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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Nov 06. 2023

미약한 날갯짓에 웃음 짓는다

생각 노트 #29

 언젠가부터 감정의 급류에 꽤나 덤덤해지기 시작했다. 그릇이 넓어진 걸까, 수도꼭지는 어느 때처럼 난폭했지만 내 마음은 놀랍게도 잠잠했다. 콰아아 하는 소리와는 다르게 주기적이고 정교한 모양새까지 갖춘 파문은 나를 웃음 짓게 했다.


 한 순간은 불안했다.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모든 걸 거부하고 회피하는 건 아닐까. 난자한 감정에 벽을 세워 억지로 제방처럼 온몸으로 막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무너지게 되면 난 그들의 칠갑을 체념하며 받아야 하지 않을까, 늘 그랬던 것처럼.


 밑바닥을 두려워하는 심정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이미 환경은 나락이었으니. 나는 산소, 또는 혹은 행복 밀도가 적당한 고도를 접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잠깐 흘러오는 환기는 마약처럼 나를 홀리게 했다. 달콤한 환각을 경험하게 하여 낙하하는 추진력에 무게를 얹어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무엇인가가 넓어진 게 확실히 맞다. 오히려 깊은 곳을 잘 알기에 높이에 대한 객관화가 철저했다. 그러다 보니 끔찍했던 감정의 거미줄도 이제는 조금 반가웠다. 먹이줄에 걸린 이를 게걸스럽게 탐하러 오는 작고 수많은 자책들에게 이제는 멋쩍은 웃음도 짓게 됐다. 또 내가 걸렸다고. 그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파르르 떨리는 작은 날개에 그들은 우두커니 서서 바라만 볼 뿐이었다. 사냥감을 안쓰럽게 보는 대인배적인 사냥꾼들이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나에게는 확실한 날갯짓이었다.


 '혼자만의 나락에 끝없이 추락하고, 감정적으로 너무나도 힘들 때. 결국 그것도 시시한 한 때더라. 지나가면 감정은 사라지고 내가 당시에 한 행동만이 결과로써 남으니까.'


 아무리 두렵고 무서워도, 혹은 오히려 덤덤해도. 내 감정이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실색할 정도의 파도라고 해도 거미줄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파르르 한 내 몸짓에 마음은 고개를 돌릴 수 없기 때문에. 어느덧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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