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실종 사건
미안해
잠시라도 너를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네가 없는 것도 모르고
집에서 낄낄대며 게임하던 내가 너무 한심해
찾을 줄 알았어
학원에서 삐진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어
있을 줄 알았어
놀이터에서 밤새 오들오들 떨고 있는
너를 다시 만날 줄 알았어
너는 어디로 가 버린 걸까?
벌써 다른 주인이 생겨버렸나?
매일매일 무거운 내 잡동사니
암말 없이 꼬옥 품고 다녀준
그 새하얀 네 얼굴을
난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어
어느 저녁이었다.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는 아이들의 물통을 찾으러, 나는 각각의 방을 방문하였다. 아들 가방에 꽂혀있는 물통을 한 손에 들고 딸의 방으로 갔는데, 딸의 학교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잘못 봤나 싶어 방을 삳삳히 살펴보았으나 분명히 없었다. 아니, 물통이나 신발은 학교에 놔두고 온 전적이 있는 아이들이지만, 가방을 놔두고 온 건 처음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졌다.
" 00아~ 네 가방이 없는데? 어디에 놔두고 온 거야??"
내 말을 듣자마자 거실에 있던 딸은 후다닥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놀란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인도 정확히 마지막에 어디에 놔둔 것인지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었다.
"아니 지금까지 가방이 없는 것도 몰랐다니 말이 되니?"
학교든 학원이든 가방은 내일 찾아오면 되지만, 앞으로 또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엄마표 잔소리는 몇 마디 필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날 우리의 예상은 빗나가 버렸다. 아침을 먹자마자 놀이터에 놔두고 온 것 같다며 달려 나간 딸은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나는 학교나 학원에 있을 거라고, 어제의 행적대로 잘 찾아보고 오라고 다독여서 일단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결국 학교에도 학원에도 놀이터에도 잠시 들렀던 분식집에도 딸의 가방은 없었다. 아이는 다시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니 놀이터에서 놀다가 잠시 가방을 놔두고 간식을 사 먹으러 간 뒤, 그걸 깜빡 잊고 바로 학원으로 간 것 같다고 했다. 당연히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딸의 가방은, 그렇게 영영 우리 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1학년때 산 가방을 3년 내내 쓰다가, 지난 새 학기에 아웃렛을 몇 바퀴나 돌며 겨우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 구매한 가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어이없이 잃어버리게 되니 속상함이 밀려왔다. 왜 잘 챙기지 않았는지 더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울먹울먹 한 아이의 얼굴을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린 본인은 나보다 더 많이 속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놔두고 간 본인의 잘못도 물론 크지만, 남의 물건을 그대로 두지 않고 가져가버린 사람이 있다는 것에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딸은 평소에 남의 물건은 땅에 떨어져 있어도 손도 못 대게 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물건을 잃어버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학교 분실물 센터에도 찾아가지 않는 물건들이 쌓여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 버린다고 한다. 약간의 잔소리는 듣겠지만 어차피 부모님께 말하면 다시 사 주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결국 딸의 가방을 다시 사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생에게 학교 가방은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자기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잃어버리지 않게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얼마간은 깊게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남편과 상의 후에 내린 우리의 결론은, 이번달까지는 가방을 바로 사주지 말자는 것이다. 집에 있는 다른 작은 가방들을 들고 다니면서 불편함과 약간의 부끄러움도 느껴보면서 본인의 잘못을 뉘우치게 한다는 의미랄까? ㅎㅎ 그런데 나도 모르게 벌써 휴대폰으로 아이 가방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 나는, 어쩔 수 없는 딸바보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