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인성덕목카드 하나도 없죠!

우리동네 나의손주

by 김Genie

"저 아저씨 인성덕목카드 뺏어야 겄네."

"아저씨 인성덕목카드 하나도 없죠!"



서희랑 태리를 영어캠프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회전교차로에서 내가 먼저 진입했는데, 가뜩이나 애들 태우고 있어서 심기가 몹시 예민한데 검은 SUV차량이 불쑥 끼어들었다.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아저씨는 내가 급브레이크를 밟을 걸 알았다는 듯이 앞 코를 들이밀며 내 앞을 스쳤다.


나는 아씨를 찾을 뻔했으나 아이들이 있으니 금방 입을 다물었고, 대신 남은 나의 분노를 아이들 언어에 맞춰 표현하고자 했다.


"저 아저씨 인성덕목카드* 뺏어야 겄네."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서희가 신이 나서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아저씨, 인성덕목카드 하나도 없쪄!"

신이 난 서희가 귀여워서 웃었다.


서희랑 태리를 영어캠프에 내려다 주고 교감선생님께 카톡을 했다. 아이들을 학교에서 태워서 영어캠프 개교식에 늦지 않게 도착하려면 학교에 8시 30분까지 가야 했는데, 학교에 8시 30분까지 가기 위해 새벽 6시 기차를 타놓고 기차역에서 택시를 잡지 못해 시간을 허비하다 한참을 늦어버렸다. 나는 머리를 몇 번 헝클어트렸고, 허공에 욕을 했고,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결국 이 방법만은 피하고 싶었으나 학교에 일찍 출근한 선생님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굴려봐도 떠오르는 얼굴이 몇 없었으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교감선생님은 (내 입장에선) 다행히 관사에서 주무셔서 학교에 계셨다. 나는 자초지종을 헐레벌떡 설명했고, 횡설수설하느라 제대로 설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교감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중간까지 데려다주신다고 하셨다.


나는 교감선생님 덕분에 8시 45분에 아이들을 중간지점에서 태웠고, 무사히 9시까지 아이들을 데려다줄 수 있었다. 교감선생님께 왜 내가 늦었는지 주절주절 변명하고 싶었으나, 가뜩이나 바쁘신 교감선생님께 구차한 변명을 읽는 수고로움까지 드리고 싶지 않았기에 거두절미하고 죄송하며 감사하다고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몇 번 더 아랫입술을 씹었다. 내 눈에 그저 그런 사람들한테 욕먹는 건 33살쯤 먹으니 신경끌 수 있게 되었는데,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을 실망시키는 건 여전히 너무너무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답장이 왔다.


'잘 도착해서 다행이다~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이젠 마음 편히 먹고 쉬기를~'


왈칵 눈물이 올라왔다. 씹히던 아랫입술은 해방을 맞이하였고, 나는 눈물이 나올락해서 눈동자를 위로 보냈다. 먹구름이 가득했으나, 구름 너머에서 쏟아지는 빛은 화사했다. 정신없는 아침에, 그것도 출근시간도 전에 대뜸 전화 와서 아이들을 어디 어디까지 태워다 줄 수 있는지 묻는 직원의 전화라면 누구나 화날 법하지 않나, 혹은 화를 승화시켜 '앞으로는 늦지 않도록 하세요.'라고 따끔한 훈계라도 할 법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되려 졸인 내 마음을 다독여주신다.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ㅡ오빠, 교감선생님께서 도와주셔가지고 애들 무사히 데려다줬고, 죄송하다고 문자 드렸는데 이러이러하게 답장이 왔어.

ㅡ우와, 교감선생님. 거의 부처님이신데. 대단하시다.


교감선생님이 인성덕목카드를 모았다면, 아마 한 방은 가득 채웠을 것 같다. 인성덕목카드를 모으다 모으다 너무 자주, 많이 모아서 배려와 이해가 습으로 베어버린 분 같다.


누구는 13살 아이한테 '인성덕목카드 하나도 없죠!' 소리를 듣고, 누구는 배려로 33살을 감동시켜 울린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참 다르게도 산다.




*인성덕목카드 : 저희 반에서 활용되는 가상화폐입니다. 8개의 인성 덕목으로 아이들이 디자인하여 만든 카드인데, 인성 덕목에 해당되는 행동을 했을 때 스스로 적고 저에게 검사를 받으면 화폐로써 가치가 생기는 카드입니다. 이거 모아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기부도 합니다. 서희는 가정폭력을 당한 아이들을 위해, 태리는 아프리카 친구들을 위해 기부했더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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