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꼼짝않고 누워만 지낸다. 며칠 전부터 안 먹고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걸 보니 어디가 아픈가 보다. 이러다 이삼일 지나면 다시 활기를 되찾아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아닌 것 같다.
페키니즈로 조그마한 얼굴에 눈이 주먹만큼 크고 바로 눈 밑에 붙어있는 코는 까만 단추를 붙여 논 것처럼 납작하고 보통 강아지의 돌출된 입과는 달리 입도-자로 납작하다. 바닥에 먹이를 주면 입으로 집으려 해도 먹이가 입에 잡히지 않아 제대로 입에 못 넣어 먹이를 밀고 다니다가 문턱에 걸리면 겨우 먹기도 했다. 우리는 이 강아지를 ‘솔’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강아지라며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하얀 털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지만 아프고 나서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통통한 몸에 솜처럼 복실 거리던 털도 비 맞은 것처럼 초라해지고 몸 군데군데 탈모가 되었다. 몸은 많이 야위어 갔다. 유리구슬처럼 반짝이던 두 눈은 흐릿해져 초점이 없어 보였다.
생식기 쪽에서는 분비물이 흐르는데 솔이가 앉았던 자리가 축축할 정도로 상태가 심했다.
의료보험 혜택 없는 동물은 동물 병원에 한 번씩 진료받다 보면 몇 만 원은 쉽게 지출되다.
간단한 치료도 사람보다 의료비 지출이 더 많이 나갈 때가 있다. 이번에는 하루에 치료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초음파 찍고 사진을 판독한 동물병원 원장은 자궁에 물이 가득 찼는데 터지기 바로 직전이라며 수술해야 된다고 했다. 이렇게 물이 차고도 장이 파열되지 않고 살아서 온 강아지는 처음이라며 신기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병원 데려가기 전에 강아지 솔이를 데리고 “솔아! 어디가 아파?” 해도 반응이 없자 솔이를 마룻바닥에 눕혀놓고 배를 가볍게 눌렀다. 아마 그때 솔이 가 죽었다면 내가 죽인 건데, 생각하니 소름이 확 끼쳤다. 수술이 잘 돼서 다행이다. 더운 여름 날씨인데도 날마다 버스를 타고 솔이를 보러 다녔다.
수술 후에 회복실에 있는 솔이는 내가 갈 때마다 따라오겠다고 끙끙대며 난리를 쳤다. 입원한 지 4일 만에 퇴원해서 솔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배는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털은 대머리처럼 듬성듬성 빠져서 꼭 물에 빠졌다 나온 것처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 7년을 함께 살았으니 정이 들어서 가축이 아닌 가족의 일원이 되어 버렸다.
솔이가 우리 집에 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언젠가 남편 차 트렁크에 철사로 엮은 닭장같이 생긴 동물 우리가 실려 있었다. 뭐냐고 물었더니 아는 사람이 준 강아지 집이라고 했다. 또 강아지를 집에 데리고 올 거냐고 따졌더니 절대 아니라고 딱 잡아뗐다.
강아지는 더 이상 집에 데려 올 수 없으니 강아지 키울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고 못 박았다. 예전에 단독 집에서 살 때도 심심하면 강아지를 데려와서 진돗개라며 키우다 보면 개가 송아지처럼 컸다. 잡견을 데리고 와서는 족보까지 있는 진돗개라고 박박 우겼다. 진돗개는 조그마한 체구에 체형이 역삼각형으로 앞쪽에 비해 뒷다리 쪽이 작고 꼬리가 말아 올라간다고 들었는데, 밥은 세숫대야로 한 대야씩 먹는 개를 데려다 키우다가 어느 날 병들어서 죽었다. 그래도 진돗개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어디서 또다시 강아지를 데려와서 이번에는 족보까지 있는 진돗개라고 종이쪽지를 코앞에 내밀었다. 나는 개를 워낙 싫어해서 개 종류에도 관심 없고 개가 주변에 있는 것도 싫었다. 냄새도 싫었고 개털 날아다니는 게 정말 싫었다.
진짜 진돗개라고 우기는 이 개는 누가 봐도 진돗개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잡견이었다. 생긴 것은 멍청하게 생겨가지고 먹고 누워 자다가 빨랫줄에 걸린 옷이 있으면 입으로 쭈욱 물어 내려가지고 바닥에 깔고 자는 미운 짓만 골라하더니 어느 날 집을 나가서 안 들어왔다.
