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허무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동네 나의손주

by 김Genie

할머니는 제게 말했죠. 허무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흘러가버린 모든 게 덧없고 허망하기까지 해서 도무지 텅 빈 그 마음을 채울 수 없어 괴롭다고. 허무함에 질려 버린 할머니는 얼른 죽기 위해 한동안 두유만 먹곤 상을 치웠다고 했죠.

서울대 교수까지 하고 있는 양반이 책에서 그러더라고요.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어서, 영혼이 있는 한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서울대 교수까지 하는 양반이면 얼마나 똑똑한데 그 양반이 헛소리나 할리가 있겠어요. 할머니만 인생이 허무한 건 아니래요, 조금 위로가 되나요?


할머니가 고민을 말할 땐 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었지만, 여기선 더 주절거려 볼게요. 혼잣말 같은 거라 용기가 나요.


인생은 허무로 점철되어 있다는 데 동의해요.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는 것부터가 허무해요. 어쩌면 당장 내일 교통사고라도 나서 눈 뜨니 저승일 수도 있는걸요. 별 지랄을 다해도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어요. 허무하죠. 내가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면 내가 사랑하는 그 모든 것들도 영원히 살지 못해요. 아무리 공을 들인 것일지라도 나를 떠나거나, 죽거나, 내가 먼저 죽거나 하겠죠. 진짜 허무하게.


요즘 참 재밌는 게 있어요. 누군가는 젊을 때 너무 일만 해서 허망하대요. 누군가는 젊을 때 이룬 것도 없이 나이만 먹어서 허망하대요. 토론 배틀을 시켜야 하나. 그럼 전 또 생각하죠. '이래 사나, 저래 사나 인생은 허무 그 잡채!'


법륜스님 아시나요? 그 왜 있잖아요, 머리 밀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상담 해주는 중. 그분은 또 그래 말하시대요, 쾌락을 맛보면 그것이 사라진 뒤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 쾌락 그다음 고통, 쾌락 그다음 고통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 윤회다.


말씀을 듣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거 있죠? 무슨 쾌락을 느껴도 결국 고통이 따라붙으면, 왜 아등바등 즐거움을, 성취를, 업적을 쫓으며 살아야 하지? 쾌락이랑 고통이랑 반복될 거면 애초에 왜 살지?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느끼면서 "나는 대나무다." 하면서 사나? 그럼 왜 살아? 아, 허무하지 않아요? 진짜 허무가 영혼의 피냄새라는 서울대 교수 양반 말이 맞긴 맞나 봐요.


그 교수 양반이 결국엔 뭐라고 했냐고요? 허무를 껴안고 걍 살아라. "허무는 영혼의 피야, 살아있는 한 떼어놓을 수가 없는 거야. 걍 허무를 껴안고 목적 없이 룰루랄라 산책하고, 맛난 거 먹고, 지금을 음미하면서 살어~" 하던데요. 허무하죠. 제가 아까 말했잖아요, 인생은 허무하다고.


근데요, 할머니. 할머니는 죽고만 싶다고 말했지만 할머니가 정말 편안해 보일 때가 있어요. 크고 복잡한 단어들, 인생, 과거, 허무, 분노, 후회, 원망 그런 단어들을 잠깐 잊고 초록색 상추와 파와 고구마가 가득한 텃밭을 가꾸다 막 일어나서 손 탁탁 털 때, 그때 할머니 얼굴이 되게 편안해 보여요. 저랑 드라이브하면서 "벌써 매화가 가득이네." 하며 계절이 변한 걸 알아볼 때, 그때도 편안해 보여요. 저를 칭찬할 때, 아이들 안아주실 때, 저희랑 나란히 걸을 때, 그럴 때도요.


어느덧 완연한 봄이에요. 따뜻한 바람이 불어요, 해는 더 일찍 뜨죠. 금세 져버릴 거면서 마치 영원히 살기라도 할 것처럼 봄 꽃들이 팡팡 꽃망울을 터뜨려요. 할머니랑 저랑 아이들이랑은 이 봄을 함께 하겠죠. 곧 헤어지겠지만, 그래서 허무하겠지만 그래도 이 봄에 같이 있어요. 그렇게 허무한 인생의 일부분을 함께 보내요. 같이 있을 때만큼은 크고 버거운 단어들은 잊을 수 있어요.


저는 할머니가 할머니를 정신 사납게 하는 저와 아이들로 인해 인생의 허무를 잠시 잊을 수 있기를 바라는 거예요. 죽고 싶긴 한데 두유만 먹다가 다음 약속 때 또 병원에 실려가 있을 순 없으니까 밥 차려 먹기를 바라는 거고요. 그렇게 할머니가 우리가 머무르는 한동안 허무를 극복해 보길 바라는 거예요.


우리는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만나고 있는 거예요. 허무를 극복하려고 살아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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