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주도하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기획 추진하고 결과를 공유한다.
예산은 50만 원
학생 사회참여 프로젝트 공문이 왔다. 아이들이 교내 환경 캠페인을 기획하는 실력을 고려했을 때 스스로 50만 원이라는 꽤 큰돈으로 기획 추진해 보는 이 프로젝트가 딱일 것 같았다.
계획서를 내밀었다.
"우리가 하던 것들 있잖아, 친환경 제품 꾸러미 만들어서 마을 주민분들께 나눠드리는 거나, 학생들이 일회용품 줄이기 인증샷 우리한테 보여주면 선물 주는 것처럼 세상을 바꿀만한 작지만 멋진 시도들. 그런 거를 선생님은 빠지고 너네끼리 계획해서 추진해 보는 거야. 예산은 50만 원이고 이 돈을 어떻게 쓸 건지도 계획서에 넣어야 해. 추후에 너네가 했던 활동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다른 학교 학생들이랑 공유하고 서로 배우기도 할거야."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뭘 하자고만 하면 이미 의욕이 부릉부릉 하기 시작한다. 무모한 시작을 방지하고자 이걸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면 감당해야 할 고통도 덧붙였다.
"선생님은 미안하지만 지도교사가 되어줄 수 없어. 너희가 계획을 짜고 선생님 중에 한 분을 설득해서 지도교사로 섭외해야 해. 너네가 구성원을 모집해야 하고. 너네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집단을 구성하는 게 좋겠지. 수업 시간은 할애할 수 없어. 충주 초등학생 중 3팀만 뽑히기 때문에 계획서를 열심히 써도 떨어질 수 있고. 생각보다 과정이 재밌지만은 않을 거야. 힘들고 귀찮고 그만두고 싶어질 수도 있어. 뽑히면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완주해야 해. 해볼래?"
"태리야, 할래?"
"응! 서희도 할 거지?"
"하자!"
태리랑 서희가 한 팀으로 뭉쳤다. 나는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척 계획서를 두 부 뽑아 서희와 태리에게 주고 업무를 봤다. 사실은 업무를 보는 척했고, 모든 신경은 아이들의 대화에 가 있었다.
"이미 마을 주민분들께 환경 캠페인은 하니까 장애인 차별 금지 같은 걸로 하는 게 어때?"
"좋지."
"면사무소나 보건소가 휠체어 타는 사람들한테 편할까?"
"여기 봐봐. 차별 금지법이라는 게 있대. 장애인, 여성, 외국인, 아동, 성소수자."
"그럼 우리 '차별하지 마세요.' 이런 주제로 할까?"
"좋아. 마을분들한테 '우리는 모두 소중해요.' 이런 거를 홍보하자."
"선생님이 그랬잖아. 뭔가를 전하려고 할 때는 맨 입으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원하는 걸 주면서 내가 원하는 걸 말해야 먹힐 가능성이 생긴다."
"그럼 간식 꾸러미 만들어서 차별 금지 홍보물 넣어서 홍보하러 다니자."
"좋아."
"틱톡이나 인스타에 유명한 장애인 분들을 강사로 섭외해 보는 건 어때?"
"원샷한솔!"
"오! 나도 알아. 원샷한솔!"
엿듣다가 참지 못하고 대화에 껴들었다. 좋아하는 유튜버를 섭외해 본다니 갑자기 설렜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칠판에 알고 있는 장애인 유튜버분들을 적기 시작했다. 달려라구르미, 원샷한솔, 허우령 등등. 나는 아이들이 적는 분들을 보면서 이 분들 중에 한 분만 섭외해도 대박이겠다 생각했다.
결국 업무를 해보려 했으나 아이들의 대화에 매료되어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데 머리를 맞대게 된다.
"유명한 유튜버분들은 섭외도 엄청 들어오고 바쁘시잖아. 우리가 이분들을 섭외하려면 심금을 울리는 글을 엄청나게 공들여서 써서 이메일이나 DM으로 보내고 결과를 담담히 기다려야겠지."
"선생님, 글 잘 쓰시잖아요."
"너네가 초안을 쓰면 내가 고쳐줄게."
"선생님, 최고!"
"강사비는 얼마 정도 들어요?"
"누구냐에 따라 다른데 넉넉잡아 25만 원 정도 잡을까?"
"그럼 50만 원 중에 25만 원 강사료, 10만 원 차별 금지 홍보 굿즈 제작, 10만 원 간식 꾸러미 구입, 5만 원 우리 간식비."
얘들이 전생에 공무원이었을까? 자기들 간식비까지 야무지게 예산 사용 계획을 세운다.
주말, 충북 민주시민 교육 교사 연구회 '더불어 숲' 모임을 나갔다. 우리가 열심히 인성 놀이를 배울 동안 어떤 선생님께서 사진을 인쇄하는 기계로 컵을 만들어주셨다. 사진을 전송하면 인쇄하고 컵에 붙인 후 열을 가해 사진이 인쇄된 컵을 만들어낸다. 나는 우리 가족사진이 인쇄된 컵을 받아 들고 아이들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나타내는 그림을 디자인한 뒤 컵에 출력하여 마을 주민분들께 나눠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선생님, 이 기계는 선생님이 사신 거예요?"
"제가 메이커 교육 연구회도 하는데 거기서 산 거예요."
"혹시 저희 학교에 아이들 강의 와주셔서 컵 좀 만들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출장을 많이 나가서 교장선생님이 좀 불편해하시긴 하시는데, 허락받으면 갈 수 있어요."
나는 아이들에게 완성된 내 컵 사진을 보냈다.
"얘들아, 굿즈 10만 원 예산 잡아놓은 거로 너희가 차별 금지 그림 디자인한 컵 만들어서 마을 주민분들께 나눠주는 건 어때? 사회참여 예산 부족하면 학생자치 예산으로 지원해 줄게."
"너무 좋아요."
아이들의 계획대로 장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를 기적적으로 섭외하여 마을 강의를 하는 데 성공하고, 이웃학교 교장선생님이 컵 만들어주시는 선생님 출장을 허락해 주셔서 아이들이 디자인한 차별 금지 그림으로 컵을 만들어 간식 꾸러미와 함께 마을 분들께 평등에 대해 홍보하고, 아이들이 뿌듯한 마음으로 5만 원어치 간식까지 사 먹으면 이보다 대단한 6학년의 사회참여 프로젝트가 있겠는가 싶었다.
만약 이 계획이 떨어진다면 더 훌륭한 계획이 충주에서만 3개나 더 있다는 것이고, 이런 교육을 통과한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면 꽤나 희망찬 미래가 있겠다 생각한다.
과연 우리 아이들은 50만 원을 따올 수 있을 것인가!
덧. 이 글은 이 멋진 아이들의 계획을 저만 알고 있기 아까워서 썼습니다
우리 기특이들에게 칭찬 댓글 달아주시면 아이들에게 공유하겠습니다♡♡ 큰 용기가 될겁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