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낳아주신 분이 아닌 분에게 감히 엄마라고 부른다는 게 영 쑥스러울 일인데 내가 호칭에 민감한 편이라 쉬이 오빠라고 부르지 못하는 성격인 점을 감안하면 남에게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대단한 분이시기에 가능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그러니까 내가 미국에 처음 도착하고 첫째 딸의 바이올린 선생님으로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분의 남편을 먼저 만나게 되었다. 그 남편분으로 말할 거 같으면 서울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시고 같은 학교 교수님으로 재직을 하고 계시던 중 너무도 이쁘고 멋진 KBS 공영방송 아나운서를 만나셨단다. 지금도 아나운서 하면 지적이고 아름다운 이미지이듯이 그전에도 그러했을 터인데 한눈에 반하셔서 딱 낚아 채시더니 돌연 미국으로 날아오셨단다. 바로 그 분이 안 용구 선생님이시고 아내분이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아나운서시다. 바이올리스트와 아나운서의 운명적인 삶이 미국에서 펼쳐지셨다.
미국으로 오신 뒤로 존 홉킨스 음대인 피바디 대학의 교수로 30년 동안 젊은 학생들을 양성하시다 은퇴하셨다. 그 후로 그동안 염원하셨던 통일 운동의 선봉에 서셔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셨다. 그런 대단한 분의 뒤에는 대단한 와이프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내가 엄마라고 부르시는 이분이 경제개념이 없으신 음악인의 아내로 사시면서 모든 뒤치닥 거리를 호탕한 웃음으로 승격하셨다.
몇 년 전 돌연 이층으로 향한 계단에서 뒤로 넘어지는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남편에게 하신 말을 나는 잊지 못한다.
하시며 누가 먼저 위로의 인사라도 할세라 선수 치시며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에서 난 진한 부부의 사랑을 느꼈다. 그렇게 홀연히 아무것도 정리 안 하시고 가셨다고 속상해하실 만도한데 남편에 대한 진한 사랑을 이렇게 위로하시며 남편을 우대하는 모습이 진정한 사랑이라 우리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그 뒤로도 몇 년이 지난 이번해에도 남편을 기리는 추모 콘서트를 여셨다. 매해 그러하듯 유명한 필라델피아 단원인 선생님의 딸이 비올라로 구슬프고 멋진 음악을 연주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기리는 축사를 하고 손주들은 케이크를 자르며 콘서트는 마무리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변화되는 모습 중의 하나가 집안에 사람을 불러들이지 않는다는 일이다. 일단 누군가를 초대한다 치면 집안을 치워야 하고 초대할 사람들의 목록을 만들어야 하고 사람과 모임의 성격에 맞게 음식과 음료수를 준비해야 하는 과정에서부터 성격에 맞는 테이블이며 그릇 세팅까지 그 준비가 만만치 않은데 그 많은 준비를 혼자 하신다. 체력이 좋으실뿐더러 그 열정은 아무도 따라가지 못할 듯하다.
파티 날에는 음식은 물론 집안 식구들의 옷차림 하나까지 신경을 써야 하고 호스트로써 사람들과의 관계 정립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누구든 즐거운 파티를 즐길 수 있다. 더구나 호스트의 호탕함이 있어야 분위기 밝아지고 손이 넉넉해야 풍족한 파티가 된다. 그러기에는 엄마의 활달한 성격과 깔끔하고 정갈한 음식메뉴는 다른 모든 걸 제치고도 호평받는 일 중의 하나다.
내가 뷰틱 샾을 하는 관계로 한 달에 두어 번은 오시는데 오실 때마다 스타일도 멋지시지만 같이 오시는 친구분들의 모습도 다양하시다. 엄마보다도 최소 대여섯 어리신 분과도 자주 오시는데 어느 날 같이 오신분이 아주 쑥스러워하시며 말씀 하신다.
'요즘 살이 쪄서 큰일이야. 할범 가시고 한 달밖에 안되었는데 이렇게 배가 나오고 있으니 민망해 죽겠어..'
