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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성 Dec 11. 2023

힘내라고 말하지 마세요!

자녀를 낳으면 모성애가 저절로 장착되는 줄 알았다. 아이의 말과 행동에 재빠르게 반응하고, 깊이 공감하는 엄마가 자연스럽게 되는 줄 알았다. 아이를 보면 자동으로 눈에서 하트가 마구 쏟아지는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아이를 낳아보니 그렇진 않았다. 그래서 의심했다. 나에게 과연 자녀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이 있는 것일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럽다고 외치는 엄마, 아이의 소근육 발달을 시키겠다며 갖은 준비를 해두고 시키는 엄마, 아이의 작은 변화를 캐치하여 블로그에 글을 적는 부지런한 엄마.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 갈아주는 등 아주 기본적인 육아에도 힘에 부쳐하는 나는 한참 모자란 엄마였다. 그렇다고 이 일을 누군가가 알아주지도, 인정해 주지도 않는다. 아이는 낳으면 저절로 큰다고 했던 친정엄마의 말이 너무 야속할 뿐이다.




아이가 돌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남편이 하는 말들이 비꼬아서 들렸다.


"아기 손톱이 길던데?"라는 말이 아기 손톱 좀 자르지 뭐 하고 있었냐고 질책하는 것처럼 들린다. 마음을 추스르고 직접 좀 깎아보라고 얘기해 본다. 기어이 피를 보이고 만다.


"아기가 열이 좀 나는 것 같지 않아?"

'나보고 지금 당장 재보라는 건가? 직접 재보면 되지 왜 그걸 나에게 말하는 걸까?'


"이유식은 잘 먹었어? 뭐 먹었어?"

잘 먹었다고 말하지만 왜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물어보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영양이 골고루 들어간 음식을 잘 먹이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물어보는 것은 아닐까 의심을 품는다. 이내 왜 나에겐 그 질문을 던지지는 않는지 서운해진다. 밥은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 묻지 않아 섭섭하다.




주변 사람들이 해주는 응원이나 조언의 말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이가 참 순하네~ 효녀야~"


"아... 네~" 미소만 슬쩍 지었지만, 마음속은 요란했다.


'아니, 그냥 겉모습만 보고 어떻게 그렇게 판단하지? 

키워보지도 않았으면서 뭘 안다고 순하네 안 순하네를 논하고 그러지?

순해서 키우기 수월하겠다고 말하는 건가?

육아하기 쉽겠다고 섣불리 판단하는 거야?'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누가 모르나? 

머리로는 알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단 말이야!

내가 지금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천하태평하게 그게 위로라고 말하는 거야?

가슴으로 와닿는 말이라고 생각해? 도대체 그 시간이 오긴 오는 거야?'


"힘내!"


'응원이랍시고 하는 말이야?

나도 엄청 힘내고 싶지, 그 힘이 안 나는데 어떡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어야 힘을 낼 수 있는 거 아냐?

이 육아의 터널은 끝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 어떤 희망을 갖지?'


내 마음이 꼬일 대로 꼬여 있었다. 상대방은 그저 잘 지내라는 정도의 인사일 뿐인데 나는 죽자고 달려든 셈이다. 가볍게 응원하고 싶었을 뿐인데 뺨 때린 격이다.





나는 누군가에게서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모습 이대로 잘하고 있다고, 엄마로서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지금 그 정도면 됐으니까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를 위해 온 힘과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엄마 그 자체면 된다고 말이다.


그렇게 내가 나를 인정하고, 나에게 칭찬을 건넸으면 어땠을까.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내'가 해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이 어떤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기 전에, 내 안의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더라면? 조금은 줌아웃 해서 볼 수 있는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다른 엄마들이 육아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워하고 자책하기보다는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좀 더 성장했다면 그 자체로 만족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남편의 말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조금은 여유롭게 대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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