 주섬주섬 옷을 꺼내 입기 시작한다. 동지들이여, 이제 길을 한번 나서볼까.
당장 내일 아침이면 얼어붙을 길이 걱정은 되지만 그렇게 소원하던 눈을 뽀드득 밟았다. 오랜만에 발에서 느껴지는 이 감촉. 이 부드러움. 너무 행복하다.
놀이터는 이미 아이들 차지다. 신난 꼬마들은 눈썰매로 왔다 갔다 바쁘다. 어린 자식에게 온전히 눈의 세상을 만끽해주고 싶은 젊은 부모는 손이 벌게지도록 눈썰매를 끌어준다. 이제는 많이 자라 너희를 끌어줄 수는 없지만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지.
우리나라 인구가 자연 감소되고 있다고 얼마 전 뉴스에서 봤지만 오늘 밤엔 눈사람이 많이 태어났다. 어린아이 솜씨인지 그 부모의 솜씨인지는 모르지만 개성 가득한 눈사람 가족이 동네를 따듯하게 꾸며주고 있다.
아이는 손가락으로 글씨를 쓴다. 새해 소망이라도 비는 걸까? 눈 구경 나온 지나가는 사람에게 새해 인사라도 하는 걸까? 집으로 다시 돌아갈 때쯤 아이는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 위에 눕는다. 그리고 팔을 흔들며 눈 천사를 만든다. 그래, 오늘은 눈에서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렴.
겨우 아파트 단지를 크게 한 바퀴 걸었을 뿐이지만 우리는 찬란히 내려준 눈에 대한 예의와 도리를 다한 듯했다. 그리고 우리는 미련 없이 눈을 툭툭 털고집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