남편이 돌아가신 것도 몰랐던 터라 그분의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데 살이 자꾸 쪄서 민망하시다는 말에는 웃음이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부부로 살았던 삶이 50년 이상이고 그중에 7여 년을 누워만 계신 분을 요양원도 아닌 집에서 병수발을 하시며 고생하셨는데 가신 건 안타깝지만 그래도 몸이 편하니 살이 찌신다는 말씀을 하신다. 산사람은 살아야지를 넘어 힘들었던 육신의 편안함은 민망함을 넘어서는구나 싶고 부부의 삶으로 50년 이상을 살면서 혼자 살아야만 하는 홀로서기가 병시중보다는 수월하다 싶으니 인간의 간사함이 아닌 솔직한 인간애가 느껴져 그분의 미소가 슬프지만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또 한마디를 하신다. 딱하나 아쉬움이 남는데 바로 한 번도 직접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해 드렸다고 그 말이 왜 그리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지 그렇게 한스러우시다며 살짝 미소 지으시며 쑥스러움을 내비치시는데 너무도 그분의 사랑이 느껴졌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매일 아침 남편의 사진을 보며 말씀하신다고 한다.
직접 전하지 못한 말씀을 그분이 가시고 허공에 대고 하시는 말이 얼마나 안타깝나 싶지만 그렇게라도 그분에게 전달된다면 좋겠다 싶었다.
또 한분은 진짜 내 엄마와 흡사 닮으신 분이 계신다. 나이도 비슷하게 80대신데 나도 귀찮아서 하고 싶지 않은 멋에 대한 부지런함이 남다르신 분이다. 오다가다 방금 쪄낸 떡이라며 슬쩍 내 손에 내미시고, 여행 다녀오셨다며 자그마한 향수를 손에 쥐어주시고, 지나가 보고 싶어서 잠깐 들리셨다며 환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얼마 전에는 무릎이 좋지 않으셔서 관절 수술을 하신다고 하시면서 '지나, 보고 싶어서 어쩌죠? 혹시 내가 못 나오면 지나씨가 라이드 해줄 수 있어요? 그렇게라도 한 번 오고 싶은데.. '하시면서 약속을 받아가시는 모습도 보이셨다.
단 한 번도 아무렇게나 입고 나오시는 법이 없고 항상 우아하게 차려입으시고 단아하게 화장을 하시고 머리를 정갈하고 멋지게 손질하시고 액세서리도 요란하진 않지만 오래전에 구입하셨다고 하시면서 귀중하게 착용하신다. 내가 꼭 가지고 싶은 잇템도 여러 개 가지고 계신다. 나이로는 결코 뒤지지 않으신데 젊은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도저히 사모님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언니라는 호칭을 쓰기도 한다.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편견 중에 하나가 깨진 게 있다. 아주 이쁘게 입고 나가는 여자를 보며 옛 어른이 하는 말은 '에고 저렇게 혼자 쫙 빼입고 다니니 집안 꼴은 뭐가 될꼬 ㅉㅉ' 였다면,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부지런 떠는 여자치고 집안이 깨끗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를 보면 열을 안다고 결국 부지런한 사람이기에 집안은 물론 자기 자신을 꾸미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고 주변정리도 말끔히 잘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샾에 드나드는 고객치고 가정이 평탄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자신을 가꾸는 일도 잘하지만 집안일은 물론이고 음식이나 취미 생활에도 열심이고 아이들도 훌륭히 키우는 멋진 사람들이 많다. 모두 멋을 내고 다닐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고 거기에는 나이대가 말해주기도 한다. 나 또한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교육비에 아이들 라이드에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기지 않아 이런 샾을 드나들 여력과 여유가 없었다.
매주 내 샾에 오시는 분 중에 키가 크신 분과 키가 조금 작으신 두 분이 꼭 함께 오신다.
