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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푹자는게소원 Aug 25. 2024

불특정 혈액암으로 추정하다

[에드하임체스터 투병기]

암병동에서는 보통 보호자가 상주한다. 보호자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환자의 낙상 방지를 위해 화장실을 가거나 산책 시 보호자가 동행이 필요하고, 매 끼니 후 다 먹은 식판을 퇴식구로 반납하는 일 그리고 환자가 하루 먹은 양과 배출한 양을 기록하는 등등 꽤나 할 일이 많다. 


나의 경우, 위에 나열한 일 모두 스스로 처리가 가능했기에 부모님이 계셨지만 보호자로 따로 요청드리지 않았다. (나 말고도 중증 암환자분들도 보호자 없이 혼자 계신 분들도 계셨기에 보호자가 없는게 특별한 케이스는 아닌듯 했다.)


지난화에 예고한대로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께서는 부모님을 호출하셨고, 현재 검사 결과 그리고 향후 치료 계획을 논의 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당시 황달(빌리루빈) 수치는 2주가 가까이 30에 가까운 수치로 유지되어서 입원전과 비교해도 전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된 상황이었다.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은 나의 증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교수 : 지난 검사 결과 뚜렷하게 원인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황달 수치가 유지되는게 아무래도 혈액암의 한 종류로 추정됩니다. PET CT 검사 결과로도 간을 비롯한 다른 장기에 특별히 종양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황달은 간에서 파생되는데 간에서는 특별히 종양이 발견되지 않았다.)
나 : 헉.. 저는 기존에 알고 있는 자가면역질환이나 루푸스가 아닌걸까요? 
교수 : 네 맞습니다. 환자분은 저희가 진단 내린 자가면역질환과 증상이 동일했고 스테로이드로 회복이 되는듯 보였으나, 황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급격히 오르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혈액암의 한 종류로 보입니다. 다만 환자분의 케이스가 아주 희귀한 케이스여서 국내에서 사례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나 : ...(눈앞이 아득해진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하게 되는걸까요?
교수 : 이대로는 환자분 상태가 너무 위험합니다. 또 다른 합병증이 나타날지 모르니 당장 기본적인 항암치료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대로는 예후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당시 나의 머리속에는 짧은 순간 삶을 포기하는 상상을 했고, 굳이 생명연장을 위한 치료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2주동안 암병동에서 지내며 주변 혈액암 환자분들의 고통 섞인 신음 소리와 병마에 지친 생기 없은 표정을 지켜봤기에 더욱 거부감이 들었다. (입원 기간 체감상 2주는 2달처럼 길게 느껴진다.) 


가뜩이나 불안한 나의 감정 상태는 극단적이었고, 그 순간 어떻게든 부모님을 설득하여 암치료 대신 호스피스 병동이나 공기 좋은 시골에서 요양하다가 삶을 마감해야겠다는 디테일한 계획까지 떠오르게 했었다. 그런 생각들이 머리속을 둥둥 떠다니는 상태로 나는 그때부터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부모님 : 혹시 다른 대학병원 교수님들께서 저희 아들 병에 대해 알고 계신 분이 없을까요?
교수 : 안그래도 제가 지난주에 같은 학과 교수님들이 모인 컨퍼런스에 참가하여 환자분 케이스에 대해 수소문를 했으나, 다른 대학교수님들 또한 저희가 생각한 답변과 동일했습니다. 너무 희귀한 케이스라고..
부모님 : 죄송하지만 교수님 혹시 서울삼성병원이나 서울대병원 교수님들에게 한번 더 물어봐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것이 신의 한수였다. 환갑을 넘은신 두분이었지만 어른은 어른이었다.)

당사자인 내가 말을 잃고 넋이 나간 상황에서 우리 부모님의 간곡한 부탁에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은 전화를 돌리기 시작하셨다. 첫 번째, 두 번째 통화에선 우려대로 다른 대학병원 교수님들이 모두 같은 이유로 거절하셨고, 다음 세번째로 통화를 해주셨다. (연달아 거절당하니 도무지 답이 없어보였다.)


부연 설명으로 당시 의료 파업이 한창중이었다. 주치의가 모두 시위에 참여하고 대학교수님들이 현업으로 나와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는 상황이어서 당시에 전원(병원이동)을 하거나, 새로 입원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물며 외래 진료 또한 스케쥴 잡기가 만만치 않았던 상황이었다. 


세번째 통화는 서울삼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과의 대화였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해당 교수님께서 검토를 해주겠다고 하셨고, 자료를 검토해서 빠르게 전원(병원이동)을 진행하자는 답변을 받은것이다. 당장 뚜렷한 증상을 찾을 순 없지만 반드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도 덧붙여주셨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건국대학교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에게 너무 감사드리며 끝까지 책임져주시는 부분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희망의 불씨를 살렸고 나는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서울삼성병원으로 전원을 하기로 결정됐다. 


[에드하임체스터 투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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