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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Aug 20. 2024

던져진 주사위의 순간

생각 노트 #37

 어느 순간에나 나는 주사위를 던진다.


 다각도로 회전하며 연이은 충돌을 대비하는 모습은 나와 똑 닮아있다. 그의 고통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제는 아랑곳 않고 높은 숫자가 나오기를 기도한다.


 어느새 손금은 다 아있다. 하지만 난 매 순간 끊임없이 점을 친다고 할 수 있다. 빙그르르 도는 그의 모습에서 어두운 표정을 본 것 같다. 지금에서야 겉으로 티는 나지 않겠지만, 최상의 결과를 바라는 마음 아래에는 항상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측은한 눈동자였다. 그의 시선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동정받는 기분에 울컥해 다시 힘껏 움켜쥐었다. 다양한 모서리가 갈라진 손금을 쓰다듬어 주는 듯했다.

 

 따끔한 기분이 조금 가신 것 같다. 주먹 안이 부르르 떨리는 기분이다. 그는 어김없이 좋은 결과를 향한 발버둥을 치는가 보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의존이니 숭배니, 이미 나약한 나 자신이 단단해지고 강해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러나 나는 그를 믿는다. 내가 믿지 않으면 쓸쓸한 감정 또한 누가 알아줄 수 있겠는가.


 따닥, 소리와 함께 드디어 그가 정지했다.


 나는 세뇌된 듯이 숨을 헐떡거렸다. 어떤 숫자가 나온 것일까. 흐리멍덩한 시야에서 확인된 것은 소박한 기둥이었다.


 깊은 곳에서 욕지거리가 올라온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나를 가로막는 저 기둥을 혐오스러워했다.


 이제는 안다. 어떤 숫자에 관계없이 나오는 감정은 인위적인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초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나였을 텐데.

    

 그는 처음부터 나를 응원하고 있었던 것일까.


 왠지 아련해진다. 고개를 들어 마주한 그의 모습에 눈앞이 흐려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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