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론의 꽃 May 08. 2024

어떤 하루


봄날처럼 포근하던 기온이 변덕을 부린다. 수은주가 급강하하자 지나가는 행인들이 움츠린 몸으로 바삐 걷는다. 요양원 병실유리창너머로 보이는 국과수의 하얀 건물이 쓸쓸히 눈에 들어온다. 저 건물 안에서는 지금도 풀리지 않은 사건 해결을 위해서 머리를 싸매고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의 한을 풀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과학수사요원들이 혼신의 힘을 쏟으며 시간과 전쟁을 벌이는 장소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시간과 전쟁을 치르고 한쪽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후시간 요양원에서는 색소폰 연주가 한창이다. 연주에 맞춰 마이크를 쥐고 흘러간 유행가를 구성지게 뽑는 강표 할아버지의 노랫가락에 맞춰 준홍 할아버지는 흥에 겨워 리듬에 맞춰 온몸을 흔든다. 흥이 최고조에 이르자 요양보호사 박팀장과 블루스를 추자며 팔을 벌린다. 한차례 춤을 추고나자 어르신들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이렇게 한 번씩 공연을 하면 억눌렸던 마음이 풀린 듯 어르신들의 얼굴에 활기가 솟는다. 가족을 매일 볼 수도 없고 마음대로 놀러 다닐 수 없는 막힌 공간에서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어느 정도 풀어진 듯하다.

오후간식으로 고구마와 두유가 나왔다. 두유를 넣고 갈아서 고구마 라테를 만들었다. 달콤하고 고소해 부드럽고 맛있다. 컵에다 한 컵씩 드렸더니 다들 맛있게 드신다. 경식할아버지가 순식간에 컵을 비웠다. 치아가 없어서 매일 죽만 드시다 보니 속이 허했나 보다 하고 한 컵을 더 드렸더니 고맙다며 다 드셨다. 특별공연이 있는 날에 맛있는 별식에 다들 행복해하는 모습이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장 00 어르신이 식탁에 앉자 송용 할아버지가 왜 이리 밥 먹으러 오냐며 딴 식탁으로 가라고 소리친다.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장 할아버지가 일어나서 송용 할아버지를 때리려 일어섰다. 내가 재빨리 뛰어가서 장 할아버지를 붙잡았다. “내 X 같은 새끼 죽여 버릴까 보다.” 특수부대 출신인 그는 건장한 체격에 항상 이방 저 방 다니다가 빈 침대만 눈에 띄면 드러눕는다. 지남력 장애 때문에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어슬렁대면 송용 할아버지는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며 내쫓아 버린다. 만약 싸움이 붙었다면 꼼짝없이 송용 할아버지가 맞게 돼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우람한 체격의 장 할아버지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겨우 싸움 뜯어말려놓자 병실 한쪽에서 또 싸움소리가 요란하다. 정호할아버지가 다른 병실 성일 할아버지 침대에 떡하니 드러누워 있는 걸 보고 당장 나가라고 하자 내 자리에 누워 있는데 왜 당신이 이래라저래라 하냐며 못 일어나겠다고 말하자 성미 급한 성일 할아버지가 정호 할아버지를 때리려 달려들었다. 뜯어말리느라 온몸의 힘이 쫙 빠졌다. 한쪽싸움 말리고 나자 다른 쪽 싸움 말려야 되고 아무리 나이 드신 분들이라도 남자들의 체격을 이겨내기란 체력의 한계가 있다. 


식탁에서 식사하던 경식할아버지는 비교적 혼자서 조용히 식사 잘하는 편인데 식판을 앞에 두고 반찬부족하다며 소리 지른다. 당장 반찬 더 가져 오라며 큰 소리다. 목소리가 어찌 큰지 구십넘은 노인 목소리라 믿기지 않는다. 저쪽 식탁에 앉아있던 장 할아버지가 쫓아와서 어떤 새끼가 시끄럽게 하냐며 경식 할아버지 쪽으로 온다. 아까 송용 할아버지와 싸웠던 감정 때문인지 주먹을 한방 날릴 기세로 쫓아온다. 겨우 달래서 식탁 쪽으로 데려다줬다.   

