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과 세상에 대한 경이감과 신비로움, 정답을 정해놓지 않은 호기심으로 점철된 유년시절은 파란 애드벌룬처럼 어디로 튀어 날아오를지 모를 정도로 순수한 동력으로 무럭무럭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 학기의 조례시간에 한 여성이 분홍미니스커트를 입고 요즘 말로 킬힐을 신고 운동장을 질러 또각또각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때는 1987년, 국민학교 5학년인 나에겐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천.박. 함.
그리고 이내 천박함으로 바라보는 편견에 화들짝 놀랐다. 아 나에게 이런 편견이 있다니. 고작 킬힐과 미니스커트와 젊은 여교사의 매칭에 빨간딱지를 붙이다니. 왜 여교사에게 허용의 한계를 지은 걸까!
그것은 외부세계에 대한 나의 반응으로 내 내면상태를 알아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 시절은 경직된 사회분위기여서 특히 여성에게 높은 도덕과 미덕을 강요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 서릿발처럼 엄정했으니 그런 존경스러운 스승의 모습과 그녀의 모습은 사뭇 다르기도 했다. 그런 집단무의식의 좁은 편견과 그 상대를 낮추려는 오만에 나도 한 발짝 발을 디딛고 있을 줄은 평소에 몰랐는데 덕분에 내 안에 있는 무의식의 발자욱을 돌아볼 수 있었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오만과 편견」 중
그녀는 나의 담임으로 부임했다.
류귀숙선생님은 하늘하늘한 자태와 고운 심성과 창의적인 수업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수업 중간마다 들려주는 이녹아든이나 데미안의 문학작품의 소개와 간간이 듣지도 못한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가르쳐 주셔서 내 감성의 음표는 오선지를 벗어나 맘껏 연주되었다.
12년 살아오면서 그런 선생님은 처음이었다.
올곧은 인격이면서 한없이 다정한 애정 어린 지도는 그 당시 흔한 편달(鞭撻) 없이도 학생에게 정신적 감화를 주었다.
매일 다른 그녀의 패션은 진달래꽃처럼 청초했고 손수 옷을 리폼해 색다른 모양으로 탈바꿈한 자태는 곱디고웠다. 봉긋한 그녀의 가슴태에 벌써 변성기 온 호르몬 덩어리인 남학생 몇은 비뚤한 시선으로 킬킬거렸지만 그녀는 그런 반응쯤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고, 나 또한 여드름 번들거리는 호르몬들에게 냉소적인 무반응을 시전 했다.
그녀는 육체는 가녀렸지만 영혼은 성가곡처럼 웅장하면서도 섬섬했다.
세상에. 이렇게 빛나는 생명체는 내 인생 12년 만에 처음이었다! 외계와의 조우. ET와 소년이 손가락을 맞대 교감하듯,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을 통해 무표정 로봇 같은 아스팔트 바닥을 뚫고 감성의 싹이 시니컬한 얼굴에 썩소이나마 움텄고 뇌의 근육은 온갖 SF적 공상의 활주로를 달리느라 꿈틀거렸다.
머리에 달 기지국이 있는 나에게 그녀는 흑마술적인 매력이 물씬한 정보를 흘렀다. 무심코 자신의 어릴 적 백합꽃 흐드러진 침실에서 향기로움에 취해 선잠을 잔 적이 있는데, 백합꽃은 향이 많아지면 독성이 강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족을 덧붙인 것이다.
사족을 동아줄 삼아 죽음을 체험하고픈 호기심이 동동거렸다. 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처음 밟는 닐 암스트롱이 되리라.
쥐꼬리만도 못한 용돈으로는 비싼 백합꽃을 대량으로 구입할 수 없기에 비루한 편법을 떠올리곤 곧장 백합꽃 한 송이를 달랑 사들고 모두가 잠든 밤을 기다렸다.
한 방에 쿨쿨거리며 잠든 형제들 틈에서 낮에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둔 가위와 테이프를 이용하여
백합꽃을 코에 붙였다. 코에 밀착된 백합꽃은 일당백의 향기와 독으로 나를 죽음으로 인도하리라.후후.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으로 눅눅해진 테이프는 미끈거리며 떼어지고 연신 잘라내고 틈을 메우는 수작업을 했다.
테이프를 찌익 찌익 잘라내는 소음에 언니가 방에 불을 켜고 백합꽃코봉이가 된 나를 흠칫 보더니 이내 한심해하며 불을 껐다.
작전실패에 대한 좌절보다는 이유 모를 부끄러움에 귓볼이 뜨거워진 추억이다.
<나라 요시토모의 소녀처럼 꿈꾸던 아이였던 나>
이렇듯 나에게 영감과 아이디어를 줬던 그녀의 존재는 지금도 생생하지만 나이는 가늠할 수없다.
단정한 단발에 숱무성함을 플라스틱 핀으로 양갈래로 꽂은 그녀는 어찌 보면 그로테스크하기도 하다.
주름 하나 없는 얼굴에 20대의 청초함과 30대의 고뇌와 40대의 초연한 표정이 닫히지 않는 창문으로 열려 도무지 나이의 한계를 두지 않는 평야의 표정으로 뻗어 있었다.
이토록 무지갯빛으로 풍부한 얼굴에 동심 어린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노인의 연륜 있는 철학적 말씨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인식의 울타리는 해체되고 아름다운 삶의 종자의 씨앗은 가슴에 심어져 단단해졌다.
씨앗은 오만과 편견의 흙과 비료에도 아랑곳없이 제 색과 향기를 가진 각기의 성정다움으로 꽃을 틔워냈다.
그녀가 가르친 노래들 중 50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이가 되었어도 기억의 지우개가 지우지 못하게 돋을새김된 노래를 흥얼되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