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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Oct 23. 2024

세상속의 한 가운데는 스마트폰이 있다

하루의 시작은 스마트폰으로  시작한다.

아침마다 SNS로 배달된 시나 예쁜 사진이 하루를 시작하는데 활력소가 된다. 친구 J는 전화보다는 SNS를 자주 이용한다. 상대가 바쁜 시간인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받는 사람도 시간에 자유롭게 받고 답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외국의 관광지며 좋은 글이 있으면 챙겨서 곧잘 보내준다. 급변하는 시대의 문화생활 속에 꼭 필요한 필수품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이 있기에 친구나 지인들과 소통기구의 역할을 충실히 해준다. 손 안에든 기계하나가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첨단기술로 세상을 이끌어 나간다.

나도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구형 폴더폰을 사용하는 게 답답해 보이는지 아들이 스마트폰을 사줄 테니 편리하게 사용하라고 해도 내가 굳이 빠른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아니고 생활에 크게 불편하지 않은데 비싼 기기와 적잖은 요금을 감수하면서 까지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아들의 제의를 거절했더니 어느 날

“엄마 폴더폰 핫스파를 터트려서 요놈을 켜면 (태블릿 pc) 밖에 나가서도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니까 사용하세요. 요놈하고 요놈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인터넷 사용이 가능해요.”

폴더폰과 태블릿 pc를 번갈아 가리키면서 말했다. 구형휴대폰을 쓰는 사람은 불만 없이 쓰는데 보고 있는 아들이 답답해서 태블릿 pc를 사 왔다. 부피가 커서 어디서 꺼내놓고 사용하기가 쉽지 않자 아들이 보다 못해 다시 스마트폰을 사 와서 쓰라며 주기에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 언제 어디서고 무한한 정보를 볼 수 있고 손안에 있는 컴퓨터역할을 하기에 편리함을 안겨준 과학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요즘아이들은 친구 없이도 혼자 노는데 불편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게임기가 친구이고 TV가 친구이다. 길에서도,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도 온통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려 가끔은 내려야 할 정류장도 지나치고 뒤늦게 허둥대는 이도 있다. 나이 든 기성세대들까지도 스마트폰 중독에 가까울 만큼 푹 빠져있다.

 그날도 버스에 앉아서 스마트폰으로 책을 보다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쳤다. 내릴 때쯤 됐는데 주변을 보니 생소한 장소였다. 버스기사에게 역곡역 지났냐고 물었더니 벌써 여러 정거장 지났단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다시 한참을 거슬러서 갔던 기억이 있다. 책을 소지하고 다니기는 불편해도 스마트폰으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책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예전에는 지하철 역 주변에 흔히 지하철 신문이라 일컫는 무가지 신문을 실은 케리어카를 끄는 분들이 아침 일찍 분주히 움직였다. 단 몇 시간의 한시적인 수명이지만 대중문화의 한축을 담당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하철 종점에 다다르면 읽다 둔 신문을 폐지 줍는 할머니들이 칸칸마다 다니며 신문을 수거해 갔다. 아무리 무가지라지만 사회 정치 경제 문화등 제법 읽을거리가 있어서 지하철 안에서 심심하지 않았다. 종이활자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은 바로 인쇄된 기름 냄새나는 종이신문이 편하다. 언제부터인지 역 주변에 신문 부스도 사라지고 지하철 안에서 신문 읽는 풍경도 사라졌다. 사람마다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이 신문의 자리를 대신했다. 게임에 빠진 엄지족 들의 재빠르게 움직이는 기민한 동작과 순발력이 부러울 뿐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시끄럽지만, 아침 출근시간 지하철 안에서는 거의 예외다. 거의 모르는 사람들이라 서로 말할 만한 분위기도 아니지만 손바닥 안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읽고 있다. 귀에 레시버를 꽂고 음악을 듣는 사람, 인터넷 신문을 보는 사람, 메일을 확인하고 SNS로 안부를 주고받는 소통의 역할을 하는 만능 탤런트다. 또한 바쁜 시간 은행창구에 가지 않고 언제 어디서 건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블로그나 카페에 글이나 사진, 동영상 등을 올릴 수 있다. 사무실이 필요 없고  스마트폰 켜는 곳이 사무실역할을 해주는 아주 간편한 기능을 지니고 있어서 빠르게 변하는 시대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다. 

이웃이 없어도 외롭지 않고 기계에 의지하고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소통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기계를 이용한 빠르고 급박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람냄새에 그리워한 아날로그 시대를 사는 어르신들에게는 처음 본 사람끼리도 서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눈다. 그들은 어느 장소이건 만남과 헤어짐에 자유롭다. 비록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익숙지 않아도 모르는 사람끼리도 얼굴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자유롭게 소통한다. 그들에겐 손에 폴더폰으로도 세상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그들에겐 살아가는데 꼭 스마트폰이 삶의 길잡이가 되지 않는다. 얼굴을 보고 소통하는 문화가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조금 느리고 빠르게 대처하지 못해도 그들에겐 어차피 세상사는 위치는 같아서 조급해하면서 살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의 빠른 정보보다는 사람 냄새나는 세상이 그리워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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