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을 향한 절제와 융합의 칵테일
한 천사가 한쪽 발은 물에 담그고, 다른 발은 땅을 딛고 서 있습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양손의 컵의 물을 섞고 있어요.
그의 뒤로 왼쪽에 보이는 좁은 길은 산을 향해 곧게 뻗어 있고, 그 끝에 왕관 형상의 빛이 보입니다.
수비학적으로 14는 5(1+4)로 교황 카드와 대응됩니다.
교황 카드에서 다뤘듯이 5는 4에 1을 더한 숫자로 4가 갖춘 안정적 질서에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불확실한 것에 대해 변화와 성장으로 대처함을 뜻하죠.
그리고 천사가 컵의 물을 섞는 모습은 의식과 무의식의 교류를 의미하는데, 이는 교황이 신의 대리자로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것과 같아 두 카드 모두 중재와 중용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절제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여 욕구를 참고 인내하는 억압된 상태로 여기고 고리타분하게 느끼기도 하지만, 타로카드는 그보다는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절제의 의미를 말해줍니다
14번 절제 카드에서 가장 부각되는 부분은 두 개의 컵을 들고 물을 섞고 있는 모습인데요.
마치 인생의 여러 측면들을 칵테일 만들 듯 적절하게 혼합하는 듯 보이지 않나요.
무절제하고 불안한 사람에게는 물을 엎지르지 않고 평온히 섞듯 삶을 대응하는 능력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법도 하겠지요.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으면 적정한 온도가 되듯 일종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용량의 절제를 하는 것이에요.
7번 전차 카드가 힘을 조정하는 균형, 11번 정의 카드가 저울 재듯 반을 나누는 균형이라면 14번 절제 카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완급조절해 적절히 상대에게 양보하고 결합해 이루는 균형을 말합니다.
찬물과 뜨거운 물을 섞듯 냉정과 열정 사이를 융합하는 것은 컵과 컵 사이로 흐르는 물처럼 소통하고 조절해 내는 군더더기 없는 중용의 미덕이 아닐까요
감정과 생활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서 가슴이 서늘, 심장에 무리가지 않은가요.
지나치게 추구하고 극단까지 자신을 몰아세우며 불안에 위축되지 않나요.
오직 제 몸뚱이만 간신히 들어가는 고인 욕조에 심신을 담그지 않나요
고인 물은 썩습니다. 흐르는 물은 순환하며 정화됩니다. 그처럼 삶에도 소통이 필요하지요.
인간관계에서 뿐 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나만이 옳음에 뻣뻣히 곧으면 부러질 수 있듯이, 유연한 자세여야 비로소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의 물꼬를 틀 수 있어요
나의 생각만을 밀어붙이는 대신 적정한 선을 찾아 관계의 균형을 맞추면 자신을 내어준 만큼 받는 풍요의 법칙이 적용되어, 기꺼이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공동의 선업을 이룩하게 되는 것이지요.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타인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타인은 나의 거울이자 스승이에요
컵이 인간의 감정과 내면을 담은 것을 상징하듯 기꺼이 컵을 내밀어 따뜻한 온정의 교류와 융합을 통해서만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타인과 결합해 자신도 알고 남도 이해할 수 있어요.
진정으로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경험하고 자각하는 것은 결국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느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내가 자신을 어떻게 경험하고 느끼는지가 결정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결국은 우리의 존재의 정체성을 결정하게 되지요. 다른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육신과, 분리된 존재와, 아니면 온전한 전체인 자아감을 가지게 됩니다
타인이 나의 내면을 비춰주는 있는 거울이기도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느끼는가는 우리 자신이 다른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통해 나 자신을 경험할 수밖에 없어요. 오직 나의 해석이 있을 뿐임을 깨닫게 되지요.
그래서 자신에게 친절한 사람은 동시에 타인에게도 친절할 수밖에 없답니다.
스스로 억지로 무리하지 말고 필요 없는 군더더기 찌꺼기 감정에 눈길을 주지 말고 적절한 페이스를 유지하라고 절제 카드는 알려줍니다.
자신의 상태에 맞추어 들숨과 날숨을 호흡하며 눈을 감고 고요한 흐름에 몸을 맡기세요.
물속에 담근 발은 무의식 또는 영혼의 세계에 닿아 있음을 뜻하고 땅을 밟고 있는 발은 의식 혹은 물질세계에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것 또한 두 가지 다른 세계를 적절히 융화한다고 보시면 되어요.
붓꽃은 여신 이리스로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신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내적인 안내를 의미해요
우리의 후각을 자극하듯 삶의 곳곳의 꽃길을 안내하는데 조금만 내면의 흉곽을 열어 들숨을 들이마신다면 향기 어린 내비게이션이 인도할 것이에요~
잠시 주의해서 보시면 천사가 가만히 있다고 멈춘 상태는 아니라는 거예요.
선한 목표를 향해 주변과 융화하며 인내하며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라고 보시면 되어요
천사의 붉은 날개와 가슴의 불 △의 원소는 흔들리지 않는 토대 □에서 불의 열정을 다루는 것을 의미하는데, 열정을 품고도 신중히 물을 섞는 모습은 균형을 지향하는 중용의 모습이라고 봐야겠죠.
보통 불의 열정에 화르르 제 풀에 연소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감안하자면 눈을 감고 내면으로 조심스레 다루며 정진하는 모습은 급하지 않게 자신의 길을 묵묵히 나아가는 본받을 만한 모습이에요.
프린스턴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어요.
A라는 건물에서 B라는 건물로 가는데
중간에 연기자를 심어놔요.
그 연기자가 발작을 일으키는 거죠
실험자들이 가는 도중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을 도와주고,
어떤 사람은 발을 동동 구르다 그냥 가고,
어떤 사람은 그냥 본척만척하기도
한단 말이에요
어떤 사람이 도와주고
어떤 사람이안 도와줄까?
결론은, 딱 하나예요.
B라는 건물에 2시까지 도착하라고 해놓고
실험자들을 출발시킬 때, 어떤 사람은 20분 전
출발시키고, 어면 사람은 1분 전에 출발시켜요.
1분 전에 출발하는 사람들은 본척만척 지나가!
20분 전에 출발한 사람들은 10분 남았잖아요?
그러니까 도와줘요.
이 실험 결과를 보고, 제가 느낀 건 우리 모두
조금씩 선하고, 조금씩 악하잖아요?
언제 사람이 강퍅해지고 악해질까?
바로 바쁠 때예요.
사람은 바쁜 만큼 악해질 수 있다.
바쁘다는 것은 악에 가까운 것 같아요
솔직히 우리는 바쁘다고 자랑삼아 얘기잖아요.
점심도 못 먹었다느니 잠도 못 갔다느니..
그래서 저도 정신없이 막 이렇게 지내다가
이러면 안 된다는 브레이크를 자꾸 걸려고 해요.
- 이동진(영화 평론가 )
이렇듯 차분한 마음의 균형을 맞추려면 고요한 접근이 필요함을 절제 카드는 말해줍니다.
바쁘면 지나치게 되고, 엎지르게 되고, 무심하게 되고, 허둥지둥해지니까요
외부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이 엄청난 성찰의 에너지에 집중하세요
저 멀리 있는 길의 끝에는 태양처럼 빛나는 왕관의 형상이 떠 있네요.
이는 정신적인 깨달음과 영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뜻합니다.
이 좁은 길의 여정을 걷는다는 것은 아무도 쉽게 들어서지 않는 영성의 길이기도 하지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라고 한 예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좁기에 오직 외부의 동행 없이 오직 신과 함께 하는 길을 우리는 홀로 그리고 함께 갑니다.