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 헨리에타. 참 예쁜 이름이다. 작가는 주인공 동물 이름을 이렇게도 사랑스럽게 지었다. 어떤 특정 고유 동물명으로 명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 작가를 만난다면 꼭 묻고 싶은 질문이다. 추측하자면 책 마지막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를 숨기기 위한 장치였을까? 아니면 이 캐릭터에 대한 고유성을 드러내기보다 작가의 특별한 애정이 더해진 것뿐일까?
헨리에타는 아직 아가예요.
헨리에타의 엄마는 봄에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첫 문장부터 신파다. 엄마 없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주책없이 너무나 감정 이입이 된다. 그 상황 자체가 뭐로도 대체할 수 없는 슬픔이기 때문에. 첫 장을 보고 이 책의 주제가 혹시 죽음에 관한 것인가 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죽었으니 아이는 엄마에게 어떠한 삶의 지혜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 없는 아기 헨리에타는 앞으로 닥칠 생애 첫겨울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다행히 주변에 이웃 어른들이 있어 헨리에타는 하나씩 배울 수 있었다.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고. 차근차근 열매를 모아놓으라는 얘기를 듣고 헨리에타는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러나 혼자서 겨울을 나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할까.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 앞에 무너지기도 하고, 예상 못 한 방해꾼들로 좌절의 순간을 맞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엄마는 헨리에타를 넉넉한 사랑으로 태교를 했었나 보다. 그 기운 빠지는 매번의 순간 뒤에도, 이제는 너무 지쳐 힘들 때에도, 헨리에타는 그래도 묵묵히 일어난다. 다시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열매를 구하러 길을 나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에게 행운이 생길 수 없는 노릇이다. 어렵지만 꿋꿋하게 삶을 꾸려갔기에 헨리에타에게도 친구들의 따스한 도움의 손길이 닿는다. 그러나 또 한고비. 친구들은, 아니 조금이라도 지각 있는 경험자 한 명만이라도 헨리에타의 물색없는 베풂에 조금은 제지와 조언을 해줬어야 하지 않을까. 다시 헨리에타는 빈털터리가 된다.
벌써 겨울이 왔다. 헨리에타에게는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나가서 열매를 구하기에 이제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열매를 찾아봐야지.
혹시 눈 밑에 부스러기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니까.
좀 당황스러웠다. 이 상황에 잠을 잔다고? 눈 밑에 부스러기를 기대하며 잠을 자기에는 너무 대책 없는 거 아니야? 좌절 앞에 다시 일어서던 지난 헨리에타 모습이 아니었다. 이제는 어찌할 수 없는 자포자기의 순간인가? 통조림 침대에서 잠이 든 헨리에타의 얼굴도 그리 편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제 헨리에타는 어떻게 될까?
숲 속엔 벌써 봄이 왔어요!
일어나 보니 봄이 왔다며 헨리에타가 기뻐서 펄쩍 뛰는 장면으로 그림책은 끝을 맺는다. 어머, 이건 뭐지? 너무나 갑작스러운 전개와 그 종결에 앞에서 한 걱정이 참으로 무색하게 했다.
황당함에 다시 그림책을 천천히 읽었다. 그때야 작가가 진짜 하고 싶었던 다른 이야기가 보였다.
헨리에타는 순간순간 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에서는 본인도 어찌할 수 없던 때였던 것이다. 그 혹독한 겨울에 열매를 구하러 길이라도 나섰다면 과연 헨리에타는 살아 돌아올 수나 있었을까.
겨울잠이라는 자연의 섭리로 헨리에타는 위기를 넘겼다. 작가는 최선을 다한 이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도 말해주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잠시 놓고 쉬라고. 때를 기다리면 좋은 날이 분명 올 거라고. 죽으라는 법은 결코 없다고.
헨리에타의 엄마는 일찍 떠났지만 그래도 꽤 중요한 유산을 남겨줬다. 바로 헨리에타의 긍정적인 심성,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친구들, 그리고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따스한 집.
작가는 겨울잠 스포일러를 자연스레 숨겨놓고 책의 긴장감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만약 겨울잠을 자는 특정한 동물 이름으로 글을 썼다면 금세 독자는 결말을 눈치채고 시시해했을 것이다. 모습에서마저 어떤 동물인지 명확히 알 수 없게 그렸다. 모두가 매우 주도면밀하고도 치밀한 작가의 작전이 아니었을까.
헨리에타의 두 번째 겨울은 분명 다를 것이다. 한 계절 시행착오를 겪어 봤으니 열매를 저장하기 전에 물이 들이치지 않도록 집도 수선할 거고 해충도 미리미리 없앨 것이다. 겨울을 날 수 있을 정도의 양식은 남겨두고 친구들을 초대하여 베풀 수 있는 지혜와 여유가 생길 것이다. 대책 없이 베푸는 어린 친구를 보게 되면 조용히 다가가 예전 자기 얘기를 해주며 조언해 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몸을 튼튼히 유지해 또 다른 헨리에타를 건강히 낳아 그 값진 삶의 지혜를 다시 나눠줄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이 그림책은 헨리에타의 성장 모험기였다. 헨리에타가 한 가족을 이뤄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이 내가 그린 결말이다. 혼자가 아닌 둘이나 셋이서 기뻐 팔짝팔짝 뛰며 봄을 맞이하는 헨리에타. 그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꽉 찬 것처럼 벌써부터 가슴이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