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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잉 Jul 02. 2024

산아 제한 정책에서 저출산 정책으로

한국 정부는 1961년부터 1996년까지 35년간 산아 제한 정책을 펴왔다. 그리고 산아 제한 정책을 폐기한지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저출산이 문제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적극적인 저출산 대책을 펼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근시안적인 시야를 가졌기 때문일까? 정부는 나름대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1981년 경제기획원 주관으로 인구정책심의위원회가 만든 ‘인구 증가 억제 대책’의 장기적인 목표는 2050년에 6,100만명 선에서 인구 성장을 정지시키는 것이었다.


다만 당시 정부를 포함한 전문가 중 누구도 출산율이 그렇게 빠르게 떨어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인구 증가 억제 대책의 목표는 1988년 까지 합계출산율을 2.1명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출산율은 생각보다 빠르게 떨어져 1983년에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 2.1명은 대체출산율, 즉 인구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출산율을 의미한다. 


그 후로도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1988년에는 1.55명이 됐다. 1990년대 초반 출산율에 작은 반등이 있었으나 출산율은 꾸준한 감소세를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2002년도에 출산율이 1.18명을 달성하며 초저출산에 돌입하자 산아 제한 정책을 종료한지 6년 만에 출산 장려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장기적인 효과가 몇 세대에 걸쳐 드러나는 인구 정책을 단 6년만에 정반대로 뒤엎었다는 것이 어이없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럴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우선 산아 제한 정책은 한국 뿐 아니라 중국, 대만, 일본 등 한국과 비슷한 인구 구조를 가지고 있던 많은 국가들이 행해오고 있던 정책이었다. 중국은 법적으로 1가구에 1자녀만 가질 수 있도록 강제하기도 했고, 일본은 한국보다 10년 이상 일찍 인구 억제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그러한 인구억제정책의 기반이 되는 이론은 18세기 경제학자 맬서스의 이론이었다. 맬서스는 식량 공급이 산술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며,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인구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사람이었다.


2014년 로날드 리와 앤드류 맨슨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고소득국가의 경우 인구 증가율이 -1%에서 0% 사이일 때, 즉 인구가 소폭 감소하고 있을 때 소비 페널티가 가장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인구 증가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얼마나 보편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83년 한국 인구가 4000만명을 돌파했을 당시 한 국내 메이저 신문의 사설을 보면 선진국은 15~64세의 노동가능 인구 비율이 높은 반면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은 15세 미만의 비경제활동 인구 비율이 높아 선진국처럼 잘 살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 아이를 덜 낳아서 15세 미만 인구를 줄이자고 덧붙인다. 


지금 와서 보면 그 많은 15세 미만 인구는 십 년 이내로 경제활동 인구가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인구 구조는 선진국형 인구구조로 변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아이를 덜 낳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였던 것이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는 출산율이 더 증가해서 83년 당시의 15세 미만 인구가 성인이 됐을 때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의 15세 미만 인구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한 인구가 8천만 명이 넘어갈 수도 있고 또 그렇게 되면 맬서스가 말한 것처럼 필수 자원의 공급이 인구 증가를 못따라가 국민의 삶의 질이 엉망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 와서 보면 말도 안되는 가정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그 인구 폭발에 대한 두려움이, 합계출산율이 대체출산율보다 낮아진 후로도 10년 이상 산아 제한 정책을 이어가게 만드는 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이 그냥 과거의 이야기일 뿐일까?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저출산에 대해 가지는 두려움도 과장된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줄 문제일 뿐인지도 모른다. 


맬서스는 걱정이 많은 사람일 뿐이었고 실제로는 인구보다 기술적 효율성이 더 빠르게 증가해 대부분의 선진국은 남는 식량을 폐기하는 데 많은 비용을 쓰고 있다. 출산율은 걱정처럼 지속되지 않았고 오히려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떨어졌다. 그렇다고 산아 제한 정책의 시행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불필요한 두려움이나 관성 때문에 필요보다 길게 이어졌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출산정책은 급락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저출산을 심각한 문제로 보는 대신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과한 두려움이나 그로인한 단기적인 개입에는 그만큼 부작용이 따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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