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일의 동기부여 #04
- 연어 먹고 싶은데 퇴근하고 포장해갈까.
- 맛있겠다. 같이 먹을래?
- 그래, 마치고 내 차로 가자.
퇴근을 거의 앞둔 무렵,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늘 저녁은 다른 부서의 절친과 함께 연어 사시미로 결정되었다. 저번 주에 시작된 낭만이라는 순풍은 이번 주에도 솔솔 불어올 듯했다.
업무적으로 더욱 긴장감을 가지는 월요일을 무사히 마친 후의 저녁이었다. 자주 가는 이자카야에 익숙한 메뉴들을 주문하자 나는 한껏 그립고도 익숙한 정감을 받았다. 회사에서는 서로 업무적으로 궁금증이 있을 때나 메신저를 이용했었기에 평소에 느끼던 짙은 편안함은 사실 느끼기 힘들었다. 그래도 나 혼자 헤매는 것이 아닌 미로의 옆집에는 바로 친구가 있었으니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났지만 말이다.
부드러운 연어 사시미에 치킨 샐러드는 풍부한 식감과 함께 분위기를 한껏 올려주었다. 그리고 아쉬움이 바로 닥쳤다. 왜 내일이 휴일이 아닌 걸까. 맞은 편의 흥겨운 이도 많이 아쉬운 듯했다. 결국 우리는 딱 한 병씩만 비우자는 퇴근 전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조금 고생할 내일의 자신을 멋쩍은 웃음으로 응원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오늘 인턴분들 계좌 취합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냐면……."
"나는 팀장님께 새 업무를 받았는데. 그게 부장님 지시라는 거야. 처음 듣고……."
오늘의 스트레스를 버텨낸 이들이 피로를 씻어내기 위해 앉은 자리의 주제는 평범했다. 업무가 끝났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다. 하루분의 긴장감과 철저함을 바닥까지 긁어 소비한 대화는 불이 꺼질줄 몰랐고 수많은 감정들이 이야기의 급류를 타고 서로에게 경쾌한 인사를 건넸다.
업무는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해방감을 가진다.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업무에 관련된 대화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친한 이를 만날 때에 업무에 대한 더욱 많은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고민하여 결정했던 점이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혹은 상사의 오늘의 잔소리와 그나마 조금의 웃음을 챙길 수 있었던 이야기와 같이 말이다.
누구는 일 얘기는 이렇게 소중하고 좋은 시간에는 좀 사양해주면 안 될까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또한 업무 시간마다 입는 턱시도와 가면이 흔들릴 위기에 처하면 어느덧 가장 친한 친구에게 속을 토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흔하게 비유하길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항해라고 한다. 자신이 느끼기에 가장 편한 시간에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면 업무는 난이도가 월등히 증가한, 거칠고 사나운 바다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생을 비롯해 업무 상황은 더더욱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발자국이 찍힌 이야기에 대해서는 우리는 재창조의 기회를 가진다. 수많은 역사서가 같은 담백한 내용을 가지고 있더라도 표현하는 방식은 모두 다른 것처럼 말이다.
개성을 필두로 집필하려는 내용의 중점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에 느꼈던 감정이 차마 비슷하더라도 세세한 부분까지는 절대 일치할 수 없다.
퇴근 후의 우리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힘겹게 걸어온 오늘의 역사를 내 마음이 가는대로 조리하고 싶을 것이다. 오늘의 저녁 식사에 자신에게 꼭 어울리는 메인 요리로 둔갑시키려고 한다. 혹은 어떤 이는 묵혔던 감정을 씁쓸하지만 시원하게 쓸어내리는 위스키 한 잔을 그릴 수도 있다.
자신의 지문이 여기저기 범벅이 되었는데도 나의 이름이 쏙 빠진 것 같은 결과를 보았을 때는 더할 나위 없는 절망감을 느낄 수 있다. 망각과 자가치유를 가진 인간의 습성으로 각자만의 조율을 이끌어낸다. 거짓이 아닌 거짓의 붓으로 화려하게 덧칠한다. 순도 99%의 절망은 과하게 쓰고 얼굴이 찡그려지지 않는가.
망각은 자신이 걸어온 길이라고 해도 일거수일투족을 기억할 수 없게 한다. 아무리 크게 느꼈던 감정 또한 망각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에 가장 진하게 기억하는 당시에 망각은 우리를 부추긴다. 너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에게 당장 이야기 해. 오늘 저녁에는 술 한 잔도 같이 기울이는 건 어때. 운동회의 출발선을 앞에 두고 떨려하는 자녀의 등을 밀어주는 부모님처럼, 힘든 기억을 최대한 빨리 잊도록 밀어주고 멀지 않은 미래에서 이끌어준다.
자가치유는 뜨거운 핏자국이 선명한 역사에 차가운 정화수를 들이붓는다. 오늘 이만큼 힘들었으니까 더욱 큰 갈증을 느낀다. 망각과 같은 두레박으로 갈망의 해소를 바란다. 갈망을 조금씩 채워가는 과정에서 연고가 상처를 아물게 하고 있다는 느낌을 물씬 받는다. 그리고 내 갈망을 배려해주고 받아주는 상대방에게 더욱 큰 신뢰와 친밀감을 가지게 된다.
말끔히 비우고 산뜻하게 내일을 위해 돌아가는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껏 흥이 달아올라 있는 이들, 아쉬운 손짓과 함께 떠나는 이들, 내일은 휴가라며 기뻐하는 이들까지. 어떤 복장이든 간에 눈에 비치는 모든이 명찰을 패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 명찰들이 거북목과 굽어가는 허리의 숙주라고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도 같은 모습일까 싶어 괜히 허리와 목을 꼿꼿히 세워본다. 그러고 숙취해소제를 사가지 않겠냐며 친구에게 물어보며 후다닥 달려갔다.
세상은 항상 바뀌어도 변함없이 떠있는 저 밤하늘처럼 고단하게 그려내는 각자의 조율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