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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Aug 04. 2024

병실의 무법자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에서 불을 뿜어내는 오후 두 시, 더위를 피할 겸 남편과 함께 소래포구에 갔다. 배에서 막 건져온 꽃게가 리어카에 실려 바구니 째 경매시장으로 들어간다. 경매사들의 알 수 없는 소리에 맞춰 흔들어대는 손가락 끝에서 가격이 이루어진다. 아이들 마냥 재미있는 구경을 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서 가격이 형성된 꽃게 경매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낮의 더위를 식힐 수 있다. 꽃게도 사고 생선을 사서 시장바구니가 채워질수록 풍요로워질 식탁 위에 놓일 반찬 가짓수를 헤아려 본다. 

모처럼 즐기는 시장구경이 끝날 무렵 같은 병실에 있는 동료요양보호사 K한테 전화가 왔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숨을 몰아쉬면서 일 그만둬야 될 것 같다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중환자실에 있는 L이 오늘 우리 병실로 온대요. L이 오면 일 안 하겠다고 말했는데, 아주 당당한 기세로 들어오는 모습이 자기가 무슨 황태자라도 된 줄 아나 봐요.” 

L이라면 노인 요양병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악명 높은 유명인 사다. 일명 ‘요양보호사 저승사자’다. 그를 케어하다가 골절상을 입은 사람만도 여러 명이다. 그가 병실을 옮기면 옮겨간 병실 요양보호사는 그만 쉬겠다며 휴직을 신청하는 일이 허다했다. 결코 반갑지 않은 L이 무슨 꿍꿍이 속인지 3층의 쾌적한 병실을 택해서 이동한다는 말에 K가 기겁을 한 모양이다. 

그는 삼십 대 중반 나이의 교통사고 하반신 마비환자다. 이십 대 후반에 당한 교통사고로 죽음의 사선을 넘어 겨우 눈을 떴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심각한 장애를 입었다. 젊은 패기로 시간 날 때마다 오토바이 타고 신나게 질주하던 그가 버스와 충돌한 날 그의 인생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붙어있는 목숨은 젊은 청춘을 병원 침대에서 보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다른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가 옮겨온 케이스다. L이 있는 병실에서 일하던 요양보호사가 L을 들어서 휠체어에 태우다가 허리를 다쳐서 한 달간 병원 치료를 받는 바람에 하던 일을 그만두었던 일이 있었다. 또 어느 요양보호사는 역시 휠체어로 옮기다가 어깨 인대가 늘어나는 바람에 병원 치료하러 다니는 바람에 일을 쉬어야 했다. 그가 있는 병실을 거쳐 간 요양사들의 수난시대를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요양사 들은 그를 기피인물로 꼽았다. 

L을 태우다가 어깨인대 늘어났던 요양보호사는  한 달간의 치료를 마치고 병원에 출근하다가 동료 요양보호사를 만났다. 버스에서 막 내린 그녀를 본 동료는 L이 있는 병실근무라는 말을 듣고 병실에 들어가지 않고 다시 집으로 가버렸다. L에게 질려버린 그녀는 L과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L이 휠체어에 태워 달라 한다. 커다란 몸을 들어서 휠체어에 옮기려면 두세 사람이 힘을 합해야 겨우 태울 수 있다. 바쁜 시간에 옆 병실 요양사 불러다 겨우 태워서 머리감기고 옷 갈아입히는 특별대우를 받으려 한다. 병원 임원중에 친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은근히 암시한다. 나는 그가 있는 병실에서 첫 대면 하면서 기싸움을 벌여야 했다. 다른 병실에서는 어떻게 생활했는지 몰라도 우리 병실에 들어온 이상 여기 있는 다른 환자와 하등의 차등 없이 돌봐 드릴 테니 불편한 점이 있으면 행정실에 가서 직접 의의 제기하든지 항의를 하라고 선포했다. 같은 방에 있던 환자들이 모두 환영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자기네들은 전혀 하지 않은 특별 서비스를 제공한 것에 열받은 참이었는데 불만 가득하던 환자들이 속이 시원한 모양이다. 순간 L의 얼굴이 굳어졌다.

“내가 여기로 온 것은 나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고 행정실과 의논을 거쳐서 왔기 때문에 나는 예전에 해왔던 대로 아침에 휠체어 타고 머리 감아야 하니 그대로 해주세요.”

행정실 간부와의 친분을 강조한다. 자기를 소홀히 하면 여기서 쫓겨 날 수도 있다는 암시를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다른 환자에 비해 더 잘해주지도 더 못 해주지도 않을 테니 불만스러우면 예전에 있던 병실로 가든지 현실에 적응하고 있던지 알아서 하세요.”

아침에 청소하는 남자직원이 L을 휠체어에 태우러 와서 태워주고 갔다. 바쁜 시간인데도 재빨리 태우고 간걸 보니 아침마다 태워 주러 다녔다한다. 

세안 수건을 환자들에게 주면서 L에게도 세안하라고 줬더니 수건을 던져버렸다. 화장실에 가서 머리 감아야 한다며 휠체어를 화장실로 돌린다. 환자들이 누구는 날마다 머리 감겨 주냐며 여기 있는 우리들도 똑 같이 해 달라고 소리친다. L의 지나친 요구에 나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한 방법이다.  화가 난 L이 말이 통하지 않자 휠체어에서 일부러 미끄러져 내린다. 추락하는 순간 떨어지지 않게 그의 몸을 재빨리 붙잡았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몸을 틀었다. 진땀을 흘리며 L을 붙들고 있을 때 교대팀 요양사 K가 출근했다. K와 함께 겨우 끌어올려서 바로 앉혀 놨다.  

간호사가 병실 순회할 때 간호과장에게 말했다. 

“이 환자는 특별대우를 요구하는데 나는 이 병실에 있는 분들과 한 치도 차별 없이 돌봐 드릴 테니 많은 것을 요구하는 환자의 요구에 절대로 응할 수 없으니 위에서 특별대우 지시가 내려도 못 해준 다는 것만 아세요.”

간호과장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그렇다고 다시 내려 보낼 수도 없고 무턱대고 L의 입맛에 맞게만 해 줄 수 없는 상황이다. 환자 측과 요양보호사들의 의견 수렴 후에 다시 입장을 내놓겠다며 간호과로 가버렸다. 

예전에 돌보던 근무자들에게서 그의 지나친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과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그의 요구를 들어줬다는 사실을 들었다며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 중 힘 있는 사람이라고 특별대우를 해주면 나머지 환자들이 받아야 할 상대적 박탈감은 생각해 보지 않았냐며 내 양심상 처음 생각에서 한 치도 변함이 없다고 못 박았다. L은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자 다른 환자들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환자들과 싸움을 벌인 뒤에는 간호과에 가서 항의를 하곤 했다. 

젊은 그가 혼자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심한 장애 때문에 겪어야 하는 그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그렇지만 자기의 운명은 자기가 책임지는 냉정한 사회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 있는 사람을 의지해서 편의를 제공받으려 하는 것은 무임승차를 기대하는 얌체족으로만 평생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2016년 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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