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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의 이야기 Feb 14. 2020

새로운 시대를 향한 오스카의 초행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기

여러분 안녕하세요.

캐리 인사드립니다.

국내 시각으로 2월 10일, 오스카 시상식이 막을 내렸습니다.

작품상의 영예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죠.

이는 이전까지의 국내를 넘어 세계 영화계의 역사와는 그 궤를 달리 했다 할만 한 대사건이자, 축제와도 같 일이라 하겠습니다.

저에게는 마치 88 서울 올림픽 개최나 소련의 붕괴, 2002년 한일 월드컵,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을 목격했던 것만큼 하나의 역사적 변곡점을 체험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감사히 여기게 되네요.

여러분도 다시없을 이 기쁨과 영광의 순간, 역사에 기록될 경사 마음껏 즐기시고 가슴 속에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스카상의 5대 주요 부문 작품상과 각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의 순서로 되짚어 보도록 하죠.

작품상(BEST PICTURE)

오스카의 꽃이자 명실상부 현존하는 영화계 최고 권위의 상이 바로 이 오스카 작품상이죠.

이번 작품상 후보로는 영화 <포드v페라리>, <아이리시맨>, <조조 래빗>, <조커>, <작은 아씨들>, <결혼 이야기>, <1917>,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기생충> 이상 아홉 작품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작품상의 주인공은 예상을 뒤엎,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입니다.

<작은 아씨들>은 시상식 시점에 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아 보지 못했지만,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후보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영화들이죠.

사전 전망으로는 샘 멘데스 감독의 <1917> 가장 유력했고, 그간 오스카가 적용해온 여러 핸디캡과 프레임 타파 다면 <기생충>이나 <아이리시맨>의 수상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정도의 분위기였습니다.

<포드v페라리>나 <조조 래빗>, <작은 아씨들>,  <결혼 이야기>는 애초에 수상 가능성 없었, <조커>는 음울함으로 치우친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 탓에 작품상을 수상하기에 다소 무리가 있었다 하겠습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타란티노 감독이 힘을 좀 빼고 만들어서인지 다른 후보작들에 비해 선이 굵지 못했죠.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기생충>의 경우 오스카 노미네이트 만으로도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일이라 여겨진 만큼 작품상을 수상하게 될 거라고는 거의 생각지 못했습니다.

저도 미리 <1917>을 보고 이 영화가 작품상의 주인공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기생충>이 작품상을 타게 된 이유로는, 최근의 오스카가 전쟁영화에 꾸준히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이나 <1917>의 늦은 개봉 등을 들 수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기생충> 자체가 가진 전달력과 시의성에 있다 생각합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각본상(WRITING - ORIGINAL SCREENPLAY)

개인적으로 각본상작품상 바로 다음 권위에 있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감독상을 작품상의 우위라 여기고, 시상 순서도 작품상 이전에 발표되는 것이 감독상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것에 있어 감독의 역할이 가장 크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가 각본상을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작품상과 감독상의 평가 기준에 있어 중복되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작품상이 영화 전반적인 것을 평가하는 데에 비해 감독상은 작품에 드러난 연출자의 역량 자체를 평가하는, 엄연히 독립된 부문의 시상이며, 그렇기에 감독상의 권위 또한 각본상 못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선두에서 이끄는 것이 감독이라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영화 전반의 내러티브를 결정하는 것 또한 감독의 역할입니다.

그렇기에 좋은 영화를 연출한 감독과 좋은 작품 사이에 커다란 교집합이 생기는 것이죠.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작품상과 감독상의 투표와 선정에 있어 분배의 논리가 발생한다'

아카데미는 시상식 날짜를 기준으로 대략 한 달 전에 후보작을 발표합니다.

이후 특정 영화계 인사들의 투표가 시작되죠.

노미네이트 발표 후 저러한 딜레마가 드러나게 되면 작품상과 감독상 양쪽 모두 본질적인 문제에 노출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평이하게 잘 만든 영화를 작품상에 선정하는 대신, 보다 훌륭한 완성도의 영화에는 프레임과 플랫폼의 기준을 더해 감독상을 주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난 것이 지난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입니다.

