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Genie Aug 24. 2024

어머니와 나는 어쩌면 오랜 친구,

 몇 해 전 학부모님이었던 어머님께서 문자를 남기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영수가 호영이로 개명했어요. 아이가 사춘기가 와서 소동이 가끔 있지만 잘 지내고 있어요. 선생님은 건강하시죠? 이제 다리는 괜찮으세요?'

  공교롭게도 친척동생과 협곡*에서 용감하고 진취적인 전투를 벌이느라, 캐릭터의 부활을 기다리며 빠른 답장을 썼다(*컴퓨터 게임 롤의 전쟁터가 협곡).

-네, 영수가 개명을 했군요. 아들 사춘기가 왔다니 어머님 걱정도 많으셨겠어요. 호영이라는 이름도 참 멋지네요. 저의 다리는 괜찮고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머님도 잘 지내시나요?

 친척동생은 내가 게임에 집중하지 않음을 귀신같이 알아차렸고, "야, 군기 빠졌지?" 호통을 쳤다. 나는 협곡 전투에 몰입했고, 휴대폰을 확인했을 땐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어머님이 오지 않는 답장을 신경 쓰셨는지 마무리 인사까지 보내신 후였다.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한 시간 후)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또 안부차 연락드리겠습니다. 좋은 꿈 꾸세요.

 오랜만에 온 반가운 연락과 글자 너머에 숨겨진 수많은 마음들이 느껴져 '이 화상아, 서른세 살 화상아.' 자책하며 답장을 썼다. 그 시절엔 어린 나이에도 선생님인척 하느라 고르고 고른 말만 했는데, 이제 뭐 그럴 게 있나 싶어 진솔히 적는다.

-답장이 늦었어요. 친구랑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나이 먹고도 친구랑 게임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사춘기 아들이 버거우실 때도 있으실 텐데 잘 지내고 있다는 어머님의 답장이 무척 반가워요. 여전히 큰 눈에 아름다운 미소를 지니셨겠죠? 아들을 가장 사랑하는 건 언제나 어머님일 테고 어머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길을 찾아 나설 힘이 있으실 거라 생각해요. 어머님께서 항상 제 말에 귀 기울여주신 덕분에 제가 좋은 선생님이 된 것 같아 설레고 행복했어요. 어머님 같은 학부모님만 만나면 저는 계속 행복한 선생님일 거예요. 몸도 마음도 튼튼하게 남은 한 해를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멀리서 문득문득 추억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오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저는 선생님을 만나서 너무 영광이에요. 매번 교실을 이탈하는 아이에게 부드럽게 얘기해 주시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해 주셔서 기적을 만들어 내셨죠. 현재 주의력 결핍 약물치료도 하고 있지만, 저의 인생에 오은영선생님 같은 존재신 것 같아 좋네요. 또 연락드려도 될까요? 저도 게임을 하는데요. 즐겁게 사는 게 멋진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오천 원짜리 찢어진 옷을 입어도 멋진 저만의 인생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멀리서나마 선생님이 꽃길을 걸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머님은 그때도 참 멋지셨는데 지금 보내주신 톡도 참 멋지네요. 주의력 결핍으로 약물 복용하는 것은 저에겐 흔히 보고 듣는 사례인지라 어머님 마음만 안 속상하시길 바랄 뿐이에요. 오은영이라니 감동이에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어머님 말씀을 잘 기억해 두고 그때그때 꺼내봐야겠어요. 언제든지 근황 전해주세요. 기도의 힘을 믿는 편인데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니, 어깨가 든든하네요. 감사해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아픔을 들키는 걸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해야 하고,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들춰져야 한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 누군가의 치부를 풍문으로 알게 되면 나는 금방 미안해지고, 누군가가 내 치부를 풍문으로 알게 될 것을 상상하면 오금이 저린다. 한 마디로 진.짜.싫.다.

