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라도 더 도울 수 있다면 내가 번거로운 건 얼마든지 괜찮아요, 난 그러려고 있는 사람인 걸요
당신은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당신이 수많은 번거로움을 뚫고 어떻게든 해보려는 노력을 버거우리만치 계속해도 당신에게 떨어지는 보상은 없다. 오히려 염치없는 사람들이 미룬 수고스러운 일이 묵묵한 당신에게 몰려들 것이 뻔하다. 이곳에서 일이 년 구른 사람도 아니면서, 결국 당신만 더 힘들어질 거란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 천진난만한 초심을 간직하고 있는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한 아이라도 더 도울 수 있다면 번거로운 건 얼마든지 버텨보겠다는 당신 덕에 나도 마음껏 나의 한 아이를 위한 길을 도모했다. 당신이 얼마든지 뭐라도 해서 나와 나의 한 아이를 지원했기에 나도 두려움 없이 뭐라도 해봤다. 바보 같은 당신 덕에 나의 한 아이가 바뀌어가는 기적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당신 옆에서 바보 같아질 용기가 났기 때문이다.
우리 반엔 마음속에 슬픈 일이 태산처럼 쌓여서 슬픈 일이 하나라도 더 일어나면 죽어버리겠다는 아이, 재후가 있었다. 핏기 없이 새하얗게 마른 고작 11살의 아이였다. 아이는 자주 스스로의 뺨이나 머리를 세게 때리다가 죽고 싶다며 목놓아 울었다.
아이를 돕고 싶었다. 태산처럼 쌓인 슬픈 일 위로 기쁜 순간을 별똥별처럼 쏟아지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겐 21명의 아이들이 더 있었다. 수업을 하다가도 자주 재후와 일대일 시간을 가져야 했다. 재후의 슬픔이 터져버리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슬픔의 범람이 멈출 줄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나가 있는 동안 아이들은 대충 뽑은 학습지를 풀거나 수다를 떨었다. 재후도, 나머지 21명의 아이들도 제대로 챙길 수 없어 마음이 달았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뒤늦게 기초학력 관련한 메시지를 뒤졌다. 재후를 위해 도움이 될만한 프로그램에 대한 메시지가 있었지만 명단 제출 기한이 한참 지나있었다. 수합하는 업무담당자 입장에서는 화날만한, 혹은 "기한이 지나 제출할 수 없어요, " 정도로 무시할만한 메시지를 써서 제출했다. 뒤늦게나마 재후를 명단에 넣어주실 수 있는지 묻는 메시지였다. 학기 초인데 동료교사에게 욕을 먹는 게 싫었기에 메시지를 보낸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안된다는 회신을 대비해 마음을 미리 비워놓았다.
수업이 끝난 후 기초학력 담당부장님께 전화가 왔다. 허둥지둥 자기변호를 시도하던 중, 부장님이 말했다.
"한 아이라도 더 도울 수 있다면 내가 번거로운 건 얼마든지 괜찮아요, 난 그러려고 있는 사람인 걸요. 재후가 도움이 많이 필요하죠. 지원받을 수 있는 게 있는지 더 알아볼게요. 언제든지 걱정 말고 저에게 오세요. 선생님은 혼자가 아니에요."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은, 아이를 위한답시고 같은 교사를, 그것도 바빠죽겠는 부장교사를 번거롭게 해서 욕을 먹을까 봐 긴장해 있던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리며 내가 재후를 위한 길을 찾아 나설 때 이 선배가 나의 앞길을 밝혀주겠구나, 나는 혼자가 아니고 재후도 혼자가 아니구나, 세상이 이렇게 든든한 곳이었구나 와 같은 든든하고 따뜻하고 벅찬 기분이 들었다.
부장님은 재후에게 도움이 될만한 공문이 올 때마다 내게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교사가 학교로 오셔서 재후의 마음을 도닥여주셨고, 수업지원도우미분이 오전 수업 때 재후와 함께 해주셨다(시간도 최대로 받을 수 있게 부장님께서 노력해 주셨다). 조언을 구하면 선배교사로서의 노하우도 아낌없이 나눠주셨다. 정작 부장님 업무랑 수업준비는 뒤로 밀려 밤 늦게까지 교실에 남아계시는 날이 허다했다.
"한 아이라도 더 도울 수 있다면 내가 번거로운 건 얼마든지 괜찮아요." 말을 자주 떠올렸다. 용기가 났다. 덕분에 재후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다. 재후랑 일대일 데이트도 다달이 나가고, 점심시간마다 옆자리에 앉아서 아이를 예뻐하고 또 예뻐했다. 부디 아이 마음속 태산 같은 슬픔이 별똥별처럼 쏟아지는 기쁨에 무너져내리기를 바라며.
연말, 새 학년 반배정을 앞두고 재후에게 물었다.
"재후야, 내년에 누구랑 같은 반 하고 싶어?"
"선생님이요."
"선생님 말고 친구는?"
"선생님이요."
감동해서 울었다.
"재후야, 선생님이 너랑 맥도널드 데이트를 하는 이유는?"
"제가 좋아서요."
"맞아, 선생님은 재후가 너무 좋아. 재후야, 선생님이 재후를 너무너무 예뻐한다는 걸 꼭 기억해 줘. 네 안에 슬픔을 다 덮어버릴 만큼."
"제 안엔 슬픔도 많지만 기쁨도 많아요."
감동해서 또 울었다. 재후를 지도하며 속상해서 운 적도 있지만 연말에는 재후가 변화되는 모습이 기특해서, 뽀얀 얼굴로 히죽 웃는 게 고마워서, 재후가 내게 보여주는 사랑에 감동해서 자주 울었다.
부장님은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당신이 수많은 번거로움을 뚫고 어떻게든 해보려는 노력을 버거우리만치 계속해도 당신에게 떨어지는 보상은 없다. 오히려 염치없는 사람들이 미룬 수고스러운 일이 묵묵한 당신에게 몰려들 것이 뻔하다. 이곳에서 일이 년 구른 사람도 아니면서, 결국 당신만 더 힘들어질 거란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 천진난만한 초심을 간직하고 있는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릇이 작아 당신처럼 얼마든지 번거로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내가 아는 나는 당신의 발목 정도밖에 못 간다. 그럼에도 당신이 한 말이 자꾸 생각나서 자주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들을 위해 얼마든지 번거로울 준비가 되어있던 당신을 떠올리며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우리는 몇 년 전에 헤어졌지만, 당신이 준 문장은 여전히 나를 채근한다. 번거로워져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