완성도 면에서 압도적이었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넷플릭스 영화라는 이유로 감독상을 수상했고, 물론 좋은 작품이긴 했지만 전반적인 평가는 수작의 수준에 머물렀던 <그린북>이 작품상을 수상했죠.

넷플릭스 영화라는 이유 하나로 시작부터 불리한 싸움을 한 겁니다.

그렇기에 <로마>에게 작품상을 배제하고 소위 두 번째 권위라는 감독상 정도를 '던져'주게 된 형세였죠.

은근히 '이런 걸작을 만들 수 있는 훌륭한 감독이니 다음 작품 부터는 넷플릭스 말고 다른 곳에서 만들어 달라'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더라고요.

단정할 수는 없지만 작품상과 감독상에 애매한 '나눠먹기'가 존재한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영화를 완성하는 것이 감독이라면 완성도의 중심을 잡고 그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각본입니다.

완성된 각본에 배우와 미장센, 음향 등의 요소들이 더해져 한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각본상 후보작들을 보도록 하죠.

사전에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유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기존의 사건을 픽션으로 재해석 해 떠나간 인물을 추모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각본은 다소 미국적이라는 인상이 강했고 무엇보다 할리우드라는 국한된 범위에서 공감대가 커진다는 한계를 지닌 각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자본주의가 초래한 계급 사회라는 보편성과 시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기생충>의 각본이 수상에 더 적합하다 생각했습니다.

정통 추리극과 픽션 완성도라는 기준에서는 <나이브스 아웃>의 각본 훌륭했어요.

짐작컨데 저는 만약 각본상을 <기생충>이 수상하지 못했다면 <나이브스 아웃>의 수상에 더 공감했을 것이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수상했다면 또다시 반복된 '그들만의 잔치'에 지긋지긋함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감독상(DIRECTING)

기존 분위기는 <아이리시맨>의 마틴 스콜세지가 가장 유력해 보였습니다.

오스카는 그에게 엄청난 노미네이트를 선사했죠.

무려 아홉 번째입니다.

비록 수상은 2007년의 <디파티드> 뿐이었지만 후보에 오른 횟수를 보면 오스카가 좋아하는 감독임에는 틀림없죠.

뒤늦게 합류한 <1917> 때문에 샘 멘데스의 수상도 점쳐졌으나 저는 마틴 스콜세지를 가장 유력하게 봤고 그다음이 <조커>의 토드 필립스와 <기생충>의 봉준호를 생각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수상에 미치지 못할 작품이었다 생각했는데, 쿠엔틴 본인도 노미네이트 정도에 만족하고 행사를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후보작입니다.

응원은 했습니다.

한편으로 확률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저는 <기생충>의 각본상 수상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시상식 자체를 즐기는 마음이 컸죠.

감독상은 놀랍게도 봉준호에게 돌아갔습니다.

정말 대단하죠.

이 정도면 최소한 과반수의 예상을 뒤엎었다는 것, 오스카 용단이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습니다.

'BIG 5' 부문의 발표 순서는 각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작품상입니다.

저는 감독상까지의 발표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말도 안 되지만 <기생충>이 작품상을 탈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담으로 마틴 스콜세지가 수상에 욕심을 냈다면, 감독상은 마틴에게 돌아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틴 스콜세지는 얼마 전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다'라는 신념을 거침없이 밝힘으로써 논란이 됐었죠. 

그 부분에서 많은 표를 잃었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남우주연상(ACTOR IN A LEADING ROLE)

<기생충>의 배우들은 아카데미상 후보에서 제외됐습니다.

현지 언론과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오스카가 아젠다의 문제에 휘말려 마땅히 받아야 할 <기생충>의 배우들을 수상에서 뺐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 자체가 등장인물 각각이 직간접적인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해 스토리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죠.

이런 류의 영화는 마치 팀업 무비처럼 배우 한 사람이 주목 받기 힘든 한계를 갖습니다.

애초에 배우 한 명이 가진 비중과 연기의 집중도, 캐릭터 해석의 깊이를 높게 치는 아카데미의 연기상에 거론되긴 힘들어요.

