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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May 11. 2024

귀원


저녁식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외박 나갔던 호진할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운 막내아들은 바쁘다며 아무런 설명 없이 말없이 곧바로 가버렸다. 70대 초반인 노인은 치매 때문에 묻는 말은 곧잘 대답하지만 어떤 상황설명이나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는 못한다. 연하곤란증세로 죽을 드신다. 식사를 다 마친 후 침대에 올리는데 몸동작이 부자연스러웠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봤더니 집에 가서 방에서 넘어졌다고 말씀하신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집으로 모시고 갔다가 낙상사고를 일으켜서 다쳐서 온 경우가 가끔 있다. 몸에 이상이 있을 때 요양기관에 사실을 얘기해야 되는데 다친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몸이 불편하게 보여서 보호자한테 물어보면 나중에야 다친 사실을 말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한지 몸을 구부리고 한쪽으로만 누워계셨다. 많이 불편하냐고 묻자 

다쳐서 많이 아프다며 밤에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다음날 아들이 요양원에 들렀다. 어떻게 다쳤냐고 물어보자 침대에 올라가다가 넘어졌다는 대답이 나왔다. 호진할아버지의 경우 할머니도 뇌졸중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집에서 누워 계신다 했다. 코에 레빈튜브를 삽입해서 묽은 미음 형태의 의료용 환자식을 섭취하는 중환자라고 한다. 병원이나 요양원에 모시지 않고 집에다 의료기설치를 해서 직접 모신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집에 다녀오면 할머니의 아픈 모습을 보고 걱정을 한다. 묻는 말이나 겨우 하신 분이 

“우리 할머니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렸어. 많이 아파서 죽었는지 모르겠어.” 

하곤 걱정을 한 모습을 봤다. 한분은 요양원으로 한분은 집에서 자녀들이 직접 돌보고 있다.


 할아버지가 집에 다녀오시면 몸에 이상 없나 확인을 한다. 집에 가셨다가 골절이 생기거나 욕창이 생겨서 오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편마비환자들은 돌침대에 누웠다가 열의 감지를 못 느끼고 화상을 입은 채로 돌아오기라도 하면 무척 애를 먹는다. 할아버지 등과 가슴 어깨에 검은 둥근 반점이 여러 군데 있었다. 몸이 아플 때 한의원에 가면 부항을 뜨면 몸이 가볍다고 부항을 뜨고 온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건강한 사람에 한해서다. 한의사의 처방 없이 딸이 아버지 몸에 직접 부항을 떠서 생긴 멍 자국이었다. 멍 자국을 가리키며 아프지 않으냐고 묻자 괜찮다고 대답한다. 

 할아버지에게는 삼 남매가 있는데 아픈 어머니를 아들과 딸이 집에서 교대로 돌본다 했다. 언젠가 딸이 아버지 면회 왔을 때 어머니를 요양기관이나 의료기관에 모시지 어떻게 집에서 모시는 게 가능하냐고 했더니 남동생 하고 둘이서 모시는데 까지 모시려 한다고 한다. 막내 남동생이 직장생활을 하고 남동생 하고 둘이는 어머니 곁을 지킨다는 말에 결혼까지 포기하고 부모님의 곁을 지킨다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그들은 자기들의 방식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 


호진할아버지의 몸은 날이 갈수록 불편해하자 보호자에게 병원에 모셔가서 검사하고 몸에 이상 있으면 치료받고 오시라고 했다. 딸이 와서 아버지는 다친 곳 없는데 집에 가실 때 택시 타면서 밀어 넣어서 불편해한다며 병원에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역시 다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들이 이미 다쳤다고 말을 했고 아버지의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으니 병원에 가라는 요양원 측의 말에 병원에 입원시켰다. 

이주일 정도 입원 끝내고 다시 온 호진할아버지는 다행히 괜찮아 보였다. 허리뼈에 실금이 갔는데 수술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움직이지 않게 하는 정도라고 했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병원에 있었는데 여기로 빨리 오고 싶었다고 말씀하신다. 밤에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자던 할아버지는 한 번씩 발작을 하듯이 기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냥 한 기침이 아니라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은 심한 기침을 한다. 병원에서 처방한 약이 들어가도 기침은 차도가 없었다. 영양과에서 환자식을 특별히 신경 써서 드리자 식사는 잘하는데 기침은 멎지를 않았다. 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타났다. 아버지를 시골집으로 모시고 가서 엄마하고 같이 생활하게 해야 될 것 같다며 고향집으로 가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걱정을 하는 아버지를 위하는 건지 아니면 남은 삶이라도 두 분을 곁에 두고 있는 것이 부모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 건지 딸의 말에 뭐라 말할 만한 처지가 되지 않았다.  


집안에 환자가 발생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형제간에 싸움이 벌어져서 서로 책임지지 않으려는 일이 가끔 있다. 요양시설에 맡겨놓고 얼굴도 내밀지 않은 가족이 있는가 하면 이 가족처럼 다행히 부모를 끔찍이 위하는 효심이 있는 자녀들도 있다. 하지만 부모를 마음에서 놓지 못하고 집에 모시는 것만 부모를 위하는 길은 아니다. 마음 아픈 것만 생각한 것은 아직도 부모의 품을 떠나지 못하는 유아기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부모를 안 모시려고 형제간에 서로 미루는 일이 있는가 하면 노인들이 받을 수 있는 복지의 혜택을 거부하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부모를 모시는 것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모님께 효도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부에서 받을 수 있는 복지혜택을 외면하면서 까지 집에서 모시는 것만이 최선은 아닐 것이다.

2017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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