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을까. 붉은 등이 광활하게 펼쳐진 모습에 발걸음이 멎은 게. 무엇인지도 모를, 둥글지도 네모나지도 않은 것이 순진한 이의 시선을 홀려버렸을 때가. 무섭고도 아름다웠다. 엄마는 사람들의 소망을 적은 것이라고 했다. 잡은 손을 더 세차게 쥐었다. 아직은, 거대한 것이 섬뜩스럽다.
거리의 무수한 이들의 향연이 있었다. 물과 빛, 그리고 저마다의 사람들이 있었다. 책가방을 잠시 내려놓은 우리는, 고향이라는 것을 잊은채 촌뜨기가 되었다. 한 손에는 반짝이, 다른 손에는 향긋한 꼬치구이가 있었다. 부풀어오르는 열기에 질 수 없다는듯, 격렬하게 축제를 횡보했다. 피어나는 웃음꽃에는 열기가 담겼고, 곧 그것은 어중간하게 걸린 저 붉은 등이 되었다. 어릴 적의 을씨년스럽던 그것도 이제는 나에게, 우리를 빛내주는 추억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소망이 읽히지는 않았다, 단지 이쁜 배경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금요일 공강날이다. 다들 들뜬 마음으로 광란스러운 저녁을 대비하기 위해 대낮부터 '약주'를 걸쳤다. 뭐, 그래봤자 시퍼런 소주병이지만. 오늘의 술맛은 그 기분이지 않겠는가.
저마다 지는 잎을 털어낸 한량들은 걸음걸이가 경쾌하다. 나는 트렌치코트, 저 동생은 블레이져, 저기 저 형은...
한껏 뽐내서 그런지, 약주탓인지는 모르겠다. 이 순간은 아쉬워질 바람이고 명백한 그림이다.
그순간 이뻤던 배경이 미혹적인 색채를 띄웠다. 불현듯 뒤돌아본 나는 섬짓해야만 했다. 그들의 소망이 내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못볼 것이라고 본 것처럼, 어깨를 세차게 털어내고는 향수 가득한 일행에게 달려갔다.
지금의 유등은 어떨까. 최근의 것과 앞전의 시간을 통틀어도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역사는 격변했다. 나를 옭아매는 것들은 아직도 유효하나, 시야만큼은 다채롭지 않을까.
이제는 애달플 것이다, 선혈 같이 매달린 것들이. 하나의 소망에는 얼마만큼의 피가 응어리져있을까. 진정으로 눈물겹다.
또 눈부실 것이다. 노을이 담긴 등에는 그간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격려, 그들만의 치유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실일 것이다. 그냥 생판 모르는 남의 몇 만원으로 달아버린 등이다. 도시의 축제이고, 그들 중 누군가는 적자와 흑자를 면밀히 셈할 것이다.
또. 많은 의견이 있겠지.
눈을 감는다. 나는 모든 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