 그녀와 내가 학부모로 만났던 그 시절, 나는 피할 길 없이 그녀와 아이의 아픔을 보거나 들었다. 서로의 치부는 가려두고, 모든 게 괜찮은 척 시답잖은 이야기나 떠들 수 있으면 좋았을 걸 그때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의 행동, 말, 아이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 우리는 자주 말하게 되었고, 그때마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자주 그녀에게 미안해져 차라리 나를 물미역 같은 해조류로 생각하길 바랐다.

'여기 눈처럼 보이는 건 물미역 주름이고요, 저는 퇴근하면 바닷물에 잠겨 흔들흔들거릴 뿐입니다요. 아무 말이나 다 뱉고 가세요. 바닷물에 다 흘려보내겠습니다요.'

 그럼에도 그녀와 나는 1년 내내 꽤나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녀는 나의 교육과 훈육을 전적으로 지지했고, 나는 그녀의 양육과 보살핌을 응원했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두 손을 부여잡고 침을 용맹히 삼키곤 했다. 머리를 맞대고 하나하나 아이와 그녀를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때로는 세심하게 가끔은 과감하게 움직였다. 마치 2인3각 하듯이, 아이를 머리 위에 지고 열심히 뛰었다.

"괜찮으세요?"
"그럼요! 괜찮죠!"

 상황은 빠르게 나아지고 있었다. 아이는 어려서 말랑했고, 엄마랑 선생님이 손을 잡고 으쌰으쌰 하니 웅크린 마음이 금방 기지개를 켰다. 우리는 자주 아이를 둘러싸고 말했다.
"엄마랑 선생님은 너의 마음속에 행복별을 가득 띄우기 위해 여기 있는 거야."

그렇게 1년을 열심히, 또 기쁘게 보냈다. 덕분에 학부모만 교사를 믿어주면, 아이야 학교에서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걸 알게 해 준 그녀라 나는 그녀가 두고두고 고맙다. 그녀가 내게 준 전폭적인 믿음과 지지가 나를 부쩍 성장시켰음을 확신한다.

 그녀는 이듬해 나의 결혼식에도 와주었고, 드문드문 아이와 그녀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선생님, 벌써 아들이 졸업해요. 선생님 사진이 나올 거라며 졸업앨범을 사고 싶다고 하네요.

 그런 연락을 받고 나면 또 열흘쯤은 더 열심히 살 힘이 났다.

 지난밤, 아이보다도 소녀였다가 여자이다가 엄마가 된 그녀에 대해 더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인생의 소용돌이는 예고도 없이 우리를 삼키는데, 마음의 벽을 허물지 못해 혼자만의 공간에서 꺼이꺼이 울기를 선택하곤 하지 않나. 그런데 그녀는 달랐다. 이십 대 중반의 한참 어린 선생님일지라도 아이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치부를 겸허히 드러내고, 교사의 교육을 지지하고, 자신이 무엇을 하면 될지 물어서 배웠다. 내가 그녀의 입장이라면 그럴 수 있었겠나 생각하면 그녀의 대단함에 한 번 더 고개가 숙여진다. 그녀는 대단한 여자이자 훌륭한 엄마였다.

 그녀의 카톡 프로필을 넘겨봤다. 오천 원짜리 티셔츠를 입어도 빛나는 자기만의 인생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했으면서 프로필 사진에는 온통 아들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사랑스럽고 예뻤다.

'요 꼬맹이가 이미 어머님 인생 브랜드구만.'

생각하다 안온히 잠에 들었다. 어쩐지 내내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이쁜 꿈을 꾼 것 같다.

 어쩌면 그녀는 나의 오랜 친구다. 시간이라는 게 참 빨라서 우리는 벌써 인생의 많은 기간을 공유했고 오랜만에 온 연락이 반가운 걸 보니, 이런 게 친구가 아니면 뭘까 싶다. 다음 연락에서 우리는 또 어떤 근황을 주고받게 될까. 그저 그녀와 나의 제자였던 아이의 근황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그 밤을 반갑게 보낼 것 같다.

 이 오랜 친구와 느슨하게 이어진 채로 편파적인 응원을 전폭적으로 보내고 싶다.

"다 비켜라! 어머님 나가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