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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Dec 18. 2022

단순하면서도 궁극적인

생각 노트 #23

 일상이라는 책 페이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촤락 소리를 내었다. 청아하게 혹은 먹먹하게 울릴 때가 있다. 그리고 가끔씩은 소리 자체가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너무나도 행복하거나, 그 반대일 경우이다.

   

 하지만 나에게 행복이란 목적지의 시초이며 결말이다. 하늘에 떠있는 달을 처음 바라본 때처럼, 그 둥그스름하고 몽환적인 원에 빠져드는 것과 같다. 가장 먼저 설정됐으나 도달할 수는 없는 찬란한 무언가를 뜻한다.




 그러니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는 반대가 나의 일상이었다. 끊임없이 추락하는 밤바다를 빗댈 수 있을까. 귀는 차가운 것들로 거침없이 막혀서 결국 아무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서늘하고 어두운 액체로 물들어가는 페이지는 물들고 죽어갔다. 변함없는 탐구심과 진전 없는 쳇바퀴에 바리케이드가 쳐졌다. 아무 소득이 없다고 한들 행동이 멈추면 더욱 추워지는 법, 더욱 이른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같다. 




 365일 흐린 날이어도 물기는 마른다. 갈기갈기 찢긴 먹구름 조각들에 미약하게나마 발길질을 했다. 익숙하지만 몹시 귀찮은, 마치 잠꼬대와 같은 행위였다. 이러한 날들도 나에겐 적응된 생활이니까.


 햇살이 조금 피었다. 아, 따스했다. 찰나의 기분에 지금의 고난을 이겨내고, 모든 걸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약과 같은 쾌락을 느꼈다.


 급격한 동기부여는 하나의 물음을 던졌다. 


 강렬히 원하는 것들을 얻지 못해 슬퍼하고, 멀리서만 바라보니 증오심이 피어난다. 익숙한 것들은 잃게 되면 큰 상실감과 불편함, 그리고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달과 지금 서있는 대지와 유사한 그들의 공통점은.




 사랑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다. 강구하는 것들은 받는 사랑의 양에 나 자신이 만족하지 못해 욕심낸다. 사람이든 환경이든, 혹은 물질이든 소유욕에는 정함이 없다.


 익숙한 것들은 그들이 주는 사랑에 난 이미 적잖이 젖어있다. 항상 나를 어느 정도 채워주고 있으니 지금의 소유에 현명한 자각을 할 수 없다.


 만약 내가 싫어하고 증오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달나라이지 않을까.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일치하는 사람이 부럽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에 이미 단념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것을 내가 사랑하게 된다면, 갈망과 가능의 구분점은 사라진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거쳐가는 사랑의 양과 종류를 결정하려고 애쓰지만, 모든 이를 사랑한다면 결국 어떠한 사랑이든 순수한 한 가지로 귀결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옛 성인들만 이루었던 초인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무지와 아는 것에 또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항상 인지하고 지내보려고 한다.


 허망함이 찾아올 때면 증오보단 이미 있는 것들에 사랑을, 싫증과 욕설 대신에 아무 말 없는 웃음을 지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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