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아픔을 상상했듯이

어른은 어린이에게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

by 김Genie

서희야, 태리야, 경수야.

방학하고 고작 사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너희는 뭘 하면서 널부러져 있을지 궁금하구나. 영어 숙제 하고 있니?


우리가 방학을 보낸 고작 사흘 동안 바가지로 끼얹듯 비가 쏟아졌고, 파란 하늘 두꺼운 흰 구름 사이로 햇살도 내리쬐었더랬지. 너희가 항상 그랬듯이 틈새의 시간에 유튜브의 세계를 유영했다면, 많은 소식을 들었을 거야.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진 누군가가 죽었고, 어떤 사람은 자기 인생이 힘들다고 길가는 사람들을 죽였고, 구명조끼를 입지 못하고 누군가를 살려보려던 군인이 물속으로 영영 사라졌단다.


방학하고 고작 사흘동안 있지 않았으면 좋았을, 간절히 꿈이기를 바라게 되는 죽음들이 있었고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짐으로써 그들을 곁에서 사랑하던 가족, 친구들의 큰 사랑과 시간과 애정과 홀가분한 웃음도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단다. 이 모든 애도와 슬픔과 통탄 속에 선생님의 마음 어느 구석도 내내 죽은 듯했어.


이렇게 서글픈, 억울한, 있으면 안 되었던 죽음들은 너희에게 설명하기 참 어려워. 너희는 이런 건 하나도 모른 채 그저 국물을 뚝뚝 흘리며 수박을 먹고, 희한한 모습으로 그네나 타며 땀이나 흠뻑 흘렸으면 좋겠지. 그래도 너희에게 잘 설명해주고 싶어 문장과 단어를 골라본다. 어른은 어린이에게 설명할 말을 잘 고르는 사람이라는 문장을 떠올리며 말이야.*


삶은 기쁨과 행복, 추억, 미소 같은 좋은 단어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단다. 서희가 학원을 억지로 가야 해서 울었듯이, 경수가 친구랑 다투고 속상해서 한동안 풀이 죽었듯이 서글픔, 후회, 원망, 억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도 삶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야.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죽는단다. 그리하여 우리는 죽음에 관한 슬픔도 피할 수 없어.


누군가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면, 어딘가로 영영 사라진 누군가의 길게 이어질 평온을 바라며 애도와 슬픔에 머물러도 된단다. 부정적이라고 보이는 감정이라고 바삐 지나가버릴 필요 없어. 인생은 밝은 색의 감정과 어두운 색의 감정이 모두 존재하는 잘 짜놓은 팔레트 같은 거란다. 어두운 색과 밝은 색이 섞여서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미술 시간에 많은 작품을 보며 배웠잖아. 우리 인생도 그와 다르지 않아. 충분히 머무르고 슬퍼하고 애도해도 괜찮아. 짧은 일기나 편지를 써도 좋겠지. 너희가 어딘가를 향해 가는데, 누군가의 따뜻한 말소리가 들려온다면 얼마나 힘이 되겠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칠흑처럼 두꺼운 검은색이야. 가늠할 수 없이 깊고 어두우며 차고 시리단다. 너희를 매일 안아주던 할머니나 아빠나 엄마가 영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일이야. 냄새도 목소리도 차가운 팔 안 쪽의 촉감도 모두 사라져 버리지. 너희는 아직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은 적이 없지만 상상해 낼 순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검을지 말이야. 길고양이가 다쳐서 트럭 밑에서 야옹거릴 때, 고양이가 얼마나 아플지 상상하며 발을 동동 거렸잖아. 그것과 같아. 고양이의 아픔을 상상했듯이 타인의 마음을 상상해 낼 수 있단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얼굴도 떠올려보렴. 그리고 너희 마음의 일부를 그 사람들에게도 할애해 주렴. 같이 슬퍼하고, 염려하고, 회복을 기다리고, 필요한 도움이 있다면 함께 하렴. 언젠가 너희에게 두꺼운 검은색의 슬픔이 드리울 때, 누군가가 똑같이 그런 마음을 보낼 거야. 경수가 태리에게 물을 떠다 주면, 태리가 경수의 아이스크림을 갖다 주는 것처럼 말이야.


너희가 보기에는 이상한 어른들 투성이일 거야. 초등학교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듣곤 서희가 그랬잖아.

"아니 왜 엄마들이 선생님을 괴롭혀요?"

선생님이 방학 동안 있었던 죽음들에 대해 말해주면 너희는 또 똘똘한 눈을 반짝이며 묻겠지.

"어떻게 물속을 들어가는 데 구명조끼를 안 입어요?"

"왜 자기 삶이 힘든데 얼굴도 모르는 남을 죽여요?"


너희를 보기 부끄러워지는 여름밤, 선생님은 선생님의 팔레트에서 어두운 색에 머물고 있단다. 한껏 우울하고 슬퍼하며 떠난 이와 남은 이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지. 너희를 보기 덜 부끄러워질 수 있도록 선생님이 도대체 무얼 해내야 할지도 생각한단다.


건강한 여름 보내다가 곧 보자.

제임스 휘슬러 / 떨어지는 불꽃 출처 https://dia.org/collection/nocturne-black-and-gold-falling-rocket-64931

*이슬아 작가가 인터뷰에서 사용한 문장을 인용해 왔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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