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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래희망은 '멋진 할머니'

by 하람

젊은 시절, 자주 마음속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삶의 허허로움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살이 빠지고, 웃음이 없어지고, 눈동자는 빛나지 않았다. 치유가 필요했으나 방법을 몰랐다. 그저 마음이 답답하면 산으로 들로 나가 걸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속에서였다. 스스로 내 안의 나와 대화를 나누던 푸석푸석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메마른 마음속에서 새 살이 돋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길이 생명임을 알게 되었다. 길이 주는 위안으로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생겼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과감히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기쁨도 맛보았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옛사람들과 교감하며 그들의 정신을 닮고자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타샤 튜더’를 책 속에서 만났고, ‘모지스 할머니’는 그림으로 만났다. 일본의 건축가 ‘츠바다 슈이치’ 씨는 또 어떠한가! 그가 아내와 함께 한 노년의 시간을 영상으로 만나며 내 마음속에서 희망이 솟아나고 있음을 느꼈다.

글을 썼다. 마음속 응어리를 브런치스토리에 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서러운 삶을 쏟아내자 숨이 쉬어졌고 가슴이 후련했다. 그 후 나는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삶의 경로를 재정비했다. 생각 주머니에 담긴 것들을 글로 표현하며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행에 옮겼다. 서서히 마음의 문이 열렸고, 긍정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배웠고 또 도전했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걸은 후, 나의 내면은 더욱 튼실해졌다. 삶의 다른 모습을 이웃과 나누고 싶어 이 또한 브런치스토리에 여행기로 남겼다. 역경의 기록이었기에 내가 나를 넘어선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 덕에 나는 또 다른 기쁨을 맛보았다. 이 글을 다듬고 보강해서 단행본으로 출판했으니 말이다. 내 삶의 진정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 흐뭇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젠 나의 장래 희망인 ‘멋진 할머니’를 실현하는 일만 남았다. 이 근사한 꿈의 실현을 위해 오늘도 마음속에 각인된 어린 시절의 행복 한 자락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인생의 가을을 맞고 보니 비로소 알겠다. 아버지가 읽어주시던 이야기책과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었음을. 그 영향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위한 그림동화를 쓰고 그리는, 그리고 옛날얘기를 구수하게 들려주는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어린아이들과 어울리며 웃음을 나누다 보면 행복이 내 안에 스며들어 하루하루가 봄날일 것만 같다.


노년기에 맞이하는 봄날은 얼마나 달콤할까!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그러나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나는 삶의 속도를 늦추고 세상의 다양성을 볼 것이다. 열린 세상의 참맛을 알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출 것이며, 순간마다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는 멋진 할머니가 되어 삶을 만끽할 그날을 위해 그림 공부를 하고 글을 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의 의미를 언제나 되새기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인 인문이고 인간다움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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