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끝을 지나친다
89일의 동기부여 #01
첫 출근의 한 주가 지나갔다. 12월의 마지막 일이 다가왔고, 한 해는 가장자리까지 밀린 모습이다. 끝자락에 서있는 이와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안타까움, 혹은 회한을 담고 있다. 회사의 내 자리에도 벅차게 밀려온 하나의 365일을 떠넘기고 새로운 캘린더가 자리했다.
긴장을 풀 수 없는 아기새. 89일간 머물 새로운 직장에서의 첫 모습을 비유한다면 딱 이 모습일 것 같다. 사회생활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모든 것이 어색했다. 물론 보편적이고 매체를 통해 자주 접했던 회사라는 구조이자 이미지이지만, 결국 그 분위기는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의 몫이니까.
연말이라 항상 울리는 전화벨, 그리고 신년 계획안에 대해서 부서 내에서 끊임없는 토론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 하나는 낄 틈이 있었는지, 첫날에 무사히 소개도 마치고 자리를 배치받았다.
다다익선, 인력도 물론 포함된다. 하지만 이미 걸림돌이 없어 잘만 흘러가는 강류에 나라는 물줄기가 더해졌다. 근사한 차이라고 해도 무언가 바뀐 것이 있으니, 혹시나 불안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을까. 몹시 걱정스러웠다.
부서 내 모든 이들이 다 알고 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조심스럽다. 편안함과 배려를 충분히 베풀고 당연한 이해가 뒤따르지만 그 속에는 가시 같은 조심성이 송송 맺혀있다.
이틀, 사흘이 지나면서 회사 정문이 익숙해졌다. 근무시간선택제로 8시만 넘어도 주차장은 꽉 찬 시야를 제공해줬다. 큰 업무가 없으니 나는 업무 보고의 절차를 살펴보고, 어떤 식으로 작성했는지 꼼꼼하게 읽었다. 내가 전부를 담당하지는 않겠지만, 혹여나 처음 업무를 부과받으면 모두의 혹여나 하는 기대를 덜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나 이외의 자리가 조금씩 눈에 익었다. 나는 어차피 곧 떠날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들에겐 한 해의 톱니바퀴에서 흔히 있는 해프닝일 테니까. 그럼에도 부서의 모든 분들은 나에게 많은 친절을 베풀어주셨다. 필요한 것 이외에도 언제든 피드백해주겠다는 배려의 한 마디가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래서 더욱 여쭤보기 어려웠다. 그들에겐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일과 마침표를 향해 바삐 달려가는 그들을 잠시라도 멈춰 세우기가 죄송했다. 수십 번 고민하고 최대한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다. 그리고 짧은 일정에 있어서도 작은 실수를 할까 두려워했다. 퇴근을 해도 긴장이 다 풀리지 않았으며 맛있는 집밥을 저녁으로 먹어도 목이 메는 듯했다.
불안한 감정들이 나를 두드리지만 지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 능력, 배경이 떨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지켜보는 분들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하고 믿음으로 뒤를 맡길 수 있는 부서원이 되고 싶었다. 꿋꿋하고 당당하게 말이다. 또 마음에서는 이겨내자라는 외침이 계속해서 메아리쳤다.
무엇보다 과한 긴장감이 나쁘지 않다. 당장 스트레스를 호소해도 결국 나의 양분이 되고 성장통으로 회상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제 첫 주의 근무가 끝났다. 마음이 급해도 몸까지 급하면 안 된다. 수십 번 부서져도 수백 번을 다짐하는 날들이었다. 부서진 것들이 나를 찔러서 비록 눈물이 흘러도, 동기부여를 향한 당연한 과제일 것이다.
적응이라는 열쇠를 세공하는 나 자신을 직면하자. 입술이 벌벌 떨려도 마침내 웃게 될 테니까.
시간, 날짜라는 단위도 사람이 정한 것이지만 분명 그 이유가 있다. 무한한 것을 유한한 것처럼 제한하는 것이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지만, 전부를 바라보고 느끼기에는 세상은 너무나도 거대할 따름이다.
끝이라는 건 내가 정지해야 비로소 만나는 것이다. 쳐다보기도 힘든 하루의 끝, 밤하늘을 아주 작은 조각들로 나누어보자. 마치 돌멩이처럼 우리가 손에 쥐고 사진처럼 바라본다고 생각하자.
임의로 정한 시간의 끝이 다가오고 바스러진다. 그리고 나는 그때 멈춘다. 하지만, 또 다른 내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반짝이는 조각에 작은 어떤 것을 얻고 조금은 달라진 내가 새로운 끝을 바라본다.
첫 주의 끝, 그리고 올해의 끝이 다가왔다. 바통을 이어받는 내 모습이 보인다. 아직 몸이 떨리는 듯 보인다. 그래도 입술은 조금 웃고 있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는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