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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치 Nov 17. 2024

0번 바보 The Fool

천재 아니면 바보


지금부터 유니버셜 웨이트 타로 덱으로  메이져 카드 0번에서 21번까지를 통해 삶의 드라마를 말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번째 바보카드가 나옵니다.


먼저 0의 수비학적 의미를 보자면 무(無)이며 어떤 수를 곱하면 0이 되듯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리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찬 수.

마치 공즉시색(空卽是色)처럼 비어 있으면서 꽉 차니 복잡한 머리를 비우면 내면이 꽉 차는 것이 현대인들에겐 멍 때리기가 필수인 것이 떠오르죠.

불멍, 물멍, 산멍하러 갈 필요도 없어요

기냥 멍...... 하십시오


혼돈의 수.

장차책에 의하면 혼돈이라는 신이 있었는데 동서남북의 신들이 그에게 선물로 구멍을 만들어 주자 혼돈의 신은 그만 죽어버렸다는데.

신체의 모든 구멍(눈, 코, 입, 귀, 몸통의 기타 구멍 등등)을 통해 지각하는 분별이 생기자마자 비명횡사.... 했다는 사건파일.

역시 바보는 분별이 없어야 제 맛이니 혼돈의 수인 것이 제격이네요.


시작이면서 끝인 수.

니체의 영원회귀가 불현듯. 흠. 심오해





설산인지 거친 격랑인 듯 무튼 위험한 풍경 속 절벽에 앳된 청년이 봇짐을 달랑 짊어지고 그 와중에 손에 흰 장미꽃을 소중히 들고 있습니다.

곱게 수 놓인 옷은 너덜너덜 낡아있어도 체면치레 옷가짐 따위엔 안중이 없는 듯 여유롭고 우아한 자태로 높은 절벽에 아슬아슬 서 있습니다.

허세미 작렬. 백치풍미 물씬.

네. 네. 남 의식 안 하는 바보니까 가능하지요.


이 바보는 목적지에 다다른 걸까요?

아니면 새로운 출발을 하는 걸까요?

0이 시작이면서 끝인 수라고 했지요. 어쩌면 파랑새를 찾으러 출발했다가 원지점에서 파랑새를 보게 되듯, 모든 것이 되돌이된다는 영원회귀를 떠올리셔도 됩니다.

마치 출발에서 목적지까지 일직선의 시간의 한계를 비웃는 듯해 보이지 않나요~


옆의 흰 개 또한 기뻐 꼬리 치는지, 걸음을 말리는지 모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삶의 조언자를 상징해요.


어쩌면 바보는 모든 성취와 겉치레를 비웃으며 오직 머리 위에 빛나는 해와 같은 내면의 인도를 따르는지도 모릅니다.


주변의 연륜 있고 학식 있는 조언자의 일반적인 조언보다는 내면이 이끄는 질문에 조심스러운 분석 없이 본능적으로 행동을 취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어리숙 바보취급을 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천재와 바보는 한 끗 차이라고 하지요.

에디슨도 어렸을 때는 저능아 취급을 당하였고, 고흐도 생전 그림 한 점 팔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의 눈에는 서툰 솜씨로 치부되었는데 지금은 천재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위험과 부담을 체 쳐두는 다소 산만한 ADHD인 듯 보여도 구속과 질곡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을 뜻하기도 하지요. 티브이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사람들이 그렇죠.

어쩌면 지긋지긋한 세상놀음에 지쳐 진짜로 놀음지게 살려는 사람들이죠.



물론 바보도 온달장군이 될 수 있고 모차르트 같은 천재도 민망한 방종으로 주변에 민폐 끼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한 끗 차이. 종이 한 장 차이.


그러나 사실 사람 두 명으로도 사회가 되고,  동굴이나 산이나 하늘아래 같은 공간입니다.

바보는 바보이면서 천재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내면에 바보와 천재가 완전한 종이 한 장을 받드는 존재에요.


여러분은 가슴에 손을 대고 상상해 보세요.

그렇다고 국기에 대한 맹세 때처럼 오른손을 왼편 가슴에 얹진 마시고. 응(?)


자신은 어떤 바보인가요?


까짓, 장엄한 바보 간증 들어보고 싶네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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