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성묘상

보고 싶은 할머니께 밥상이 아니라 성묘상을 차려드렸다.

by 아하아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첫 추석이 다가오자 할머니 생각이 더욱 많이 났다. 할머니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20살에 시집오셔서 돌아가시기 일 년 전까지 60년을 넘게 조상님들 제사상에 차례상을 차리셨는데도 막상 본인 제사상은 차려줄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서글펐다. 아들 둘을 앞세우고 하나 남은 아들인 삼촌은 제사를 지낼 형편이 안됐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는 동안 삼촌은 마지막 남은 원가족이자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며칠을 우셨고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후회도 절절했겠지마는 경제적 현실은 슬픔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손녀 중 가장 맏인 내가 할머니의 설움을 풀어드리고 싶었다. 어쩌면 돌아가신 분이 무슨 설움을 느끼겠냐만은 그렇게라도 해야 할머니에 대한 안쓰러운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성묘(납골당에 뵈러 가는 거지만 간소화된 성묘하고 하겠다)로 할머니의 차례상을 대신하기로 했다. 나물 3가지와 전 3가지, 산적, 을 한 접시씩만 하기로 하고, 탕국, 떡, 포 정도를 준비하면 될 것 같았다.

가짓수는 몇 가지 되지만 양이 적으니 금방이면 될 것 같았다. 퇴근길에 장을 보고 한꺼번에 두세 가지 음식을 하려면 머릿속에 순서를 그리면서 해나갔다. 엄마들이 하는 것처럼 뚝딱 해내는 완벽한 시나리오가 실전에서는 소용없었다. 어설픈 솜씨로 한꺼번에 음식 여러 가지 하려니 성공과 실패작이 골고루 나왔다.

꼬치전은 타버려 달랑 5개밖에 쓸 수가 없고, 탕국은 짜서 물을 더 부었더니 맛이 없고, 깨를 사는 걸 잊었더니 나물이 민둥민둥 벌거벗은 모양새로 되어버렸다. 겨우 이거 하는데도 3-4시간이 걸리고 어질러진 부엌을 치우고 음식쓰레기 처리까지 보통일 아니었다.

이 간단한 걸 하는데도 제법 고단한데 할머니는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하셨을까? 그리 고생을 하시고도 본인은 겨우 요정도만 받는 게 억울 하시진 않을까? 그래도 손녀가 이만큼이라도 한걸 기특하게 여기실까? 음식을 하나씩 하면서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납골당에 상을 차려 절을 했다. 할머니 사진을 두고 절을 하는 건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다. 할머니께 차려드리는 이 음식이 밥상이 아니라 제사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아려오고 눈물이 났다.

절을 하면서 웃고 있는 할머니 사진을 보니 금방이라도 우리 손주들 밥 먹었냐고 물으실 것만 같았다.

‘할머니~ 차례상이 요 모양이라서 미안해~ 손주들 끼니 걱정은 그만하고 따뜻한 밥이랑 국 드세요 ‘

keyword
작가의 이전글냉장고에 고등어 꺼내서 애들 맥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