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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 탑 The Tower

공든 탑이 무너져도 자신이 무너지는 건 아니에요

by 하치

16번 탑 카드, 악마 카드와 죽음 카드 다음으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카드입니다.

뾰족뾰족 험준한 산꼭대기의 탑의 꼭대기에 번개가 떨어져 불길이 치솟고, 두 사람이 탑 아래로 떨어지고 있어요.


16번 탑카드는 수비학적으로 7(1+6)로 7번 전차 카드와 연관됩니다.

전차를 몰 때 흑백의 스핑크스말을 균형 있게 잘 몰면 전복되는 사고가 없듯, 두 다른 성질이 만나 '조화'롭기 위해서는 양단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이 필요함을 말하지요


탑 카드는 조화와 균형으로 완벽히 쌓은 공든 탑이 외려 무너질 수 있다는 파멸을 보여줘 7번 전차 카드와 묘하게 대응됩니다.


보통 7은 행운의 숫자인데 여기서는 마치 복권당첨의 행운이 있었던 사람들이 무절제와 방종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듯 행운이 한순간에 불행으로 바뀔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말하지요.


회화적으로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인간들이 신의 영역까지 닿겠다는 야망과 오만함으로 쌓은 바벨탑이 연상됩니다.

금빛 왕관은 인간의 최고 권위의 상징인데 하늘의 노여움인 번개로 내쳐지지요.

괘씸하게 여긴 신이 탑을 파괴한 뒤 인간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면서 한 언어도 다양하게 분리되어 소통이 안 되도록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쫓겨난 이래 최대의 퇴출 사건인 셈입니다.


탑은 그야말로 인간의 탐욕의 상징이에요.

사람들은 높은 탑 같은 빌딩을 높이 더 높이 우후죽순으로 세우지요.

빌딩을 못 세우면 자그만 건물주라도 되는 게 요즘 세대들의 꿈이 되었습니다.

근데 건물을 세워도 세입자가 없어 거대한 애물단지로 변하기도 합니다...

탑이 번개를 맞고 왕관이 떨어지듯 갑작스런 사고와 경제적 몰락을 상징합니다

허술하게 지은 건물의 붕괴와 갑작스러운 실직처럼 말이죠.


이 세상에게 영원한 게 있나요

사실 영원한 게 없음을 무의식으로는 알지만 의식적으로 덮어버립니다.

번개 맞듯 지진 나는 사건을 경험해서야 무상함을 떠올려 "그래 이 것 말고 다른 길이 있을 거야" 라며 그제서야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함에 눈을 돌리지요.


탑 카드는 내가 쌓아 올린 공든 탑의 업적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이 오만해지면 그 탑이 나를 가두는 감옥이자 벗어나지 못하는 틀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합니다.


스스로 탑에 갇힌 라푼젤 어른이들

타로는 비관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경고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말해주기 때문이죠.

마치 카나리아가 광산에서 유독성가스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별하는 데 사용되듯이 말이에요.


영혼의 급성장은 때로는 내가 나를 벗어던질 때 이룰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일생의 사건을 고통으로만 치부한다면 압력이 축척되어 결국 무엇인가 폭발하게 되지요.


하지만 고통을 아픔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강박에 빠져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면 우리를 가두던 고통의 탑은 무너지고 풀려나 자유롭게 되기도 한답니다.


하늘을 나는 모습으로 행복한 마음을 표헌한 '도시 위에서. 샤갈그림


어찌 보면 떨어지는 모습이 아니라 날아다니는 것처럼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오히려 오래 갇혀 있었기 때문에 탑의 파괴는 자신을 해방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해요.


예상치 못한 변화로 충격적이거나 혼란스러울

수 있으나 새로운 기회를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바로 인식의 전환, 영혼의 거듭남이 일어납니다.


전 처음에 조카가 자폐성 지적장애임을 눈치챘을 때 저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나락, 무간지옥으로 추락하는 듯했어요.


처음에 수많은 책과 정보로 그 아이를 재배열하고 정확한 입력치를 내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이 방법 저 방법 온갖 새로운 치료기법으로 훈련시키고 각인시키고 자극시키는 데만 열심히였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다소 성실을 가장한 오만함이 있었어요. 그래, 이 아이는 변할 수 있고, 내가 그리 만들 테야!라는!


수많은 치료사례는 저를 헬렌켈러를 교육시킨 설리번처럼 빙의시켰지만 사실은 설레발에 불과했어요.

ㄹ자음 하나를 쓰기까지 몇 개월이 걸리는 거북이 아이를 내면 깊은 속내는 거북이가 아니라 거북해했어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함은 곧 그 아이를 문제점으로만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내 안의 석탑에서 가둔 아이를 풀어주고서야 우주의 경이로운 생명체를 발견하듯 바라보게 되었어요.

옥죄었던 간절함이 간결함으로 홀가분해지기 시작했죠.


아 이런 표정은 이런 마음이겠구나. 아 손을 자꾸 흔드는 것은 균형감각을 지키려는 동작이구나!

끝도 없이 무간지옥이 텅 비고 빛나는 가능성과 신비로움의 공간이 되고 번개 맞은 듯 번쩍 제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다양한 병과 아픔을 지닌 이들에게 층층기단의 동정과 불편함의 선입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아 이대로도 온전하구나. 모양만 봤던 과거라면 지금은 내면의 내용을 차근차근 읽는 독자가 되었답니다.


통제할 수없을 것 같은 외부적 변화는 처음에는 파

괴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필요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변화의 흐름에 맞서기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어야 되지요.


혼돈을 억지로 배열하지 말아야 내면에 번개 치듯 깨우침이 번쩍인답니다.


신의 노여움이 아니니 생의 번개에 놀라지 마세요. 각성으로 전율이 찌릿할지 알게 뭐예요.





덧> 무교이지만 이 노래를 우연히 듣고 눈시울이 노을로 붉어져 공유합니다.


https://youtu.be/UbMJuIeoQMQ?si=TrdGYEXhS-ykWV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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