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비우기에 열심이다. 내년엔 부모님 집에서 독립할 준비를 하고 있기에 올해 말까지 최대한 물건을 비우고, 꼭 필요하고 소중한 물건들만 나의 집에 데려가고 싶다. 이번 주에는 낡은 여름 반바지 4벌을 비웠는데, 최장 7년부터 짧게는 3년까지 나랑 함께한 바지들이다. 추억이 많은 물건들이지만, 색이 바랬고 이제는 핫팬츠를 잘 안 입게 되어 비우기로 결심했다. 그 바지들을 쇼핑백에 담으면서 나는 추억을 곱씹어 봤다.
‘이 아이는 3년 전 강남역에서 엄마랑 쇼핑하다가 엄마카드 찬스로 샀었지. 그리고 이 아이는 6년 전 보스턴에서 어학연수할 때 남자친구랑 쇼핑몰가서 샀었고. 얘는 20살 때 명동 밀리오레 가서 산 반바지. 단추에 박혀있는 별들, 이 예쁜 디테일 하나 때문에 덜컥 샀었지. 그리고 마지막 이 아이는 아울렛에서 70% 파격할인으로 산 바지. 내 인생 두 번째 여름 반바지인데… ’
‘내 인생 두 번째 여름 반바지’라는 생각에 미쳤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몇 번째 여름 반바지를 샀을까?
전혀 알 길이 없다. 중간중간 몇 번 입고 버려 버린 것들도 많기 때문에 내가 샀던 모든 반바지를 기억할 수가 없다. 아직 20대에 불과한데 벌써 기억도 안 날 만큼 많은 숫자의 반바지를 소유했었다니. 정말 나는 N번째 반바지까지 계속 사야 했을 만큼 그렇게 많은 반바지가 필요했던 것일까.
N번째 소비와 비움.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왜 이 사실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을까. 분명 문제적이다. 바지도 한 벌 당 적어도 3년은 입을 수 있을 테고 필요한 바지라고 해봤자 청반바지, 면반바지, 긴 면바지, 긴 청바지 정도일 텐데, 나는 그 동안 수 많은 색깔과 디자인의 바지를 모아재꼈다. 그리고 소비와 버림을 반복해 돈도 버리고 시간도 버리고 환경도 오염시키는 주범이 되어 있었다. ‘나에게도 환경에도 안 좋은 무절제한 소비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어떤 환경주의자의 외침이 갑자기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그 동안 왜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소비 했을까. 소비에 집착한 것도 아니고, 정말로 소비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첫 번째 이유를 들자면 ‘소확행, 올해의 트렌드 컬러, 가성비, 파격가 …’ 같은 마케팅 문구가 ‘당연히 소비해야 하는 이유’로 작용하며 자연스럽게 설득 당했던 것 같다. 소비할 이유는 나 스스로 정해야 하는데, 책임감 없이 소비할 이유를 수많은 브랜드들의 마케팅 부서에 맡겨두며 나의 지갑까지도 함께 맡겨버렸다.
두 번째 이유는 쇼핑을 가성비 좋게 나를 바꾸는 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멋진 옷을 입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많은 노력 없이 단지 몇 푼 소비했다는 것 만으로도 멋진 나의 모습이 거울 앞에 보인다. 거울 앞의 나는 그저 겉모습일 뿐인데, 나는 그것에 속고 또 속았다. 그렇게 산 옷들을 족족 옷장에 걸어두었고, 순간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산 옷들은 통일성 없이 나열되어 나로 하여금 또 ‘입을 옷이 없다’는 말을 내뱉게 만들었다.
입을 옷이 없다.
나 말고도 자신의 옷장 앞에선 많은 현대인들이 공감하는 말이다. 문제는 ‘입을 옷이 없다’라는 말은 분명 우리가 한 소비가 실패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실패는 유독 다른 일들로 인한 실패만큼이나 우리에게 고통과 깨달음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취미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취미는 과정을 즐기는 것에 의미를 둘 뿐, 결과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현대 소비사회의 산업적 특징으로 자연스럽게 대중적 취미가 된 쇼핑은 즐김의 대상이 되었고, 사람들은 쇼핑으로 없어진 시간, 돈, 공간, 환경에 대한 어떠한 문제의식과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무책임한 소비활동은 우리의 삶의 질을 계속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문제점을 자각했을 때 미니멀라이프를 exit로 택했던 것 같다.
쇼핑에서의 N번째 실수 그건 분명 내 삶에 대한 N번째 실패다. 앞으로는 소비에서도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