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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상담은 필요없다구요,

by 멜랜Jina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듯하지만, 그때만 해도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지 않을 때였다.


집집마다 집 전화가 있었고 친절하게도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가 온 것이다. 물론 영어로 왔다. 지금도 영어 울렁증이 있지만, 그때는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어로 대화하는 게 지금보다 더 무서울 때였다. 아마 땡큐만 연신 했을 테지만 아무튼 우리 아이가 러닝메이트와 함께 학교 선거에서 이겼다는 승전보를 전해주었다. 지금 와서 그 때를 떠올려보면 한참이나 빛바랜 영화의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머릿 속에 그려진다. 벅찬 환호, 가슴 뛰는 환희 그리고 밝은 미소들..


그때의 감격은 말로 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한국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곳, 얼굴이 하얀 미국 아이들 틈,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거에 나선 아이의 뒷모습, 그 결실로 학생회 일을 한다니 그저 감격스러울 뿐이었다. 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사는 설움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 듯했다. 언어가 달라 그리고 인종이 달라 어설픈 설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생활에 지칠즈음 한줄기 빛이 내려오는 듯한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다. 학교 부회장이 뭐라고 내 인생에서 가장 가슴 벅찬 일이 무엇이냐 물으면 세 번째 손가락에 들 만큼 대단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한 건 학생회를 대표하는 기준이 한국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학생회 일원이 되고 적어도 회장이나 부회장에 도전장을 낸다면 그 학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생각해 그 기준이 일단 높은 학교성적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학교생활이나 리더십, 특별히 무언가 뛰어난 학생이고 특히 대학진학에 있어서 어느 정도 가산점을 얻고자 희망하는 도전의식이 있는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완전히 다르다. 그 누구도 그들의 선출기준에 대해 말하는 자가 없다. 누가 나오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물론 학교성적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성적이 뛰어나야 도전할 수 있다는 기준이 있다면 미국에선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재미있는 웃음을 준다거나 얼굴이 이쁘거나 너무 못나서 개성이 넘치거나, 키가 커서, 어디가 아파서 등등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그 무언가가 그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고 그만의 개성을 인정받고 존중되면 선거를 통해 회장이 되고 부회장이 되는 것이다.


아무튼,


왜소증으로 키가 유난히 작은 아이와 까무잡잡한 동양 여자의 러닝메이트는 선거를 통해 성공적인 스타트로 중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폐품을 모아 아프리카에 보내는 일도 실행했고 학교를 깨끗하게 만든다며 오후에는 열심히 휴지를 줍기도 했다. 런치 타임에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일도 아이디어를 내서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캔 음식을 도네이션 받아 홈리스에게 나눠주는 행사도 단행하는 기염을 토했다.


학생회 일과 더불어 공부에 대한 열의는 대단했다.


유치원 때부터 과목마다 레벨을 나누어 학생 개인마다 그룹별로 차별화된 학습을 시키더니 4학년부터는 GT(Gift&Talant) 반이라 해서 아예 2학년을 건너뛴 반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5학년 말쯤에는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시험을 치뤄 영어는 물론 수학 과학 사회 등 전 과목에 걸쳐 GT반으로 가느냐 일반 반으로 가느냐를 미리 결정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우리 아이는 한국 아이답게 수학은 점수가 좋았으나 아무래도 영어 점수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서 수학과 과학은 단번에 GT반이 되었으나 영어와 사회는 GT반이 되지 않았다. 어는날 그 결과지를 받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식음을 전폐하고 하늘이 무너져라 엉엉 울었다. 그렇게 억울하고 서럽게 우는 모습은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생각될 만큼 정말 심각하게 큰 소리로 울어댔다.


그 모습을 보게 된 어떤 분이 팁 하나를 주었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점수가 모자라 떨어진 경우 학생에 대해 부모의 의견을 모아 정중하게 편지를 써서 학교에 보내면 재량껏 GT반에 들어가게 해주는 경우가 있다는 희망적인 말이었다. 집이 떠나가도록 서럽게 우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정중하고도 간절하게 영어 선생님에게 아이에 대한 편지를 썼다. 먼저 아이가 진정으로 GT반에서 공부하길 원하고 부모로서 열심히 서포트 할 것이고 만약 기회를 한 번 주신다면 아이의 자존도 지켜질 것이며 아이에게 밝은 미래가 될 것이라는 등 제발 한 번만 우리 아이를 믿어달라며 간곡한 편지를 보냈다.


그 간절함이 통했는지 다시 편지가 왔다.


평소에 아이가 반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해서 GT반에 가더라도 잘 따라갈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고 이렇게 서포트 해줘서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GT반에 들어갈 수 있는 합격증을 보내주셨다. 비록 시험 성적은 그 반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아이가 보여주었던 성실함과 과정이 헛되지 않았고 그 태도를 인정해 주었고 그 편지 또한 우리가 간절히 원함을 보여주었기에 아이에게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알았다.


