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부산했던 생활을 정리하며
89일의 동기부여 #00
이전 회사를 퇴사하고 어느덧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양 손가락으로 충분히 셀 수 있을 만큼 아주 다양한 생활은 아니었다. 미래가 불확실한 모든 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열정은 메말랐고 끊임없는 자신감의 하락과 자기 비하가 뒤따랐다.
그래서 나의 스물여섯 후반기는 어땠는가.
처음 2개월은 사람을 만나느라 바빴다. 대학을 채 졸업하기도 전에 입사를 했었으니 말이다. 물론 코로나19의 여파와 4학년 2학기라는 안타깝고 특수한 기간이었기에 가능했던 점이었다. 입사 후 몰아치는 업무와 부족한 휴일에 정신 차릴 틈이 없었다. 퇴사를 결정하니 머리가 맑아진 듯했다. 정신을 그제야 차린 것 같았다.
원래 좋았던 사람, 새로이 만난 사람, 그리고 우연히 만난 이들까지. 사람 만나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나로서는 해일처럼 차오른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며 여기저기 다니게 되었다. 돈을 버는 이유를 스스로 찾은 듯이 종횡무진이 내 일과였다. 그렇게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물론 시간이 잉여처럼 내 주위를 지속해서 맴돈다는 건, 결국 악재가 될 것이 뻔했기에 구직에도 가장 힘썼던 기간이었다.
반년의 중간 지점에 다다를 때쯤 잉여로운 생활이 버겁기 시작했다. 어떤 행동을 하든 간에 낮은 텐션과 자존감의 하락으로 귀결됐다. 에세이가 아닌 다양한 글에 도전하려고 했었고, 새로운 직장을 계속 알아보았으며, 또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데에 필요한 공부도 병행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빛나는 별들은 내가 존재하는 행성에 떠있는 게 아니니까. 살갗에 파고드는 냉혹한 현실감은 나를 얼어붙게 했다. 결국 모든 것을 놓았다. 보통 이런 상태를 번아웃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나는 어떤 하나의 일에 미친 듯이 열중한 게 아니다. 불타오른 적도 없었고, 그냥 아웃인 상태였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생활패턴과 자기 관리에 취한 듯이 지냈다. 거울을 보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내가 바라는 모습에서 훨씬 멀어진 모습이었다.
그러던 와중 감정적으로 절제가 너무나도 힘든 날이 있었다. 드디어 나는 미친 걸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던 날에, 친구에게 장난이 섞인 말로 자살기도를 했다. 나를 너무 잘 알던 친구는 크게 웃으며 '나갈까?'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그날 저녁, 나는 참 많이 혼났다. 자기 비하는 왜 이렇게 늘었으며 도대체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은 거냐고. 나도 비슷한 상황이고 다 그렇다며 그만 좀 자신을 후벼 파라는 직언이 돌아왔다. 잦은 음주로 물든 나날이었지만, 그날의 술자리는 나에게 변환점을 마련해주기에 충분했다.
다음 날, 오전 8시에 눈을 떴다. 이른 기상 시간에 더욱 가중된 중력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를 꽉 깨물고, 억지로 다이어트 식단을 챙겨 먹으며 헬스장을 방문했다. 탈의실 거울에는 늘어난 뱃살과 왕밤빵 같은 얼굴이 비쳤다. 그래,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이고 확실히 새겨두자는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보았던 탈의실의 내 모습은 확연히 달라졌다.
하찮은 우울감이라는 늪에서 탈출하려는 내 노력에 하나의 동기가 추가되었다. 공기업 계약직 인턴에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사무에 대한 흥미와 안정적인 삶에 글을 시즈닝 하자는 나의 목표에 알맞은 성장제였다. 서류 제출 후 합격한다면 면접까지 약 보름, 나에게서 불길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다시 나를 늪으로 잡아넣으려는 수많은 감정의 넝쿨들을 모조리 끊어냈다. 그리고 면접 당일, 수많은 시물레이션과 자기 세뇌를 되뇌었다.
후회 없는 면접이었다. 당황했던 질문도 없었으며 대답을 절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 생각을 꽤나 순조롭게 얘기한 듯했다. 압박 면접이 아니었던 게 한 수 거들었다.
며칠 뒤, 면접에 합격했다는 문자가 도착했고 입사일은 2021년 12월 27일이었다.
그래, 바로 내일이다. 첫 출근이 가장 긴장되는 법이니까.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내가 선택했고 선발되었으며 꿋꿋하게 이겨낼 테니까 말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 활기가 돈다. 내가 자주 지인들에게 말하는 문장이다. 고되고 힘들고 항상 스트레스를 받고 살지만, 인간은 몸을 움직여야 뇌가 활성화된다. 인생을 관망했을 때 뼈저리게 느꼈던 첫 번째 생각이다.
그렇다면 나는 89일간 어떤 동기를 얻을 것인가.
첫 번째, 글을 조금 억지로라도 써보자. 나에게 글이라는 것은 매일매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생각이 지도를 촤라락 펼치는 것처럼,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라는 감탄사가 일어야 나는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있는 성격이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수 천, 수 만권의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현대 사회에 나는 단지 부족함을 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어떻게든 기록할 것이다. 매일매일은 조금 무리가 있더라도, 이전처럼 잊을 때쯤 돌아오는 그런 글을 쓰고 싶진 않다. 판타지, 하이퍼 리얼리즘, 아니면 그냥 만족스럽지 못한 글이든 어떤 것이던 좋다. 글이라는 것이 단순 반복하게 쓸 수 있다는 개념의 범주가 아니지만, 그런 느낌을 가지고서라도 글을 써보도록 하자.
두 번째, 많아진 상념과 글에 더욱 철저한 자기 관리다. 업무 상에 있어서 존재하는 스트레스와 문장을 빚어내는 고통까지, 스트레스와 하루 생활에 대한 압박감이 최소 두 배는 가중될 것이다. 이것을 이겨내려면 자기 관리, 즉 운동이다. 지금도 꾸준히 실천하고 있지만 더욱 철저하게 유지하자. 바쁜 와중에 자기 관리는 부담감의 증폭이 아닌 스트레스의 탈출구인 것을 나는 너무나도 알고 있다.
마지막은 이 기록을 하나의 완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3개월의 노력이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리고 변화의 기승전결, 그리고 어떠한 클라이맥스를 보여줬는지. 실낱같은 결과라고 해도 완성에 집념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혹여나 내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긍정적인 물결을 얻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다. 내가 글로 치유받고 여정을 정했던 것처럼,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나눠보고 싶은 열정이다.
새로운 시작과 하나의 끝을 위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