일주일에 한 번 날을 정해서 점심을 드시고 난 후 오시는 분들인데 두 분 다 한국에서 그 시절 내놓으라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함께 나오시고 결혼을 한 후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 오셔서 함께 고생하시다 또다시 이곳에서 만나 이제는 나이가 드시니 언니 동생으로 만남을 이어가시는 절친이다. 매주 좋아하는 사람과 식사를 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정기적인 모습이 몸과 정신적인 건강에 아주 좋다는 말을 들었다.
누가 봐도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한분은 키가 크고 한분은 키가 조금 작고 머리도 길고, 짧고 성격 또한 한분은 여성스러우신 반면 한분은 보이시한 분이다. 하지만 항상 '참새가 방앗간에 들렸어요' 하며 들어오셔서 분위기를 업시키신다. 60년대에 미국에 오셔서 한국음식을 먹고 싶은데 파는 곳이 없으니 할 수 없이 양배추를 사다가 김치 대용으로 만들어 드셨다는 이야기며 아이가 아파트에서 너무 울어 쫓겨났다는 후일담을 어찌 그리 리얼하게 하시는지..
두 분 다 골프를 즐기시지만 키가 크신 분은 지금도 남편분과 일주일에 4번 골프장에 가신다는 왕체력의 소유자이시고 키가 조금 작으신 분은 유명한 화가분이셔서 당신의 그림이 지금 사시는 아파트 입구에 떡하니 전시가 되어있단다. 70대로 두 분 다 너무도 건강하고 멋지게 살아가고 계신다.
20대 젊음의 매력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그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그들만 모를 뿐 그 시대를 살아낸 이 땅의 모든 여자들은 안다. 20대의 젊고 활기찬 모습을 나의 딸, 아들에게 느끼게 되고 지나온 나의 젊음을 대변하고자 열심히 미래를 설명하고 가이드해준다. 앞서간 부모나 지나온 시절의 앞선 사람들의 조언을 잘 듣고 안 듣고는 20대 그들의 몫이다.
30대와 40대는 여자로서 능숙한 삶의 설계자이자 결코 지칠수 없는 파워를 뿜어내야하는 중요한 시기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의 중심에 서서 그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고 참는 시련의 끝을 경험하게 된다. 한마디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끼어 이리저리 맞파람을 맞는 시기라 젊음을 젊음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흘러가버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를 찾기 이전에 나에게 매달리는 가족이 우선이어야 하고 나의 자아를 개발하기 이전에 내 자식의 발전에 총력을 그리고 배우자의 생활패턴에 서로 맞추어 가야 하는 시기라 나를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흔들리는 나를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을 때가 바로 3-40대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50대가 되었다.
50대에도 별 재미없게 살 줄 알았던 아니, 여자이기를 포기하고 그저 아이들의 엄마로서만 존재할듯했지만 아이들을 자립시키고 나니 이제야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깊이 있는 삶을 사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폐경기를 거치며 사춘기처럼 찾아오는 갱년기와 씨름하며 살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나름 아이들로부터 해방이 되고 나를 찾는 휴식 같은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
매력적인 여자의 모습은 20대 청춘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60이 되고 70이 되고 그리고 80이 되면 아무것도 없을 거 같지만 실제로는 활기차게 인생을 설계하며 젊은이들 못지않게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다. 한 번뿐인 자기의 삶을 멋지게 펼치고 있는 분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이렇게 매력적인 모습으로 오늘을 살고 계신다.
100세 시대라는 말을 실감하는 게 70세는 너무도 젊은이 축에 속하고 80세가 되어도 노년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적어도 이제는 90세가 되어야 노년이라는 말이 통할듯하다. 자가운전뿐만 아니라 의료가 발달되어 요양원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으실 정도로 건강하시다. 몸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건강하셔서 젊은이들 못지않게 유행에도 어느 정도 민감하시고 세상 돌아가는 판도 잘 읽으신다. 내가 90세가 되면 100세가 되어야 노년이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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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가 되면, 무슨 재미로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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