개가 없어져서 서운하기보다는 개를 안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했다.
남편에게 또다시 강아지를 데려오면 그때는 나와 강아지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며 진돗개가 금으로 만든 옷을 입고와도 받아줄 수 없으니 내 앞에서 ‘개’ 자도 꺼내지 말라고 못 박아뒀다.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강아지 미련을 접었는가 싶었는데, 남편은 아들에게 강아지 한 마리 사달라고 엄마한테 말해보라고 아들을 시킨 것 같았다. 아들은 강아지 한 마리만 사주면 목욕시키고 밥 주는 일은 자기가 하겠다며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르기에, 언제 또 강아지를 데려올지 모르는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엄마보다도 강아지가 더 중요하면 데려오라고 선을 그었다.
시어머니 생신에 형제들이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시어머니와 시동생부부, 시누이들 부부까지 다모여서 시어머니 생신을 우리 집에서 쇠기로 했다.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던 남편은 통화도중에 차 가지고 곧바로 나가겠다며 딸보고 같이 따라가자고 했다. 낌새가 수상해서 어디 가냐고 했더니 잠깐 나갈 일이 있는데 친구 만나고 금방 들어오겠다며 딸과 같이 나란히 집을 나섰다. 잠시 후에 남편의 품에는 친구한테 얻었다며 새하얀 솜털 강아지가 구슬 같은 검은 눈을 껌벅거리며 안겨있었다. 나는 무슨 짓이냐며 당장 갖다 주라고 하자, 친구한테 선물로 받은 거라 어차피 데려왔으니 키워보자고 나를 달랬다.
남편은 나 몰래 아들과 딸에게 강아지 데려온다고 미리 말해놓고 엄마한테 비밀로 하라고 아이들에게 당부를 해뒀다.
자칫하다가 강아지 때문에 싸움이 날 수 있으니 D-day를 어머니 생신날로 잡았고 시어머니와 시누이 부부 앞에서 큰소리 낼 수 없다고 계산하고 시어머니 생신 상 옆에 강아지를 내려놨다. 강아지주인인 친구에게 안 갖다 주면 내가 데려다주겠다고 해도, 아이들은 이렇게 예쁜 강아지를 갖다 주면 절대 안 된다고 난리였다. 보다 못한 시누이가 중재를 했다.
“언니 요즘 강아지 사려면 수십만 원 정도 드는데 공짜로 얻은 강아지니까 그냥 길러요. 도저히 싫어서 못 기르겠으면 절반 값이라도 받고 팔면 되잖아요. 기르든 팔든 어느 쪽도 언니손해 안 나니 며칠만 길러 봐요”
큰 시누이가 대안을 내놓았다. 어차피 시어머니와 시누이남편들 앞이라 싸울 수는 없고 시어머니께서 시골집으로 가신 뒤로 다시 보내려고 마음먹고 강아지를 화장실 앞 구석에 놔뒀다. 자세히 보니 예전에 기르던 큰 개와는 다르게 눈망울이 구슬처럼 초롱초롱한 게 예뻐 보였다.
이틀정도 있으니 강아지가 먹이 먹고 아장거리며 노는 게 상당히 귀여웠다. 새 주인 인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내 앞에서 벌떡 뒤집어 재롱을 피우고 낯선 사람이 오자 멍멍거리며 짖는 게 아주 예뻤다. 남편은 내 눈치를 슬슬 살폈다. 강아지 다시 친구한테 갖다 준다고 할까 봐 사료 주는 일과 목욕은 자기가 담당하겠다고 자청하면서 어차피 우리 집에 온 강아지 예쁘게 기르자고 꼬드겼다. 강아지는 그렇게 우리 집에 있게 되었다. 강아지 한 마리로 가정은 웃음꽃이 폈고 강아지는 공인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강아지한테 거부반응이 심하던 내가 이렇게 강아지를 귀여워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몸 아픈 솔이가 치료받고 퇴원하자 제일 먼저 나를 찾았다. 내 앞에서 둥글게 몸을 굴리더니 내발아래 납작 엎드려 누워서 재롱 피우는 귀여운 모습에 흐뭇해졌다. 처음 솔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보내지 않고 솔이를 키운 게 잘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