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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람 Feb 20. 2024

태극기를 삶의 무게처럼 짊어지고

- 걷기 23일 차 -

깜깜하다. 이젠 7시가 첫새벽처럼 느껴진다. 외부 기온에 적응이 안 된 채 밖으로 나오니 추위에 놀란 살갗에 소름이 돋는다. 목덜미를 휘감고 도는 바람이 냉랭한데 이미 자전거 순례자들은 출발했다. 넥 게이트를 올리고 모자를 눌러쓴다.    

  

'라바날 델 까미노'로 향하는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주의 1100도로 같더니, 정리 안 된 비자림 같기도, 비양도의 한적한 마을 같기도 하다. 돌담으로 이어진 돌집들이 정답다. 특별한 경치는 없으나 길이 담백하니 개운하다. 이 길이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바다가 나타날 것만 같다. 

불현듯 제주가 그립다. 한때 제주의 풍광에 빠져 시간만 나면 그곳으로 날아가곤 했다. 오름에 올라 김연갑 선생이 사랑하던 거센 바람을 만났고, 시외버스로 중산간 지역을 돌 때면 할머니들의 사투리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종점까지 가곤 했다. 이른 아침 우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비양도로 넘어가면 또 어떠했던가. 수평선의 해돋이와 함께 내 안의 불덩이가 함께 토해져 비로소 긴 호흡을 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제주로 건너가야겠다. 이 길과 그 길의 색깔이 어떻게 비슷한지 다시 느끼고 싶다.      



길도 사람도 차분하다. 경유하는 작은 마을에서는 태극기가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는데 입맛에 맞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커피 맛이 별로라고 느낀 적이 없었기에 오히려 기억에 남는 커피 집이 되었다. 

우리나라 국기를 문 앞에 걸어둔 까닭이 궁금해진 것은 카페를 나온 한참 후였다. 순발력 빵점의 사고력에 어처구니가 없다. 한국인 순례자가 얼마나 많이 지나갔으면 숱한 나라의 그 많은 국기들을 제치고 우리나라 태극기가 걸렸을까.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주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처럼 태극기에 이끌려 들어간 한국인도 꽤 있었을 것이다. 해외에서는 모두 애국자가 된다니깐.   

     

태극기 청년을 다시 만났다. 함께 걷던 젊은이들과 헤어졌나 보다. 커다란 태극기로 감싼 큰  배낭은 여전히 청년을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 저 기분을 알 것 같다. 내가 길 떠날 준비를 하며 태극기 엠블럼을 배낭에 꿰매던 그때의 심정이 되살아났다.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의 발현, 바로 그것이었다. 앞뒤로 안고 멘 배낭 무게를 온전히 혼자 감당한 채 묵묵히 걷고 있는 젊은이는 우리나라의 청년이다. 정말 듬직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삶의 무게를 짊어진 우리나라 젊은이의 전형 같아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저만한 아들을 두고 있는 엄마이기에 내 자식을 보는 듯하기 때문일 게다.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자 젊은이는 힘차게 손을 흔들더니 웃으며 제 갈 길로 씩씩하게 간다.   


가을이 깊은 탓일까 길은 머물 곳 하나 없어 보이는 쓸쓸함으로 꽉 차 있다. 마음이 시리다. 목적지 ‘라바날 델 카미노’는 매우 작은 마을로 구멍가게조차 없다. 그러나 이토록 작은 마을에도 성당은 있었다. ‘12세기 성모승천성당’이 그곳이다. 

지금까지는 마을에 들어서거나 머무를 때면 성당에 들리는 게 일상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쩌나! 오늘만큼은 알베르게에서 쉬고 싶다. 그곳까지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아 애써 못 가는 변명을 만들었다. 내일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다리를 쉬게 해야 한다고. 


그런데 사람 마음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라푼젤 언니가 성당을 다녀와 들려준 얘기에 안 간 것을 후회했다. 갈까 말까 할 땐 가고, 볼까 말까 할 땐 보는 게 정답인가 보다.   

12세기 성모승천성당은 아주 작고 낡았더란다. 언니 말대로 사진으로 본 성당은 외풍을 견뎌낼까 싶을 만큼 헌 벽이 을씨년스럽다. 예전에는 한국인 사제가 계셨다는데 지금은 매우 검소하고 겸손한 사제가 계시더라고 했다. 폭풍우가 다가오면 주민을 위해 종을 울리고 기도를 드린다는 성당의 내부 사진을 보니 알 수 없는 감동이 마음을 친다.   

     

이해인 수녀의 '길 위에서'를 다시 읽었다. 내 안의 나를 만나고 싶다는 소망으로 길 위에 선 나에게는 선물 같은 글이다.    

  

  길 위에서 
                                    이해인

  오늘 하루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없어서는 아니 될 하나의 길이 된다. 

  네게 잠시 환한 불 밝혀 주는 사랑의 말들도

  다른 이를 통해 내 안에 들어와

  고드름으로 얼어붙는 슬픔도

  일을 하다 겪게 되는 사소한 갈등과 고민 설명할 수 없는 오해도

  살아갈수록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나 자신에 대한 무력함도

  내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오늘도 몇 번이고 고개 끄덕이면서 빛을 그리워하는 나

  어두울수록 눈물 날수록 나는 더 걸음을 빨리 한다.      


* 걷기 23일 차 (아스토르카~ 라바날 델 까미노(Rabanal del Camino)) 23.5km, 누적거리 54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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