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리 여덟 개, 아마도 지네?
우리동네 나의손주
"밥 먹으러 가자."
하면 우리 반은 세로 한 줄이 아니라 가로 한 줄을 선다. 후다닥 달려 나와 우선 내 양팔에 한 명씩 팔짱을 끼고, 미처 팔짱을 끼지 못한 꼴찌는 아쉬워하며 손이라도 잡는다. 그럼 나는 순식간에 다리 여덟 개가 되어 어물쩍 어물쩍 걷는다.
계단에서는 위험하니 아이들 손을 다 뿌리치고 혼자 팔짱을 낀다. 다 내려오자마자 아이들은 다시 팔짱을 끼고 손을 잡아 여덟 다리 지네를 만든다.
아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어물쩍 어물쩍 걸으며 생각한다.
'이것이 삶의 무게인가?'
적잖이 무겁다. 그리고 생각한다.
'행복하기도 하다.'
초등교사로 살아가면서 나는 불평이 참 많다. 나의 모든 불평은 방학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퉁쳐질 것이니 굳이 적진 않겠다. 불평하며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어느덧 10년을 교직에 있었다.
운이 좋게도 아이들의 사랑을 참 많이 받으며 교직생활을 했다. 밥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설움과 아이들이 보내준 사랑 그 두 개 덕분에 10년을 버텨먹었다. 그리고 올해는 우리 반 총 3명의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다 못해 퐁당 빠져있는 느낌이다. 나를 왜 이렇게까지 좋아해 주는 걸까. 내가 말하는 게 웃긴가? 내 수업이 재밌나? 내가 예쁜가? 이것들 전부 다인가?
남학생 수환이가 강당에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출장 가는 나를 보고는 헐레벌떡 뛰어나와 양손을 흔들고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며 나를 배웅한다. 6학년 남학생이 친구들과 놀던 걸 멈추고 선생님을 배웅하러 버선발로 나온다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수환이가 보여주는 사랑과 응원 덕분에 그날 하루 발걸음이 힘찼다.
반항기 가득하던 서희는 나의 보디가드를 자처한다. 영어 수업에 대해 얘기하며 가고 있는데 지나가던 4학년 남자아이가 "난 영어 제일 싫어." 하니 서희가 "우리 선생님한테 그런 말 하지 마!" 역성을 낸다. 4학년 남자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내가 가르치는 거 아니니까 영어 싫어해도 상관없다고 편을 들어줬다. 서희는 "아, 그래요?" 하며 머쓱해했다. 서희는 내가 상처받지 않게 앞장서서 세상과 다 싸울 준비라도 되어있는 것 같다. 귀여운데 듬직함을 느껴버렸다.
태리도 내가 스트레스 안 받게 해 보려고 노력하는 게 눈에 보여 고마울 따름이다. 가령 합동체육 시간에 동생들이 떠들어서 내 얼굴이 찌푸려질라 하면 태리가 더 몸이 달아 엉덩이가 들썩들썩한다. 착한 심성 탓에 동생들에게 화는 못 내지만 어떻게든 조용히 시켜보려는 태리의 분주함에 금세 내 마음에 여유공간이 생긴다. 동생들은 모르겠지만 태리 덕분에 동생들은 몇 번의 호통 순간을 무사히 넘겼다.
"이거 하자!"
그러면 "왜 해요?"가 아니라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을까요?" 물어오는 아이들이다. 친척들 선물 고르기 활동을 했더니 동네손주 미자할머니 선물까지 골똘히 고르고 있다. 점심 먹고 밀려오는 졸음을 참아가며 립밤을 살까, 핸드크림을 살까, 카펫을 살까 여기 검색 저기 검색하는 아이들을 보자면 귀여워서 웃음이 실실 나온다.
나는 매일 다리 여덟 개로 어물쩍 복도를 걸으며 생각한다.
'퍽 행복하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