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묻는 나의 안부
결혼과 출산을 하면 안부를 물어야 할 사람이 늘어난다. 친정부모님, 시댁부모님, 배우자, 형제자매와 그 배우자, 자녀, 조카까지.
각자도생 스타일의 친정집은 서로 연락을 잘하지 않는 편이었다. 집안 행사로 상의를 해야 한다든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서로 연락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러시는지 아빠는 내가 전화하면 꼭 이 말씀을 덧붙이셨다. "전화해 줘서 고맙다."
아빠가 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좀 부담이 되었다. 아빠에게 딱히 할 말이 없어도 종종 전화를 드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게 쉬운가? 습관대로 연락을 하지 않고, 연락이 뜸해지면 또 갑자기 연락하는 것이 어색해졌다. 일하랴 육아하랴 바쁜 와중에 휴대폰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을 가면서 아빠에게 전화를 하게 되었다. 통화가 길어지더라도 그렇게 부담되지 않았다. 그래서 버스정류장 가는 길이 보이면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버스정류장이란 '장소'와 전화통화하는 '행동'을 연결시켰더니 해당 장소가 나타나면 자연스레 통화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전보다는 자주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리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서부터는 아이의 안부에 온 신경과 에너지가 집중되었다. 아이가 잘 자는지, 얼마나 잤는지, 밥은 잘 먹는지, 무엇을 잘 먹는지, 얼마나 먹는지 매일 확인했다. 말을 하기 전에는 더더욱 집중해서 아이를 살폈다. 어딘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얼굴 표정을 살펴보고, 응가를 예쁘게 잘 싸고 있는지 체크했다. 아이의 안부를 말로 묻기보다는 아이의 몸짓에서 알아보았다.
아이가 훌쩍 커서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이의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라는 주제의 부모 교육을 듣게 되었다. 강의 내용 중에서 기억에 남는 한 가지는 '아이의 안부'를 물어보자는 내용이었다. 그저 늘 살펴보고 있었지만 말로 제대로 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물어보았다. 잘 잤는지, 학교에서는 별일 없었는지, 점심시간은 어땠는지. 하다 보니 자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제의 하루가 오늘의 하루와는 다를 테고, 어제의 기분이 오늘의 기분과 다를 테니까.
미혼 시절, 당시 기혼이었던 회사 동료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결혼하면 배우자가 가구 같은 존재가 돼."
"네? 가... 구...? 가구요?"
"응, 가구!"
난 굉장히 당황했다. 같은 자리를 지키는 가구. 며칠이 지나더라도 크게 변하지 않고 존재감이 크지 않은 가구.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같은 기혼인 분들이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1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가구'라고 얘기했던 그때의 장면이 종종 떠오르는 것을 보면 내겐 적잖이 충격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보니, 어떤 뜻으로 말했는지 나도 이해를 해버렸다.
아이의 안부를 의식적으로 묻기 시작하면서 옆에 있는 남편이 보였다. 남편의 안부는 전혀 묻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성인인데 당연히 알아서 잘 지내겠지 생각하며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곁에 있을 것만 같은 남편에게도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잠은 잘 잤는지? 출근은 잘했는지? 점심은 잘 먹었는지? 회사에서는 별일 없었는지?
이리저리 궁리해 가며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자녀의 안부를 묻고, 남편의 안부를 물었다. 안부를 물어야 하는 대상은 늘어났지만 가장 중요한 안부의 대상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나!
회사 일 하랴, 육아하랴, 집안일하랴 정신없이 바빴다. 전쟁 같은 등원 준비가 마치면, 실제 전쟁터라 불리는 직장으로 향하고, 집으로 다시 출근을 하여 아이들과 씨름을 한다. 잠을 거부하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협박해서 재우고 나서야 드디어 하루가 마친다.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는 것 같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도 하루가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졌다.
나의 안부를 이제야 물어본다. 잠을 잘 잤는지? 밥은 잘 먹는지? 별일 없는지? 나의 기분은 어떤지?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안부를 묻고 답하며 편안하게 잘 지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