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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Jun 11. 2023

행복이 담긴 별에는

내가 만난 사람들 #09

 가장 기쁜 말을 잊고 산지 오래됐었다. 둥글고 좋은 것들로만 가득 차있는 느낌을 주는 그런 말을 말이다.




 순수가 가득했던 시절에는 그래도 롤러코스터였다. 잠깐의 좌절과 절망은 고독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보다 무척이나 쉬운 것들로 방방 뛰는 기분을 얻기도 했다. 심장은 항상 요동치고 정신은 없었으나 높은 공기를 맡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덧 뿌연 것들로 가득 찼다. 담배 연기보다 자욱하고 씁쓸한 그런 것들이었다. 그 이후로는 잇몸을 질겅질겅 씹어대고 불규칙적인 눈물로 점철된 삶이었다. 염증에 동반한 흐른 것들로 온몸이 쪼그라들어 압축되는 기분이었다.


 괜찮았다. 통증이고 눈물이고, 내 감정과 마음이 수없이 반복된 일상에서 무감각해진 탓이 컸다. 서로의 시간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좋아하고 누릴 수 있었다. 수련을 하는 고행자처럼 혹은 배려형 개인주의자처럼 살고자 했다.


 그래, 혼자이지만 좋아질 것만 남았고 순풍에 나아갈 일만 남았으니까.


 어느덧 고요한 밤이 찾아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것은 거대한 해일이었다.




 질끈 눈을 감았다. 잊고 있었던 쓰라린 것들이 덮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잠잠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두둥실 몸이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시간은 밤이었으나 나를 덮친 것은 차가운 급류가 아니었다.


 별이었다. 아름다운 모습과 함께 나를 밝게 비춰주었다. 몸 둘 바를 모르며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 입꼬리 끝에도 작고 동그란 별들이 맺혔다.


 행복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느낌이 잊고 살았던 것이구나.




 나룻배를 열심히 저었다. 홀린 것처럼, 혹은 미친 것처럼 반짝이는 것에 다가가려고 했다.


 조금 더 거리가 가까워졌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별이 아니라 달이었다. 너무나도 이쁘게 생긋 웃는 보름달이었다. 장난기 넘치는 웃음을 머금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눈동자에 가득 담긴 순간 행복 너머의 아득한 무언가를 본 기분이었다. 옛말에는 토끼가 산다고 했다. 하지만 거짓이었나 보다. 달은 그냥 달이었고, 한 명의 미인이었다.


 저물지 않는 밤을 상상하며 시간이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어느덧 다시 뜨거운 것들이 몰려올 시간이 되었다.


 급격하게 치솟은 아쉬운 마음을 삼켰다. 그리고 달에게 애틋한 인사를 건넸다.

 



 나는 이카루스보다 더욱 위대한 존재가 되려고 했다. 태양에 가까워지는 것에 모자라 그것에 밧줄을 걸었다. 그리고 힘껏 꺼당기기 시작했다. 치열한 경기 끝에 낮의 둥근 것은 주르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밤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보름달이 아니었다. 반달, 혹은 초승달에 가까웠다. 마치 거북이의 눈을 연상케 하는 사랑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어쩔 줄 모르며 좋아했고 달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밤이라 어딘가 서늘한 기분이 마음속에 차오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행복이라는 밤에 취해 있었다.




 나에게서 따뜻한 바닐라 아이스크림 향이 난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살구색을 닮은 사람이 되고자 했다. 바닐라와 살구, 비슷한 색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더욱 밝은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서늘한 것은 무엇일까. 감정에 대한 죄책감일까, 아니면 미안함일까. 걸림돌이 없는 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행복이 가득 수 놓인 길이라고 해도 말이다.


 바닐라이거나 알맞게 녹은 체온이거나 혹은 내 마음이거나. 어떤 것이든 좋다. 이것 또한 따스하게 녹여서 그녀에게 전해주고 싶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나를 보고 걱정하며 신경 쓰는 그 사람을 보았다. 거짓말은 싫었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도 내가 더욱이 미안했다. 항상 나는 넘칠듯한 감정을 걱정했고 그 사람은 자기의 모든 것을 신경 쓰는 듯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바꿀 수 없다. 그러니 잠깐 고개를 든 기우가 눈치채지도 못하게 사라지길 기도하는 마음이다.




 행복을 이제야 처음 배웠어.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진심으로 웃을 수 있게 돼서 정말 기뻐. 잠깐 흔들리거나 힘들어도 나는 행복이라는 둥지에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그런 마음이야.


 이제야 알게 돼서. 행복에 있어서 나는 갓난아기도 맞고 바보도 맞아. 나 진짜 바보인가 봐. 너무 공감하는 바야.


 우리를 나눈 거리든 시간이든 나에겐 중요하지 않아. 실타래가 아무리 천천히 감긴다고 해도 결국 감고 당기는 것도 나 자신인 거니까. 더 큰 행복을 위한 과정이며 뒤돌아보면 싱그럽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추억이 될 거야.


 구운 밀가루를 좋아하는 나에게 항상 달콤한 것들로 가득 채워줘서 너무 고마워.


 오물오물 귀엽고 이쁜 참새 같은 모습이 떠올라.


 좋아해.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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