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일의 동기부여 #07
연휴도 어느덧 지나간 과거라고 생각이 들 때쯤, 집중하는 부서의 분위기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 자리에 있는 휴대폰이 반짝하면서 인사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뭔가 일이 닥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 전화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훈 씨. 저번 주에 뵀던……."
"알겠습니다. 쾌유하시길 바랄게요. 네네."
뚝. 생소하고 불안한 일이 찾아왔다. 조금 혼란스러웠으나 사수 연구원 자리로 당장 찾아갔다.
"연구원님, 제가 저번 주에…."
"훈 씨, 바로 자리 정리하시면 될 것 같아요. 팀장님께는 제가 지금 말씀드릴게요."
점심이 넘어가기 직전인 무렵 자리를 정리하는 내 모습은 무척이나 어색했다. 소름과 함께 닭살이 돋는 듯했다. 정리를 마쳤을 무렵, 팀장님께서 자리로 찾아오셨다.
"훈 씨 검사받고 바로 연락해요."
"네, 알겠습니다. 검사받고 결과 나오는 대로 즉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조용히 일어서고 싶었으나 이미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듯했다. 그들의 눈에서 밝음과 동기부여를 보려고 했던 나이지만 오늘만큼은 혹시 모를 불안들이 서려있는 것 같았다. 뒤돌아서 부서를 나가는 초라한 나의 등에는 많은 우려들이 안착했다.
사건은 이랬다. 연휴를 마치고 출근하기 전 보건소에 방문할 일이 있었다. 방역 패스와 예방 차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어야 했다. 다른 부서의 절친과 인턴분, 그리고 나까지 세 명이서 검사를 받고 같은 차로 복귀했는데, 당일은 모두 음성으로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얼마 뒤 다른 검사에서 같이 가셨던 인턴분이 확진을 받았다는 것이다.
전화 너머의 상대방은 커다란 죄책감을 안고 있는 듯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아닙니다. 요즘 이런 일은 스스로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햇빛만은 유유한 거리를 지나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리고 다가오는 택시를 바로 잡았다.
"보건소로 부탁드릴게요."
보건소로 가는 차 안에서 그 인턴분께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불안한 소식에 소요가 번지는 회사의 모든 소리를 감당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듣지는 못해도 상상이 가중되어 더욱 마음을 짓누르고 으깨고 있지 않을까. 불안한 상상이 현실이 되고, 흐름이 지속된다면 결국 원흉은 자신이라고 얼마나 차가운 매질을 하겠는가.
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 열어보니 뭉클함이 담겨있었다. 나는 좋은 모습으로 곧 뵙자는 말과 함께 고이 접어서 다시 보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보건소에 도착했다.
이곳은 내가 사는 도시의 불안감을 한데 모은 듯했다. 모든 이들이 신경이 예민했다. 다른 이들의 건강을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하는 의료진분들의 노고에 안쓰러움이 나를 스쳤다. 무엇인가 소통이 되지 않아 버럭버럭 화를 내는 환자분의 마음도, 무섭다고 엉엉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모두 씁쓸함을 자아냈다.
문진표를 빠르게 작성한 뒤 줄을 섰다. 유유했던 햇빛은 어느덧 회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치 영화에서 볼 법한, 철가루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 같은 전경이었다.
당일의 검사는 음성으로 판정되었다. 하지만 이틀의 격리와 함께, 잠복 가능성을 염려하여 한 번의 검사가 더 필요했다. 격리 중 필요한 안내를 받고 귀가했다. 그러고는 부모님의 흔들리는 눈빛이 제일 먼저 보였다.
증상이 없다고, 마음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서 확신할 수 없었기에. 덤덤하게 부모님께 검사 소식을 전했다. 깨끗하게 샤워를 마친 후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털썩.
꼼짝 못 하는 휴식만이 나를 기다렸는데 피로가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보낸 반나절, 그리고 하루. 또 한 번의 검사가 찾아왔다.
"그럼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출근하면 되겠습니까? 네 연구원님, 결과 나온 이후로 격리 해제라고 들었습니다."
다행히 모든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아직까지도 피로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다. 일정이 무사히 끝나자 그제야 부모님은 한시름을 놓으신 듯했다.
절친 또한 다행히 같은 결과를 보았고 우리는 바라지 않은 긴 휴식을 보낸 것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상 일이 찰나에 어떻게 벌어질지 모른다며 항상 대비하고 긴장감 있게 살자는 의지를 굳게 다졌다.
주말이 가까워오는 무렵,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복귀하자 많은 분들이 고생하셨다며 인사를 건넸다. 연거푸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휴대폰을 밝혔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을 분께 안부를 건넸다.
'음성 받고 출근 무사히 했습니다. 염려 많으셨을 텐데 걱정 마시고 쾌유하시길 바랄게요."
조금 뒤 안도가 담긴 답장이 돌아왔다. 나도 그제야 모든 긴장이 풀어지는 듯했다. 계획된 연휴와 바라지 않았던 긴 휴일이 찾아왔기에, 이번 달은 정신없이 지나갈 게 불 보듯 뻔했다. 후우. 한숨 한 번과 함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에 전념했다.
근태와 휴일, 지루하게 반복되어 이제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이상 크게 와닿지 않는 평범한 날들이 다시 한번 소중함을 되찾았다. 긴박감과 함께 숨을 깊게 들이쉬며 현실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뜻밖의 상황이 가져다주는 경험과 흔들리지 않는 피드백의 중요성을 또 한 번 습득했다. 정신없었지만, 진심으로 정신이 없었간 많이 힘들었을 기간이었다.
철가루 가득한 소나기는 이제 바닥에서 조금씩만 부스럭거릴 뿐이었다. 가루의 투박한 냄새가 아직 코를 찔렀으나 지워지지 않은 뿌연 시야를 걷어내려고 노력했다.
비가 그치고 먹구름이 걷히면 화창한 날이 찾아오듯이, 더욱 빛나는 일상을 그려내고자 마음을 꾹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