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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May 16. 2024

가시고기


요양보호사 j의 손을 잡고 병실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 진할아버지의 얼굴은 늘 수심이 가득했다. 연세가 90이 넘어서 보행이 불편해지자 몸을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려고 걷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석 달 동안 마음고생하며 억눌렸던 감정을 풀어버리는 데에는 뭔가 열중해야 응어리진 마음이 풀릴 것 같다며 시간 날 때마다 걷기를 반복했다.

옆 병실 요양보호사 j는 그가 옛날 60년대 잘 나가던 가수였다고 귀띔했다. 정신과 병원에 강제로 석 달 동안 수용됐다가 요양병원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젊어서 화려했던 그의 삶이 이렇게 망가질 줄 누가 알았겠냐며 힘없는 노인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고 이제 좀 마음에 평정이 온 상태라고 했다.

진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하면서 불행의 서곡이 시작되었다. 그의 고향은 평양이라고 했지만 북한 말씨의 억양은 전혀 없고 순수한 서울 말씨를 썼다. 6.25가 터지자 북에 가족을 두고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그는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가수라 남한정착에 어려움은 없었다.


가로막힌 삼팔선을 바라보며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할 수 없어 재혼을 결심했다. 상대는 딸 둘이 있는 여자였다.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가족이라는 단어는 외로웠던 그의 가슴에 행복을 느끼게 할 만큼 소중했다. 그가 부른 60년대에 히트한 노래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가끔 들을 수 있을 만큼 유명한 곡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었고 아내가 데리고 온 두 딸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청춘을 불사르며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왔다. 삶을 함께했던 동반자는 60여 년 가까이 바늘과 실처럼 함께 살아오던 아내가 노환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외로이 지내던 그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어리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면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누군가 자기를 미행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곳을 가든지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아파트 11층에 살던 그는 남자 두 명이 자기 뒤를 밟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가는 꼼짝없이 납치당할 것 같았다. 계단에 있던 소화기를 들어서 계단 아래로 굴려버렸다. 두려움을 느꼈던 그가 누군가에게 자기의 상황을 알리려고 한 행동이었다. 두 남자는 진할아버지를 붙들고 경찰서에 신고했다. 이유 없이 소화기로 사람을 공격했다며 결국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되었다. 보호자는 두 딸이었다. 딸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데 동의했다. 후에 말썽의 여지가 있을 것을 우려해서 집과는 거리가 있는 부천에 있는 병원을 택했던 것도 딸들의 생각이었단다. 보호자 동의 없이는 퇴원이 불가능했다. 양육해서 시집보냈던 딸들에 의해 저당 잡힌 인생이 되어 버렸다. 그에게는 용인에서 아내와 같이 살았던 아파트와 땅이 200 여 평 있었다. 어느 날 딸이 면회 왔을 때, 땅을 두 딸에게 양도하는 조건으로 퇴원시킬 것을 요구하자 정신병원에서 노인요양병원으로 옮겨줬다. 땅을 두 딸에게 양도하고 나자 차라리 마음이 홀가분해졌다며 재산 때문에 인생의 말년을 이렇게 초라하게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가수협회에서 저작권료가 나오는데 그 통장까지 딸들이 가지고 있다며 가수협회를 가고 싶은데 혼자는 갈 수 없고 같이 동행하자고 했다. 사연은 안타까워도 환자를 함부로 밖에 데리고 나갈 수도 없고 나가도 안 된다.

결국 돈 때문에 일어난 불행은 아버지의 재산이 딸이 아닌 사회단체나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딸들의 생각 때문에 이런 험한 꼴을 당했다고 말했다. 딸들의 해명이 없기 때문에 더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그의 점잖은 인품이나 총명한 기억력은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인도 무굴제국의 샤자한 왕은 사랑하는 왕비가 출산을 하고 세상을 떠나자 큰 슬픔에 빠져있었다. 왕은 왕비의 아름다움과 그녀의 사랑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죽은 왕비의 유택 타지마할을 만들었다. 22년 동안 국력을 쏟아부어 1648년 완공되었다.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왕권을 찬탈하기 위해 막내아들 아우랑제브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은 아들에 의해 아그라 성에 감금 되었다. 성에 유폐된 왕은 죽는 날까지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수없이 눈물의 세월을 보내다가 8년 후에 세상을 떴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부왕을 끌어내린 아우랑제브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난 샤자한 왕이나, 진할아버지 본인의 말에 의하면 가지고 있는 재산 때문에 두 딸들에 의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감금돼 있었던 진할아버지의 경우도 세상 것을 취하고 자하는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피해자였다. 그는 언젠가는 아내 곁으로 가야 하는데 야속하게 혼자 남겨두고 먼저 가버린 아내를 위한 노래를 만들고 싶단다. 향나무는 제 몸을 찍어낸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 비록 혼자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을 남기고 가버렸지만 아내를 위해 둘이 재회할 날을 기다리며 그는 산처럼 겹겹이 쌓인 그리움을 예술로 승화시켜 아내와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시고기는 암컷이 바위틈에 산란을 하고 떠나면 수컷이 그 알을 지키며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외부침입자가 알을 삼킬까 봐 혼신의 노력을 다 한다. 먹지도 않고 알들을 보호하다가 서서히 지쳐간다. 알을 보호하다 알이 부화하면 지친 가시고기는 서서히 죽어간다. 비록 부부사이에 친자는 없었지만 아내의 두 딸을 양육하고 지켜온 할아버지는 가시고기처럼 지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진할아버지를 케어했던 j는 그 후에 KBS 가요무대에서 기자가 취재 갔던 장면을 TV를 통해서 봤다며 여전히 혼자 사는 장면을 보고 가슴 뭉클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토록 바라던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가 아내를 위한 노래를 만들었는지 그 후의 소식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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