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공(空)의 역할에 충실한 공간(空間)이기 때문이다.
내가 집 안의 물건을 비우고 싶어하는 이유는 단순히 미니멀리즘적 인테리어를 추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2013년 여름, 우연히 샌디에고에 있는 루이스 칸 건축가가 설계한 '솔크 연구소'에 방문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공(空)의 역할에 충실한 공간(空間)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건축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지만, 잘 만들어진 건축물이 가진 공간의 힘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비움의 미학을 지닌 공간에 들어선 순간 나의 마음은 단번에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나는 공(空)의 역할에 충실한 공간(空間)을 좋아했다. 그 공간을 보면, 세상이 정지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공간에 아무 것도 없으니 주변의 불필요한 사물들로부터 내가 자극 받을 것도 없고, 오롯이 나, 더 정확하게는 나의 의식에만 집중하게 된다. 주변의 어떠한 자극도 없이 나의 의식에만 몰입할 수 있을 때, 나는 세상의 일에서 멀찍이 떨어져 평정심을 찾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빈 공간 서비스'를 즐기는 이유
많은 사람들도 빈 공간을 볼 때 나처럼 편안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호텔, 교외 카페 등을 좋아하고 즐겨 찾는 것이 아닐까. 사실 호텔은 숙박객을 위해 정말 최소한의 물건들만 마련되어 있는 여유로운 객실을 제공할 뿐이고, 교외 카페는 도시의 좁은 카페와는 차별화된 넓은 실내외 공간을 제공할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빈 공간 서비스'를 너무나 만족해하고, 이 서비스를 즐기기 위해 꽤 많은 돈을 기꺼이 지불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능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보이는 이 빈 공간에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즐긴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휴식, 파트너와의 즐거운 대화, 가벼운 독서, 일상에서는 할 수 없는 새로운 생각들 등. 분명 평범해 보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즐기기 어려운, 아주 귀중한 경험들이다. 빌딩들이 빽빽이 자리잡은 도시에서는, 그리고 물건들이 가득한 집에서는 우리의 정신을 마음대로 쉬지 못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자극들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빈 공간의 가치’는 우리가 지금 하고 싶은 일에만 몰입하게 해주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주는 데 있다.
'빈 공간'은 현재이고 편안함이다.
'무엇인가로 가득찬 공간'은 과거,현재, 미래 그리고 불안이다.
‘빈 공간’은 우리가 편안한 상태로 ‘현재’에 집중하게 해준다. 즉 우리가 편안한 상태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지금의 일에 몰입하게 해준다. 어떻게 보면 일상을 살아가는데도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 있는 공간에서 일상생활을 하며 수 많은 자극들로 인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때로는 불안해 한다. 현재를 살며 또 다른 현재를 걱정하거나 불필요한 과거의 기억을 꺼내보거나 미래의 일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복잡한 생각 속에 사로잡혀 있다가 여가시간에야 비로소 현재와 밀착된 가장 단순한 생각을 즐기러 '빈 공간 서비스'를 찾는다.
무언가로 가득 찬 공간. 그리고 공(空)의 역할에 충실한 공간(空間). 어떤 공간이 절대적으로 좋거나 나쁘거나 하지는 않다. 무언가로 가득 찬 공간은 생활에 긴장감을 주고, 빈 공간은 생활에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시간에 어떤 공간과 함께할 것인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일할 때, 휴식을 즐길 때, 잠잘 때, 공부할 때 등의 시간에서 어떤 공간에서 머무르고 싶은지, 어떤 공간이 나에게 가장 적합한지 결정해야 한다. 이 결정이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편안함의 느낌을
나는 휴식을 즐기고 잠자는 시간을 많이 갖는 집에서는 편안한 느낌을 갖기로 했다. 따라서 이 점이 내가 본질적으로 집 안의 물건을 비우고 싶어하는 이유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