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일의 동기부여 #02
어느새 작년의 해도 끝나고 새해 첫 주의 내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과연 올해의 처음은 빙그레 웃는 얼굴로 시작할 수 있을까.
업무에 있어서 조금씩 주위 환경이 눈에 익고 익숙해지는 시기, 자신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가장 처음으로 느끼는 이 시간이 경계 대상 1호이다. 익숙함만에 집중해 생각지 못한 실수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작은 업무라도 두 번, 세 번 더 생각했다. 마무리까지의 과정을 꼼꼼히 살폈다.
사실 직급에 상관없이 아직 분위기에도 적응 못한 사람이 모든 일처리를 완벽하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철저함 아래로 재능과 노력을 모두 가진 대단한 분이실 것이다. 배정받은 업무가 복잡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실수가 있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첫인상이라는 게 사회에 있어서는 더욱 중요하니까 말이다.
'저분은 경험도 있고 업무 하시는 데에 있어서 확실히 익숙하신 면이 많구나.'
이런 이미지로 비치고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일을 시작하면 가지는 생각일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긴장하고 만약 실수를 하게 되면 자괴감에 주먹으로 머리를 꽁 한 대 박기도 할 것이다. 적응에 필요한 과정이 필수적이나 시간이 흐른 후에는 처음엔 다 그렇지라고 넘겨버리는 일이 되어버리니, 오히려 긴장감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세를 가지기로 했다. 과한 긴장감을 떨쳐내려는 자기 위로적 태도이기도 했다.
항상 바쁜 전화가 가득한 부서다. 물론 나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당겨 받는 것 이외에는 거의 없다. 서른 페이지가 조금 넘는 업무 기본규정을 꼼꼼히 정독하고 있었다. 전반적인 연간 업무 과정을 정리해 둔 것이니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특히 업무에 관련된 어휘나 약자를 익히니 다른 분들이 나누는 업무 대화가 자연스럽게 들렸다.
"훈 씨, 혹시 바빠요?"
"아뇨,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한 연구원분이 조용히 나를 자신의 자리로 부르셨다. 혹시 실수한 게 있나 싶어 긴장을 두세 숟가락 허겁지겁 떠먹고 갔다.
"부서 분위기는 괜찮은 것 같아요?"
질문의 의도를 처음엔 파악하지 못했다. 신입에 대한 호기심인지, 아니면 내가 긴장한 모습이 보여서였을까. 인턴 업무가 정신없을 정도로 바쁘지 않다는 건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이 다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어색한 위치와 부담감에 피로감을 상당히 느끼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연구원님의 질문은 순수하게 물어본 것이었다. 부서에서 가장 적은 이야기를 나누고 업무적으로 접촉할 일이 가장 적은 사람이니까. 그러나 느끼는 긴장감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엄청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사람이 다른 이와 대화를 시작하면 시간은 윤기 있게 흐르니까.
"저도 처음엔 그랬으니까요. 모르는 게 아니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혹시나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여쭤보시고요."
많은 말을 해주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조금 많이, 뭉클함을 받았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연구원님의 친절한 표정과 건네받은 말투는 내 긴장감을 크게 덜어가 주었다. 처음엔 다 그렇다는 문장 자체가 어떤 이에겐 진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장에 상관없이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는 말은 항상 따뜻하다.
"넵, 감사합니다. 궁금한 점 있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리로 돌아가면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바쁜 와중에도 인턴의 움직임에 다들 어느 정도의 신경을 집중하시는 것 같았다. 처음엔 모두 나에 대한 걱정일 줄 알았다. 그러나 업무 시간 이외에 나에게 대해 주시는 태도와 방금 전의 위로를 곰곰이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주위를 돌아보았다.
걱정으로 가득 찬 것 같은 눈빛에는 공감 또한 들어있었다. 또한 새로운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객관적인 사실만 따져도 나는 신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부서 특성상 이공계를 전공하신 분이 대부분이었는데 인문 계열의 신입이 뚝 떨어졌으니, 다른 세상의 사람을 보는 기분일까.
내 자리에 다시 앉았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짜릿함이 머리까지 차올랐다. 갑작스러운 활기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그래, 사회를 비롯해 어떤 일이든 혼자서 나아가는 게 아니니까. 다른 분들까지 부담으로 치부하는 건 편협하고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혼자서는 절대 가벼워질 수 없는 봇짐을 매고 길을 떠난다. 앞에서 이끌어가는 분들의 눈빛이 무게를 더했다. 그리고 더욱 무거워진다. 차가운 빙판을 걷는 듯 숨이 가빠져왔다. 체온은 떨어져 가는데 흐르는 땀이 멈출 줄 몰랐다.
그런데 어느덧 따뜻한 남풍이 불어왔다. 흐릿한 앞길도 맑아졌다. 그리고 무게추를 달아주던 것 같은 시선은 내 지게를 거들어주었다. 봇짐을 무겁게 했던 건 시선에 대한 나의 쓸데없는 방벽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사람이 일찍 적응하는 법은 먼저 주위를 둘러보는 법이다. 그리고 그들의 걱정과 배려를 조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네주는 손을 감사와 함께 꽉 잡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