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또래의 어린 시절 추억을 듣다 보면 방문 판매로 전집을 사줘 책을 많이 읽었었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내 경우는 다르다. 위로 터울이 컸던 언니 오빠 책이 전부였다. 그래서 더욱 독서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다 내 책이 생기면 그 책 한 권을 너무도 소중히 여겼었다. 그때는 혼자만의 책장에다 나만의 책으로 꽉 채우는 그런 날을 꿈 꿨다.
그런 소망은 아이를 낳고서야 제대로 이뤘다. 다만 나만의 책장이라 말하기에는 좀 그렇겠다. 그래도 오롯이 내 손길 내 선택으로 꾸며진 공간이었으니 나만의 첫 번째 책장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빼곡하게 점차 채워지는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만 봐도 그냥 왠지 모르게 좋았으니 말이다. 아이로 인해 어릴 적 소원을 풀었다고 해야 할까.
어느 날 아파트 재활용 장소에 버려진 멀쩡한 작은 책장을 발견했다. 이사를 가는 집에서 내놓았었나 보다. 우리 집 어느 공간에 맞게 들어갈지 요리조리 머릿속으로 견적을 내어보고 나서 낑낑 경비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가져왔다. 작은 3단짜리 하얀 책장은 그렇게 우리 집 아이들의 첫 번째 책장이 되었다.
두 아이를 위해 좋은 책을 고르는 노력을 부단히 했다. 때에 맞게 책을 사기 위해 아이들 책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목록은 아직도 유효하며 진행 중이기도 하다. 깨알같이 적은 그 종이 다발은 내겐 보물 같은 쪽지요 우리 집 책장의 역사다.
연령에 맞는 책이 무엇인지, 책 소개 관련 책도 많이 읽었고, 온라인/오프라인 서점도 많이도 들쑤시고 다니며 책을 샀다. 아직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가 중고서점에서 아이 책을 고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서가를 돌아다니며 책을 하나하나 보며 고르는 행위는 어떤 잡념도 생기지 않는 행복한 고민의 시간이다. 온전하게 책에만 집중하고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내겐 정말 휴식 같은 시간이다.
그림책에 대한 열정은 아마 육아 고충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엄마나 겪게 되는 이 정답 없는 육아라는 터널에서 잠시나마 빠져나오기 위한 일종의 몰입이며 돌팔구였다. 책이 가득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이에게 책을 쥐여줬지만 뜻하지 않게도 읽어주던 엄마가 도리어 위로받고 있었다. 아이는 멀뚱멀뚱한데 엄마는 혼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목소리가 흔들릴 때가 종종 있게 마련이었다.
만 3년은 꼬박 아이들과 집에서 붙어있다가 아이가 4살이 되던 해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다. 어떤 엄마도 그렇겠지만 아이들과 처음으로 떨어지는 몇 시간을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그런 날도 있었다. 잠시 혼자 있는 그 한나절의 시간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아 도서관 강좌를 열심히 쫓아 수강했다. 그중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듣게 된 그림책 강의는 책의 이면을 좀 더 폭넓게 볼 수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림책에 담긴 숨은 얘기를 알아가는 게 신선했고 재미있었으며 거기다 감동까지 느끼게 하니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몇 주의 강의를 들은 후 거기서 끝나는 게 아쉬워 강의를 함께 들었던 몇 분과 그림책 모임을 시작하게 됐다.
아이를 위해 발을 들인 그림책 세계는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고독한 육아에서 잠시나마 숨통을 트이게 했으며 가까운 이웃과 소통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삶에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혼자보다 뜻이 맞는 여럿은 그 힘이 강하다는 걸 알았다. 혼자만 읽는 책은 못내 아쉬움이 있었지만 모르고 미처 찾지 못했던 것을 책모임을 통해 시야를 넓히게 했다. 같이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기쁨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아이는 어김없이 자란다. 이제는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심드렁해한다. 취향이 생겨서 그럴 수도 있고 자기만의 세계가 벌써부터 확고해지니 아쉽기는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아이가 크니 아무래도 그림책을 드문드문 봤다. 새로 출간되는 그림책이 그새 많이도 있을 텐데 마음은 갔지만 선뜻 도서관에서나 서점에서 그림책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다 그림책 저자 강연이나 그림책을 주제로 한 책을 읽으면서 예전 기분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림책을 봐야 할 때라는 걸 말이다. 그림책을 만나고 설레던 그때를 다시 기억하며 당시의 떨림을 글로 써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림책을 여태 많이 봤었고, 많이 안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봐야 할 책은 많고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미 알던 책이라도 다시 보니 새로운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러니 그림책은 참 신기한 물건이다. 그림책으로 내 속의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한동안 가지 않던 그림책 서가로 발길이 간다. 그 안에서 오랜만에 헤매는 내가 좀 낯설기도 하다. 거실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그림책을 아이가 웬일인가 싶게 들춰본다. 휘리릭 넘길 때가 다반사지만 가끔은 유심히 책을 들여다볼 때도 있다. 그런 아이에게 눈으로 말해본다. '너에게도 잠시 쉴 틈을 주는 그림책을 엄마처럼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앞으로 많은 나날 동안 내게 다가올 그림책에게 설렌다. 이 떨림, 이 설렘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어쩌다 만난 그림책이 그래서 참 좋다.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