후보들을 보면, 다들 받을 자격이 충분한 배우들입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페인 앤 글로리>는 지난 칸 영화제에서 <기생충>,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함께 황금종려상의 유력 후보라 거론됐던 스페인 영화죠.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뜨거운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또한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잘 보여줬고, <결혼 이야기>의 아담 드라이버도 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영화에서의 열연도 훌륭했고, 아담 드라이버 자체가 워낙 기초부터 잘 다져진, 출중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이기 때문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 생각합니다.

<두 교황>의 프란치스코 교황 역을 맡은 조나선 프라이스도 경력다운 섬세한 연기 노미네이트 됐습니다.

상은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에게 돌아갔습니다.

<조커>인상깊게 본 관객이라면 올해 어떤 영화가 나오든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보다 훌륭하긴 힘들 것이라는 데에 동의할 겁니다.

깊게 가라앉은 감정 표현과 선이 무척 굵은 아서 플렉, 조커의 캐릭터를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소화해 냈죠.

배우가 걱정이 될 정도로 하나의 인간이 작품 속의 캐릭터 자체로 화한 듯한 연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포드v페라리> 캔 마일스 역으로 기가막힌 연기를 선보였던 크리스찬 베일도 주연상의 자격이 있다 생각했는데 후보에도 오르지 못해 아쉽군요.




여우주연상(ACTRESS IN A LEADING ROLE)

여우주연상에 대해서는 아직 크게 할 말이 없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후보에 오른 배우들의 작품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작은 아씨들>은 막 개봉한 참이라 곧 보러 갈 예정에 있고, <헤리엇>이나 <밤쉘>은 국내 개봉 예정이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 <주디>는 국내에서 3월 중순쯤 개봉할 것 같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본 작품은 <결혼 이야기>입니다.

후보를 보죠.

수상은 <주디>의 르네 젤위거에게 돌아갔습니다.

실존인물 주디 갈란드의 생애를 그린 전기 영화라고 합니다.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활동했던 여배우이자 가수 주디 갈란드.

그녀의 생애는 한편의 영화에 담기에도 모자랄만큼 처연하고도 화려했으며, 지극히 비참했습니다.

<스타 이스 본>의 원작인 1954년의 <스타 탄생>에서, 그녀의 재능은 그 찬란한 빛을 내뿜었습니다.

보통 1939년 작품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역할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주디 갈란드의 진가는 <스타 탄생>에서 제대로 드러났다 생각합니다.

무척 기대되는 영화네요.

<결혼 이야기>에서 이혼을 준비하는 니콜의 섬세하고 먹먹한 감정을 잘 표현한 스칼렛 요한슨도 후보에 올랐습니다.

시얼샤 로넌은 타고난 외모에 비해 연기력에 기복이 좀 있는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레이디 버드> 이후로는 안정감을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작은 아씨들>에서의 연기도 기대가 됩니다.

영화 <밤쉘>은 미국 최대의 뉴스 채널 '폭스 뉴스'에서 벌어졌던 창립자 로저 에일스의 성희롱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영화입니다.

예고편만 봤는데도 샤를리즈 테론의 숨막히는 매력과 미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군요.

니콜 키드먼과 마고 로비도 함께 열연을 펼친 작품이라 하니 큰 기대가 되는 작품입니다.

미국의 인권운동가이자 흑인 노예의 해방을 이끌었던 실존인물 헤리엇 터브만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해리엇>의 주인공 신시아 에리보도 후보에 올랐습니다.

신시아 에리보의 대담하고 결의에 찬 모습들을 볼 수 있었던 예고편이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영화는 아마 국내 개봉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해외 DVD를 구해 봐야 겠네요.

여우주연상의 후보들도 납득이 갈만한 배우들이었습니다.


 



이렇게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BIG 5, 다섯 개 주요 부문의 노미네이션과 수상의 주인공들을 되짚어 봤습니다.

눈여겨봤던 다른 부문들도 간단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토이스토리 4>의 수상에는 절로 박수를 치게 되더군요.