경식 할아버지의 불만이 계속 이어진다. 오후간식배식 할 때 잘 드신다고 고구마 라테를 두 컵이나 드린 게 문제였다. 배가 고프지 않으니 식사할 마음이 없자 투정을 하기만 했다. 간식 잘 드신다고 많이 드린 결과가 결국 반찬 투정으로 이어졌다. 밥을 먹던 장 할아버지는 경식할아버지의 소리 지르는 큰 소리에 밥을 먹다 말고 쫓아와서 “어떤 XXX가 시끄럽게 했어” 금방이라도 밥상을 엎어버릴 태세다. 식사가 다 끝나자 경식할아버지는 휠체어에서 내려달라고 소리친다. 일이 아직 안 끝난 상태라 일 끝나면 내려드리겠다고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나가는 종휘 할아버지를 보더니 물 한 컵 갔다 달라고 한다. 종휘 할아버지한테 물 컵을 손에 받고서는 휠체어에 맨 안전벨트를 종휘 할아버지에게 풀어달라고 하기에 우리가 안전벨트 풀면 위험해서 안 된다며 말리자 그냥 가버린다. 안전벨트 풀어 줄줄 알았던 종휘 할아버지가 가버리자 경식 할아버지는 손에 든 물컵을 종휘 할아버지를 향해 던졌다. 물세례를 받은 종휘 할아버지가 화가 나서 경식할아버지를 때리려고 주먹을 날릴 기세다. 팔에 그려진 용 문신이 화려하게 꿈틀댄다. 주먹세계에서 놀았다는 말이 있는 종휘 할아버지는 화가 나면 움켜쥔 주먹으로 제대로 싸울 것 같은 다부진 포즈를 취한다. 그가 가만있을 리 없다. 주먹을 휘두를 것 같은 포즈에 식판 정리하다 말고 뛰어가서 겨우 뜯어말렸다. 


일이 어느 정도 끝났나 싶었다. A가 잃어버린 돈 찾겠다고 베개 홑청을 죄다 벗기고 있다. 

전날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베개 홑청 속에서 끄집어낸 걸 봤다. 관리하기 힘들고 잃어버릴 수도 있다며 사무실에 맡기라고 해도 고집부리고 손에 쥐고 있더니 어디다 둔지 기억을 못 하고 안절부절이다. 돈 훔쳐간 도둑놈을 경찰서에 신고해야겠다며 투덜거린다. 그는 치매가 부쩍 심해졌다.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다녀왔다. 아들이 아버지가 성性적으로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데 치매 때문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다며 혹시 이상한 말을 해도 놀라지 말고 이해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신입 요양보호사가 오면 슬쩍 야한 농담을 한다고 한다. A에게 요양보호사에게 이상한 소리 하면 경찰에 성희롱으로 정식으로 고발하겠으니 주의하라고 으름장을 놓자 자기는 그런 말 한적 없다며 펄쩍 뛴다. 종일 돈 찾는다며 서랍과 이불속까지 털고 있는 A가 도둑놈 잡겠다며 잠들기 직전까지 방안을 어슬렁거린다. 

젊은 날에는 늙지 않고 젊음이 지속될 줄 안다. 노인들의 공동체 생활에서 일어난 하루를  돌아본다. 색소폰공연 후에 싸움이 여기저기서 일어나자 싸움 뜯어말리느라 혼이 쏙 빠진 것 같다. 하루하루 살다 보면 이렇게 소란스러운 날도 있다. 취침에 들어간 할아버지들이 아침까지 조용하고 편안한 밤이 되기를 기도한다.


작가의 이전글 부천 교보문고 매대 위의 수필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