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후를 달래면서 하나님께 빌었어.
하나님, 아이를 달랠 수 있는 지혜의 말을 주세요.
재후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손을 주세요.
재후의 슬픔은 교감선생님의 말과 눈빛과 손끝을 빌어 잦아들었다. 분노와 공포,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재후의 눈빛이 풀리고 재후가 나를 쳐다봤다. 미안함과 후회와 유기불안이 뒤섞인 사슴의 눈이었다. 나는 두 팔을 벌렸고, 재후가 품에 들어와 폭 안겼다. 나는 재후를 안고 울었고, 재후도 엉엉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재후가 교과 수업 시간 도중 교실을 뛰쳐나갔다. 재후는 종종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 사고의 위험이 높았기 때문에 나는 황급히 재후를 찾으러 다녔다. 재후는 다행히 후관 현관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재후를 불렀다.
"왕자야, 도망가지 말고 이리 와, 괜찮아."
재후는 슬금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항상 고민에 휩싸였다. 화가 나면 교실을 뛰쳐나가버리는 재후의 문제행동을 지도하는 것이 우선인가, 재후를 달래고 끌어안는 것이 우선인가. 내가 제후의 문제행동을 제대로 훈계하지 않으면 제후의 문제행동이 강화될까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짧은 인생동안 너무 많이 다쳐버린 재후의 마음을 갓난아이 다루듯 세심하고 부드럽게 만져주고 싶기도 했다.
재후에게 교과선생님께는 사과드리면 된다고, 함께 올라가자고 했다. 재후는 나의 차분한 목소리에 진정되는 듯했으나 교과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자 감정이 격해지며 자기는 나쁜 사람이고 죽어야겠다면서 벽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나는 재후의 양 손목을 잡았고 재후는 손 놓으라며 악을 질렀다. 뛰쳐나가거나 자해를 하지 않겠다 약속하면 놓겠다고 했지만 손목을 붙잡힌 재후의 감정은 점점 더 격해지기만 했다. 재후는 온몸을 비틀며 소리를 질렀다.
"죽고 싶어요! 죽고 싶다고요!"
나는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려 애쓰며 재후의 손목을 꽉 잡았다. 결국 발버둥 치던 재후가 내 가슴팍을 퍽 차기에 이른다.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혔고 머리가 하얘져 그대로 아이의 손을 놓았다. 일부러 찬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때리기 위해 내 손을 뿌리치려고 발버둥 치다가 실수로 찬 것에 가깝다. 다만 육체적 타격에 순간적으로 공황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아이는 선생님을 찼다는 죄책감까지 느끼며 "나는 죽어야 해!" 소리 질렀다. 그때 아이의 악다구니 소리를 듣고 교감선생님이 나타나셨다.
교감선생님은 재후를 잡지 않으셨다. 다만 계속해서 말을 거셨다.
"재후야, 여기 앉아봐."
"싫어요, 가까이 가면 잡을 거잖아요."
"안 잡을게. 재후 아침 먹었니?"
"교감선생님한테 가까이 가기 싫어요. 다 싫어요. 학교도 싫고, 그냥 죽어버릴게요."
"몇 점으로 화났는데?"
"화난 거 아니에요. 죽고 싶은 거예요."
"언제 죽게?"
"오늘 당장."
"선생님이 슬퍼할 텐데."
"그런 거 몰라요."
"네 기분은 몇 점인데?"
"0점. 아니 마이너스 100점."
"달팽이 100마리."
"네?"
"화난 달팽이 100마리. 재후 머릿속에 달팽이 우글우글."
"우웩."
교감선생님은 재후 담임이 아님에도 재후가 달팽이와 담임선생님을 제일 좋아한다는 점, 숫자로 표현하는 걸 즐긴다는 점, 대화의 주제를 빨리빨리 전환하면 금방 감정의 골짜기에서 빠져나온다는 점 등을 잘 알고 계셨다. 바쁜 와중에도 재후가 교무실을 지나갈 때마다 간식을 주시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셨기 때문이다.
교감선생님은 평소에 파악해 두었던 재후의 특징을 바탕으로 재후와 대화를 하셨다. 나는 넋이 나가 옆에 앉아 있었다. 공포와 분노에 질렸던 재후의 눈빛이 풀리기 시작한 건 1시간이 훌쩍 지나서였다.
재후의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재후가 힐끗힐끗 나를 봤다. 미안함과 후회와 유기불안이 뒤섞인 사슴의 눈이었다. 나는 두 팔을 벌렸고, 재후는 품에 들어와 폭 안겼다. 나는 재후를 안고 울었다. 이 작은 아이가 왜 이렇게까지 죽고 싶어 졌는지 원망스러워서 울었고, 발에 차인 가슴팍이 얼얼해서 울었고, 재후가 내 품에 다시 안긴 것에 대해 안도감이 들어 울었다. 재후도 엉엉 목 놓아 울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퇴근 시간 즈음 교무실에 놀러 갔다. 재후가 교감선생님께 위로받았으니 이제 내 마음도 달래지고 싶었다. "학교 큰언니, 제 마음도 달래주세요. 히잉." 이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가만 보면 교감선생님도 꽤 상기되어 있었다. 나만 조마조마 진이 빠진 게 아니었다. 교감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재후를 달래면서 하나님께 빌었어. 하나님, 나에게 이 아이를 달랠 수 있는 지혜의 말을 주세요. 재후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손을 주세요. 나 아까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 손이 축축해질 정도였어."
나는 교감선생님이 오랜 경험과 연륜으로 여느 아이를 달래는 법을 잘 알아서 재후도 잘 달래신 줄 알았다. 관리자 입장에서는 '얼른 달래서 사고 안 터지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어떤 레퍼토리를 돌리며 아이를 달랠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를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낑낑 아이를 달랬다는 게 예상 밖이었다. 학교 큰언니인 교감선생님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가시밭길 걷듯 한 걸음 한 걸음 재후를 달랬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교육경력 30여 년, 내가 살아온 만큼 교사로 살아온 이 학교 큰언니가 아이들에 대한 오랜 진심을 잃지 않고 품고 있다는 사실이 멋졌다. 30여 년 교사로 살아오면서 간직한 이 오래된 진심을 통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위로받아왔을 것인가. 앞으로는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쓰다듬어질 것인가.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이 학교 큰언니는 퇴직하면 상담소를 열어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을 돕는 일을 하는 게 목표란다. 교직을 떠나도 또 누군가를 조마조마 쓰다듬어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반짝이던 눈빛을 기억한다. 나는 교감선생님께 말했다.
"교감선생님은 한 마디로 핵 멋진 언니예요."
어떤 진심은 1년 반짝이고, 어떤 진심은 10년 반짝이고, 어떤 진심은 드물게 한평생에 걸쳐 반짝인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평생 반짝여온 오래된 진심을 동경한다. 내 안에 아이들에 대한 어떤 진심이 남아있다면 평생 오래된 진심으로 남아주기를 교무실에서 거북목이 될 때까지 공문을 보던 교감선생님을 추억하며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