만약 우리 아이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지 않고 그냥 포기했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일반 반에 들어가서 열심히 하면 다시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 상실감으로 인해 어떠한 방향으로 전환 되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사춘기의 시작점이 딱 그때였기 때문이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무슨 일이건 곧바로 포기하기보다는 기회가 될 수 있게 한 번 더 노력하고 진심을 다해 결과를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전 과목 GT반에서 공부하게 된 아이는 3년 동안 학점 A를 유지했다. 학교 성적표에 등수가 나오지 않으므로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얼마만큼 잘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대학 원서에도 들어가지 않으니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게 보통이었고 그저 GT반에서 A성적을 유지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생각되었다.


가끔 아이에게 "에구 성적이 좋네" 하면 "엄마 친구들 모두 A야. 나만 A가 아니야,,," 이런 말을 자주 했기에 A는 누구나 맞을 수 있는 그저 그런 점수려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학교 상담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인터넷으로 상담 시간을 예약할 수 있었고 두 동생을 친구 집에 맡기고 열심히 영어로 질문할 내용을 준비하고 학교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과목별로 시간 예약을 했고 첫 번째로 사회과목 교실로 향했다.


눈이 파란 젊은 남자 선생님은 나를 살짝 의아해하며 자리를 안내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00 엄마예요"

"네 안녕하세요? 무슨 문제로 오셨나요?"

"아,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있나요?"

"그럼요. 잘 있지요...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말해 주세요"

"아니요. 그냥 선생님에게 인사하고 잘 따라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왔어요"

"문제가 있다면 미리 알려 드릴께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굳이 상담을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뿔싸!! 한마디로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도 아니고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고 학교에서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왜 귀찮게 이렇게 상담을 예약하고 쓸데없이 자기의 시간을 빼았느냐'는 식이었다. 얼마나 민망하고 쑥스러웠는지 모른다. 학교에 문제가 있을 때만 상담을 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한국처럼 잘하든 못하든 학교 상담 기간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부모로서 아이에게 관심 가지고 있다는 걸 표시하는 일이고 선생님도 그만큼 학생에게 성의를 다 해 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게 문화의 차이였다. 그 뒤로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 원서를 쓰는 시점까지도 개인 상담을 가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립은 다르다. 사립은 대학 등록금만큼이나 비싸서 엄두도 못 낸다.


만약 이곳 학군이 좋지 않았다면 사립을 보내야만 했을 수도 있다. 동부지역이고 워싱턴 디씨에서 가깝고 버지니야의 페어팩스만큼 학군이 좋기로 소문난 이곳은 패어팩스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이다. 하워드 카운티(Howard county)는 메릴랜드에서 손 꼽히는 학군으로 사립학교를 보내지 않아도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좋은 학군이다. 학군이 좋다는 것은 학교성적이 좋다는 의미인데 그래서인지 다른 과외 수업은 받을 일이 없었다. 학원을 굳이 다니는 일 없이 중학교 때에도 학습지의 역할은 우리 아이의 실력을 향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다 새로운 정보를 하나 얻게 되었다.


메릴랜드에 그 유명한 존스 홉킨스대학이 집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그 대학에서 여름 방학마다 CTY(Center for Talented Youth)라는 영재 썸머 스쿨 학생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에 있는 많은 유명 대학에서 썸머 스쿨을 운영하지만 영재스쿨로는 존스 홉킨스가 최초로 만들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썸머 스쿨이 되었다. 한국에서 웬만한 엄마들도 다 안다는 CTY는 더 많은 걸 배우고자 열망하는 아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CTY에 들어 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관문이 하나 있는데 저학년은 다른 시험이지만 7학년부터는 바로 미국 대입 수능시험인 SAT 점수가 필수 조건이다.


SAT는 이르면 10학년부터나 보는 시험인데 한참 어린 6학년이 봐야 한다니 어이없는 관문이었다.


보통은 미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게 현실이니 어쩌랴! 학원 하나 다니지 않았던 아이는 CTY에 도전한다는 선언을 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SAT 학원에 등록했다. 6학년 아이가 고등학교 언니 오빠와 공부를 했고 CTY에서 원하는 SAT 점수를 통과했다. 6학년이 끝나고 7학년이 되기 전 여름 방학에 집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대학 기숙사로 3주짜리 캠프를 떠났다.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 어린 아이가 가족과 떨어져 대학 기숙사에서 3주 동안 세계에서 모여든 다른 나라 아이들과 생활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 먼저 앞섰다. 등록비도 얼마나 비싼지 매일 학원을 다녔다는 가정하에 학원비 전체 금액을 3주 안에 몽땅 한입에 털어 넣는 기분이었다. 비싼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 무엇이 있으랴.


이쯤에서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할 것이 있다. 엄마의 정보력과 아빠의 무관심 그리고 할아버지의 경제력 이 3박자가 맞아야 아이가 성공한다는데, 할아버지 대신 남편의 무관심과 함께 아무 말 없이 나와 아이를 믿고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주었다는 데에 감사를 표한다.


그렇게 어렵사리 보낸 3주간의 썸머 캠프 생활은 어떻게 되었을까?


7화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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