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일의 동기부여 #03
서투른 익숙함이 무르익으려고, 달콤한 빛깔을 갈망하는 순간을 스쳐가고 있다. 혼잡한 부서의 분위기에 처음에는 온몸이 오그라드는 듯했다. 여기저기 전화벨이 울리고, 회의의 열기는 항상 뜨거운 이곳이었지만 나는 마침내 고요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 나의 귀에는 소음이 아닌 익숙한 것들로 전환되어 통과되었다. 그래, 이 소리들이 있어야 짜릿한 긴장감과 아슬아슬한 동기부여가 내 몸에 깃들 수 있다.
인턴 생활을 보름째 달려가고 있는 나에게 기쁜 소식이 하나 생겼다. 바로 자기 계발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인턴 업무의 특성상 사실 근무 시간 내에 시간적 여유가 있는 건 사실이다. 물론 기업과 부서의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꽤 여유가 남았다. 팀장님도 이점을 잘 아시기에 업무에 차질이 없는 한에서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업무를 천천히, 종료 시간을 자의적으로 늘릴 수 있겠으나 내 성격에는 안 맞았다. 당장 처리할 수 있으면 하는 게 맞고 무엇보다 어떤 무게든 업무가 밀려있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그래서 읽고 공부할 네모난 친구들과 긴 시간을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
꼭 정독하자고 마음먹었던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 1년 전쯤 풍부한 에세이를 읽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구매했었다. 그러나 변명 덩굴로 가득한 나날이 나를 덮쳐왔고 그렇게 새것 특유의 빳빳한 질감은 지금까지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제 타의가 가득 찬 과육에서 나는 뜨거운 자의로 씨앗을 불릴 생각에 들뜬 마음을 품었다. 치덕대는 가시 덩굴들은 확연히 허술해 보였다. 씨앗은 꼼지락대며 자리를 넓히기 시작했다.
낭만적 운명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첫 번째 목차이다. 어떤 책이든 간에 독자는 모든 검정들에게 최상의 집중도를 유지할 수 없다. 수많은 개인적 이유가 앞길을 막는다. 그러나 마음을 관통하는 호소에 공감을 느끼게 된다면 마치 레드카펫 위의 워킹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사전적인 낭만과 운명, 하나만 나에게 대입하기에도 벅찬 현실이다. 낭만적 운명을 신봉하는 것은 마치 일생 중 어느 정도의 기간에 현혹되어 광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과 같다. 물론 그 시간 자체도 결국 개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생각과 마음가짐을 집어넣을 것이고, 퍼석거리고 퀴퀴한 성장이라도 가지를 치게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낭만이 내 시간을 아주 느리게 잡아당기고 있다는 것을. 왠지 부서에 계신 분들이 더욱더 좋은 사람으로 보이게 됐다. 한 층 더 올라가서 어느 연구실에 있는 내 절친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두 명 다 합격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같은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인연의 실이 더욱 굵어지고 매끈해진 것을 확신했다.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바쁜 웃음의 메신저는 존재하지 못했겠지. 그리고 완벽에 가까운 공감대를 가지고 스트레스를 공유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 감사하게도, 끊임없이 업무가 쏟아지는 상황이 내려지지 않아서 나는 메마른 황홀을 지금 경험하고 있을 수가 있다. 갑작스럽게 황홀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주말까지 겨우 3일밖에 안 남았다니, 가뿐한 걸. 어라. 정상적인 사고가 참견을 하려고 해도 어림없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뭘까. 알게 뭐야, 어떤 생각을 해도 지금 당장은 핑크빛으로 떠올랐다.
돌아와서, 운명 또한 집필된 하나의 책과 같은 시간의 일부에 불과하다. 낭만이든 파멸이든, 믿음과 운명론은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바로 사람의 감정은 그렇게까지 단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감정은 무르기에 느낌과 정을 가진 단어가 될 수 있었다. 또 감정 앞에 항상 약자가 되는 사람이기에 아이러니의 운명론을 창조하고 따르게 된다.
지금 당장의 분위기와 미래 설계는 절대로 결승선까지 도달할 수 없다. 결승선은 나의 욕심으로 인해 항상 멀어지고 장애물은 험난해진다. 그러나 나 또한 감정의 노예이기에 허황된 것에 중독된 것처럼 만지작거린다.
운명이라는 거창한 말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화려한 포장지는 독이 든 사과를 낳는다. 하지만 당장 불어오는 낭만이라는 정겨운 바람에 흠뻑 몸을 던지겠다. 지금의 기분이 과한 윤활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없이 찰칵대는 장면을 자각한 뒤, 제4의 벽 건너편의 나를 마주하는 것은 진귀한 장면이다.
보통 추억은 지나갔기에 추억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의 순간이 나중에 웃음 지을 수 있는 무언가가 될 것이라고 확신을 가진 때는 손에 꼽는다. 그러니 신중하고도 천천히 흩뿌려진 낭만을 음미하겠다. 과한 당분에 머리가 지끈거리듯 아파와도 긴장이라는 냉수로 진화시키겠다.
살랑살랑함은 그칠 생각이 없는 듯 순풍을 타고 항상 나에게 불어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