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가을 사이 (2018)
아침부터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무더웠던 여름을 씻겨내 주나 내심 기대가 큰 비다. 그런 희망을 품은 하루는 매번 지하철로 보이는 큰 빌딩마저 시원해 보인다. 거센 비가 내 발을 적셔도 마음은 썩 나쁘지 않다. 아니 더 세게 밝고 지나간다.
‘더위야 가라’
큰 우산이 있지만 작은 우산을 들었다. 시원함을 더 맞이하고 싶었나 보다. 100여 년 만에 찾아온 폭염은 8월이 꺾이는 동시에 태풍과 함께 잠잠해졌다. 심심한 싸움이었다. 태풍은 더위에 가라앉고 더위는 태풍에 가라앉았으니 말이다.
큰 더위가 지나간 때문인지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 마음으로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오전에 작은 수다를 떨었다. 일부러 창가에 앉아 시원함을 즐겼다. 여름 내내 가지지 못한 대화라 보슬비처럼 청량했다. 작은 속마음을 내비치고 하나하나 말을 경청했다. 참 좋은 친구들. 스스로 단절했던 마음이 왜 그랬나 했을 정도로 무색하게 느껴졌다.
가을이 오려나보다.
회사에 닫혀있는 작은 문을 열었다. 이른 아침과 해진 저녁에 어느덧 찬기운이 회사를 들어온다. 회사를 마칠 때 남아있는 친구를 응원했다. 잘 이겨내 보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양. 아직은 이른 아침과 해진 저녁에만 희망이 보인다. 작은 창문 사이로 하루 종일 희망이 들어오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