문득 지금껏 우리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해 준 <토이스토리> 시리즈와 우디, 버즈를 비롯한 모든 장난감들에 바치는 헌정이라는 생각이 들어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남우조연상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브래드 피트에게, 여우조연상은 <결혼 이야기>의 로라 던에게 돌아갔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작품에서 개성있는 캐릭터로 주인공 못지않게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죠.

혹시 <1917>에게 돌아가면 어쩌나 싶었던 편집상은 예상했던 대로 <포드v페라리>가 수상했고, 추가로 음향 편집상까지 받게 됐습니다.

손에 땀을 쥐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감상했던 레이싱 부분은 가히 최근 제가 본 영화들에서 본 수많은 장면들 중 가장 박진감이 넘치는 장면이었습니다.

레이싱장에 직접 와있는 듯한 느낌이 절로 들 정도의 생생한 현장감을 연출해낸 배기음 또한 압권이었죠.

편집상과 미술상에 <기생충>이 노미네이트 됐었는데, 다른 후보작들에 비해 수상 가능성은 낮았다 하겠습니다.

국내 다큐멘터리 최초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이승준 감독의 세월호 관련 단편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은 수상의 영광을 안지 못했습니다.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은 캐롤 다이싱거 감독의 <러닝 투 스케이트보드 인 어 워존>입니다.

끊임없는 전쟁의 나라, 절망이 가득한 아프가니스탄의 카불 지역에서 소녀들이 스케이트보드와 글을 배워가며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곧 우리나라의 라이프 채널에서도 방영할 예정이라 하니 감상해 봐야겠군요.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전 세계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스카는 미동보다는 태동을, 타협과 안주보다는 혁신을 선택했습니다.

영화 <기생충>의 높은 완성도가 트럼프 시대의 시대정신, 그리고 영화계에 만연한 자본주의의 문제의식과 만나 이뤄낸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도를 전후한 시기의 우리나라 영화들을 보세요.

괴상하고 엉망진창인 영화도 많았지만 그만큼 훌륭한 작품, 좋은 영화도 쏟아지다시피 만들어졌던 시기입니다.

영화의 제작과 투자, 배급에 거대 자본이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작품성은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리우드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죠.

좋은 감독들은 영화계를 떠나고 소위 돈이 되는 감독, 그러니까 배우와 배경, 소재만 바꿔가며 흥행공식이라는 비슷한 틀에서 양산형 영화들만 찍어대는 '자본 충성형' 감독들이 넘쳐 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죠.

연출자들이 온전히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구조가 된 겁니다.

아시아를 기준으로 이야기해보자면, 일본의 경우에는 영화적 완성도의 수준이 퇴보의 일로를 걷는다 할 만큼 일제히 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외에 세계적으로 눈에 띄는 감독이 전무 하다시피 합니다.

과연 가까운 시일 내에 구로사와 아키라나 미야자키 하야오 정도의 거장이 탄생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중국은 사회주의 선전 영화를 그만 만들거나 할리우드 흉내를 멈추지 않는 한, 블록버스터를 빼고는 세계적인 작품의 탄생이 아예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고, 대만 영화도 마찬가지로 꾸준히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동남아시아, 특히 인도에 희망이 있어 보입니다.

인도의 경우 영화 시장도 엄청나게 크고 영화를 보면 만듦새도 꽤 자유롭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엄청난 인구와 수많은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라는 면에서 인도 영화계에서도 조만간 걸작이 탄생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기생충>이 영화계를 한번에 바꾸지는 못합니다.

기업과 거대 자본은 계속해서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누를 것이고, 창작자들은 자본에 따라 기꺼이 억눌리고 휘둘리게 될 겁니다.

하지만 변화를 향한 새로운 역사의 첫 걸음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에 예술과 창작물, 영화의 본질에 관해 묵직한 사유의 계기를 던졌다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영화인들이 모이는 LOCAL, 영화계의 중심이자 정점임을 부인할 수 없는 LOCAL, 영화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역축제가 열리는 LOCAL, 가장 권위적이고 가장 보수적이기에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LOCAL.

오스카라는 철옹성의 벽을 허문 것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 후기는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캐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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