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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소 Feb 23. 2021

가끔은 별 의미 없는 말이 날 꺼내 주기도 한다

말 한 사람은 10초 뒤에 까먹을 수도 있지만요.


 암막커튼 사이 빛이 새어 나오는 가느다란 틈을 가렸다. 방 안이 다시 어두워졌다. 어젯밤으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오늘 밤으로 타임 워프 한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 수면 안대를 꼈다. 포근한 침대는 일정한 안락함을 주었다. 그러나 완벽하게 다시 잠에 들 준비를 마쳤을 때 잠은 이미 달아나 있었다.


 주말에도 좀처럼 늦게까지 잠을 잘 수가 없다. 8시만 되어도 눈이 떠진다. 대학생 때는 엄마가 점심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간신히 눈을 뜨곤 했었는데. 누군가는 출근 습관 때문이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체력이 떨어져서라고 한다. 잠도 체력이 있어야 잔다는 것이다.


 자기 전 암막커튼을 좀 더 단단히 여며두었다면 좀 더 늦게 일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8시간 전의 나에게 화가 났다. 억지스러운 이유로 실체도 없는 상대에게 짜증을 내는 꼴이 우습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두 눈을 꾹 감고 있어 보아야 기분 나쁜 채로 시간만 죽이는 모양새였다. 일어나서 멍하니 TV를 보았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보았다.



  

 [세상에 날씨가 너어무 좋다]




 가벼운 우울 속으로 침잠되고 있던 참에 날 꺼내 준 한마디였다. 심지어 말도 아니고 글, 그것도 나를 향한 게 아닌 SNS에 그저 내뱉은 한 줄. 쓰는 이에겐 별 의미 없었을 몇 글자. 그리고 나 역시 무심코 열어본 SNS의 피드 맨 위에 있어서 보게 된 글.


 말의 힘은 대단했다. ‘날씨가 너어무 좋다’는 글은 자동적으로 내 머릿속에 쨍한 날씨를 그려주었다. 그제야 창밖의 화창한 날씨를 눈에 담았다.


 그 여덟 글자가 근본적인 감정을 뿌리 뽑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 순간 렉 걸린 컴퓨터처럼 멍하니 앉아있던 나를 일으켜 세워줄 수는 있었다. 일어나서 움직이자. 씻고 움직이고 시간이 되면 저 햇빛이 사라지기 전에 밖으로 나가보자.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를 받는 일이 다반사인 요즘이다. 말이나 글로 쉽게 전 세계 누구와도 소통이 쉬워진 만큼 말로 인해 생기는 사건이 많다. SNS는 나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누구나 볼 수 있는 광장이기도 하다. 그런 세상에서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할까? 말로서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보다는, 암막커튼을 치고 어둠 속으로 웅크리려는 사람에게 오늘 햇빛이 참 쨍쨍하다고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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