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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Oct 31. 2024

풍경소리


  예전엔 대학 상아탑을‘우골탑’(牛骨塔)이라고도 불렀다. 시골에서 자식 대학 보내려면 가장 손쉽게 마련 할 수 있는 돈이 집에서 기르던 소를 팔아 대학 등록금으로 쓰였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 소는 가축이라기보다는 가족에 가까웠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소는 우리 집의 보물1호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암소를 길렀다. 번식과 농사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암소는 송아지를 낳으면 팔아서 자식들의 등록금이 되어준 경제적 후원자였고 농사철에 농사일을 해준 고마운 존재였다. 


  여름철에 아버지는 논에서 쟁기질을 하고 돌아올 때는 느릿느릿 걸어오는 소걸음의 보폭에 맞춰 땀에 후줄근 젖은 모습으로 쟁기를 지게에 지고 집으로 들어오셨다. 방안에 앉아있어도 땡그랑거리는 맑은 풍경소리가 들리면 아버지가 소를 끌고 집으로 들어오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쟁기질하는 당신의 몸도 많이 피곤했을 터인데 힘들게 일 하고 온 소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빗솔을 가져다가 털을 고루 빗겨주며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사랑을 표현했다. 비록동물이지만 소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큰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표정은 말을 못 할 뿐이지 공감하는 부분은 사람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아버지는 사람이 밥을 굶는 일이 있을지언정 소가 먹는 것만큼은 소홀히 하는 법이 없었다. 비오는 날 마당에 묶여있는 소가 비 맞고 있는 광경을 보거나 깜박 잊고 소를 굶기는 일이발생하면 아버지는 노기 띤 얼굴로 

 “밥 굶으면 너희들도 배고프지? 소는 쫄쫄 굶기고 니들 입으로 밥이 들어 가냐?” 

  자식들이 밥 한 끼 안 먹는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소를 굶기면 아버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불편했다. 소한테 베푼 자비를 자식들에게 베풀면 좋겠다며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우리 집 소는 항상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살이 쪄있었다.


  아침이 되면 잠자리에서 제일먼저 일어난 사람은 아버지였다. 새벽에 일어나 불을 때서 소죽을 끓이려고 아궁이에서 재를 끌어내는 고무래질 소리가 요란했다. 아침이 돼도 일어나지 않는 딸을 깨우는 신호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놓고 늦잠 자지 못하는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 늘 불편했다. 세수하러 나가면 불 밝힌 외양간에는 소죽이 펄펄 끓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소죽을 퍼서 구유에 담아놓고 소죽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매일같이 반복되었다. 자식을 품안에 끌어안고 젖 먹는 모습에 흐뭇해하는 엄마의 모습처럼 비쳐졌다. 


  암소가 송아지를 낳아서 어미 소에게서 젖 뗄 때가 되면 장날 송아지를  팔러나갈 준비를 한다. 새벽 일찍 소죽을 끓여 먹이면서 송아지를 바라보며   “배불리 먹어라, 오늘이 우리 집에서 마지막 날이다”어미 소 배 밑에서 젖을 힘차게 빠는 녀석을 바라보며 이산가족이 될 소들의 운명을 생각한지  말없이 한참 바라보다가 소를 끌고 장으로 향했다. 터벅터벅 걸어서 어미 소를 따라가던 송아지가 갑자기 천둥벌거숭이처럼 뛰어다니다가 남의집대문안으로 불쑥 들어가기도 했다. 아버지 혼자 소를 끌고 장에까지 데려가느라 애를 태우곤 했다. 우시장에는 소를 팔러오는 사람과 사러오는 사람, 거액이 오가는 소를 흥정하는 중개인들로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서 중개인의 중재로 가격이 결정되면 수수료를 중개인에게 지불하고 어미 소를 끌고 집으로 오셨다. 


  주머니에 송아지 판돈이 두둑이 들어있어도 아버지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저녁 밥상을 앞에 놓고 막걸리를 한잔 쭉 들이키면서 우시장에서 송아지를 팔고 나오면서 어미 소가 겪은 이별의 장면을 말씀하셨다. 송아지를 매수인에게 넘기고 어미 소를 끌고나오면, 어미 소는 송아지가 있는 뒤를 돌아보며 그 큰 두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은 참으로 가슴 아프다면서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켰다. 비록 동물이지만 어린 송아지를 떠나보내는 이별의 현장은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씀하셨다. 어미 소는 송아지를 떼고 나서는 소죽을 먹지 않고“음매 음매”밤새워 울었다. 며칠간  애타게 송아지를 부르며 울다가 목이 꽉 쉬어 목에서 울음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고 눈가에는 지저분한 눈곱이 가득했다.


  며칠 후 송아지가 대문을 머리로 밀고 우리 집 마당에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눈가에 두 줄로 흘러내린 지저분한 눈물자국이 선명하게 얼룩져있었다. 아랫마을로 팔려간 송아지가 우리 집으로 오자 송아지주인이 뒤따라왔다. 얼떨결에 새 주인을 따라갔던 송아지는 낯선 환경에 어미 소가 보이지 않자 예전에 어미 소를 따라다니며 풀 뜯어 먹던 주변을 기억하고 살던 곳을 용케 알고 옛집을 찾아 온 것이다. 어미 소와 마찬가지로 쉰 목에서는 울음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우사를 찾아 어미 소의 품을 파고들어 젖을 빨고 있었다. 송아지 주인은 젖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잠깐의 상봉을 마치고 송아지가 주인의 손에 끌려 나갈 때 어미 소의 목에서 흔들리는 풍경소리는 어미 소와 송아지의 주고받으며 우는 소리 속에 묻혀버렸다. 


   어느 해 여름휴가 때 친정에 갔었다. 아버지는 외손녀의 대학 등록금이라며 은행도장이 찍힌 종이 띠가 동여매여 있는 신권으로 한 학기 등록금을 내놨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소가 묶여있을 마당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가 보이지 않은 마당은 추수가 끝난 후의 허허로운 벌판 같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아버지의 노쇠한 몸은 분신처럼 여기던 소를 거두기에는 체력이  따라주지 않자 가족 같은 소를 파는 결단을 내렸다. 당신의 남은 삶이 길지 않았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고심 끝에 소의고삐를 놓았다. 소등에 씌워진 멍에가 풀리는 날 아버지는 손수 짓던 농사일을 접었다. 항상 소 등을 쓰다듬으며 옆구리를 토닥이던 동반자 같은 소는 간데없고 집 마당에 소가 묶여있던 자리에는 말뚝만 덩그렇게 남아있었다. 말뚝 옆에는 주인 없는 여물통이 엎어져있었다. 팔려간 송아지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을 어미 소처럼 아버지도 가족 같은 소를 떠나보낼 때 송아지와 이별하는 어미 소의 심정이었을 것이리라. 소가 우리 집에서 떠난 날 땡그랑 거리는 풍경소리의 긴 여운이 환청처럼 들린다며 하염없이 대문 쪽을 바라보던 아버지, 밥상을 앞에 두고 먼 산을 바라보며 밥 대신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이 영상처럼 눈앞에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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