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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Genie Feb 29. 2024

말없이 아프면

큰개랑 삽니다

 차가 아파트에 들어서면, 월패드에서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알린다. 소리를 듣자마자 큰개가 흥분하기 시작한다. 아끼는 장난감을 입에 물고 서서 꼬리를 벵벵 돌린다. 삐삐삐삐. 문이 열리면 헐레벌떡 현관으로 달려가 발라당 배를 까고 힘껏 꼬리를 흔든다.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이 가끔은 안쓰럽다. 우리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그날은 좀 달랐다. 퇴근한 신랑이 현관문을 여는데, 큰개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길었다. "잤어?" 물었지만 큰개는 힘없이 꼬리만 흔들었다. 얼굴을 만져보니 코가 바싹 말라있고, 미열이 느껴지는 데다 콜록콜록 기침까지 했다. 신랑은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은진아, 우리 이번 달에 심장사상충약 먹였나? 의사 선생님이 물으시네."

"깜빡했다. 오빠도?"

"나도 먹인 기억이 없네."


  매달 꼬박꼬박 잘 챙겨 먹이던 심장사상충약이었다. 이번 달을 거른 채 20일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 정말 심장사상충 감염일까? 피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신랑과 나는 손톱과 머리채를 뜯었다.


"감기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피식 웃었고, 신랑은 개도 감기에 걸리냐고 되물었다. 진단명은 과도한 산책으로 인한 과로와 감기몸살이었다. 신랑과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개도 감기에 걸려 콜록콜록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이유가 과도한 산책 때문이라는 게 웃겼다. 많이 웃기진 않았지만, 크게 웃으면 크게 울 일이 멀어질 것 같은 기분에 오버했다.


 당분간 산책을 쉬라는 처방을 받았지만 큰개는 콜록콜록하면서도 집 밖에 나가고 싶어 주인을 졸랐다. 우리는 파란 패딩조끼를 사 입혔고, 큰개는 깜찍한 패션으로 꼬리를 바짝 세우고 실실 웃으며 동네를 누볐다.


 그렇게 잠깐의 해프닝처럼 아픈 순간이 지나갔다.


 이듬해 여름, 큰개가 이상하리만치 기력 없이 깔아졌다. 아무 말도 없이,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 표정으로 힘없이 엎드려 있는 큰개 앞에 앉았다. 큰개를 쓰다듬으며 "간식 줄까? 산책 나갈까? 터그놀이할까?" 물었다. 여전히 별 반응이 없었다. 우선 쉬게 하자는 신랑의 말을 듣고 큰 개 옆에 누우니 속이 상해 눈물이 났다. 말을 안 해주니까, 어디가 아픈지 뭐가 불편한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하고 미안했다. '푹 자면 내일은 새벽 댓바람부터 나가자고 조르겠지. 그럼 나는 마지못한 척 일어나 새벽 산책을 나갈 거야.' 기대하며 애써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어제보다 기력이 없는 큰개는 간식을 흔들어도 일어나질 않았다. 신랑이 큰개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동네 병원에서 상태를 보더니 2차 병원에 가라고 했다. 2차 병원에 가니 열이 높아 입원을 하라고 했다. 의사는 혈소판 감소증(항체나 보체 매개로 혈소판 탐식작용이 증가하거나 골수 내에서 거대핵세포의 파괴로 혈소판 생성이 감소되어 순환하는 혈소판이 줄어드는 질환.)이 의심된다고 했다. 치사율이 높은 편이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도 했다.


 신랑은 내게 전화를 걸어 혈소판 감소증이 의심되어 피검사를 의뢰한 상태라고 했다. 치사율이 높은 편이지만 우리 집 큰개가 잘 못 될 일은 없으니 마음 놓으라고도 했다. 지난번 감기에는 울었지만 이번에는 안 울었다. 내가 울면 울 일이 더 쫓아올 것 같았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큰개 걱정도 안 했다. 그렇다고 현실 일이 손에 잡힌 것도 아니었다. 내 마음이 허공을 벵벵 돌았다.


 나중에 시어머니께 들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던 신랑이 어머니께 전화해서는 오열을 했단다.

"엄마, 우리 개 죽을 수도 있대. 으헣헝허어헝."

 어머님이 말하셨다.

"이 새끼, 내가 죽어도 그렇게는 안 울어."


 신랑은 한 평도 안 되는 입원실에 매일 출근해 큰개 옆을 지켰다. 한여름이었다. 보호복까지 입은 신랑은 금방 땀에 폭 젖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랑은 큰개가 평소 좋아하는 안마도 해주고, '큰개 이쁘다, 아빠 엄마랑 평생 같이 살자, 얼른 나아서 집에 가자.' 속삭였다. 링거를 꽂은 큰개는 우리가 뭐라고 그리 좋은지 헤죽 웃었다.


 피검사 결과(며칠 소요되었다), 혈소판 감소증은 맞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피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큰개의 상태가 나빠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며칠만 더 치료하면 나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제야 엉엉 울었다.


 큰개가 유독 기력 없어 보이는 날, 불안을 누르고 큰개의 손을 꼭 잡는다. 머리를 쓰다듬고, 다리도 주무른다. 큰개는 헤죽 웃는다. 해맑은 얼굴을 보고 있으면 '네가 아플 때, 원망 같은 하니?' 묻고 싶다.


 큰개가 말없이 아프면, 온 속이 다 상해버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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